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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33)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생각을 확장하고 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구술문화

한글을 창제한 이유 중 하나가 우리의 근원에 맞는 우리만의 고유한 글을 우리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것이 사는데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문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의 영역을 아우르는 모든 것들이 다 문자 투성이였다. 집문서, 땅문서부터 시작해서 차표를 끊어야 하면 출발지와 도착지가 명확한지 확인해야 하고, 차를 탈려면 그 차 상단에 붙어 있는 행선지가 맞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됐다. 

문자를 모르는 삶은 고단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문맹률이라고 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발생했다. 문자로 기록하지 않았을 때는 모든 지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손과 발과 머리와 온몸으로 전승되어 왔다. 생존의 기술에서부터 삶의 지식까지 온통 몸으로 전수해야 할 것이 입과 입을 통해 머리와 가슴을 거쳐 후대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자로 기록하지 않은 이들의 기억 용량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실재로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표현력이 더욱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추론해 본다.

실천을 통한 앎이라는 것이 구두전승을 통해 내려왔던 시대의 언어의 기술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것이었으며, 기억해 내거나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은 단절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표현하는 단어에도 제약이 따랐 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절박하게 전달해야 했다면 표현은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고, 낱말의 발달도 가파르게 성장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굳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언급하지 않아도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선사시대로 보여지는 드라마의 시간은 아직 말을 타는 시대가 아니었다. 말도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야생의 삶을 사는 시기였는데 인간과 친숙해지며 사람이 길들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런 말을 타는 것을 상상했는데, 말이 절대로 등을 내어주지 않았다. 수차례의 시도가 불발로 그치자 말도 주인공도 상심했는데, 그때 주인공의 여자 친구가 건네는 단서를 준다. 너 이 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니? 라고. 

당연히 말 그자체인데 무슨 이름이냐고 말하자 아니라고 이 친구도 개별적 주체자라는 암시를 준다. 이에 크게 깨달은 주인공이 말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호명하니 말은 드디어 주인공에게 그 등을 내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은 너와 나가 서로 대등해진다는 것이며,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라는 말이 생겨나고 공존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면서 인간은 문자를 갖지 않았어도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름을 부르면서 언어로서 소통하는 세상을 구축해왔구나 싶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모두 다 알고 있음직한 이야기를 문득 꺼내는 이유는 사실 이제 부터다.

며칠전 크게 술을 마시고 핸드폰을 두고 다른 장소에서 1박을 했다. 들어가지 못한 집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가족의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은 전화기에 있고, 그를 호명하는 방법도 전화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말의 모든 것이 사전에 있는 것처럼, 내 모든 것을 보유한 것이 전화기가 맞구나 라는 생각의 뒤켠에서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다른 생각은 내가 어리석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 기억에 의존했다. 혹시 부족하다면 깨알같이 적은 수첩이 보조활동을 했었다. 그야말로 기억의 문자, 구술의 문자 세계에 살았던 것인데, 편리해진 문명의 이기에 불과 삼십년 전의 내 행동 패턴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문득, 내 뇌용량이 그때로부터 현저히 떨어졌는지도 궁금해지고, 그깟 기계 하나에 삶의 모든 네트워크와 실존력을 나도 모르게 저당 잡혔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연산식과 기호로 저장되는 문자문화의 첨병인 스마트폰이 앗아간 나의 삶 앞에서 다시 구술문자의 시대를 복원해야 되겠다는 의욕이 일었다.

훨씬 풍성한 단어가 생각날 것이고, 잊어버렸던 옛 추억도 소환될 것이고, 할머니에게 들었던 김덕령 장군의 무용담이 마치 오늘 살아있는 것처럼 떠오르고, 거기에 덧대서 더 비장하고 실감나는 장군의 생애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 할 수 있을 터인데 라는 희망 같은 것이 보였다. 

초고령화 사회, 인구절벽의 사회 통계치 앞에서 구술문화는 추억의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노둣돌 같은 것이 될 것이기에 담양의 문화활동에서도 이런 구술의 채록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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