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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의 詩이야기/ 詩의 향기,삶의 황홀(33)(고재종 칼럼위원)

뒤편에서 실존을 대면하다

만추도 저물어가고 아침저녁으로는 겨울이 성큼 다가선 듯합니다. 우리는 이때쯤 삶의 ‘뒤편’을 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천양희 시인의 「뒤편」이라는 시를 소개해드립니다.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나셨고,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오래된 골목』, 『마음의 수수밭』 등의 시집이 있습니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천양희, 「뒤편」

고즈넉하면서도 싱그럽고, 멀리 퍼져나가면서도 성스러운 성당의 종소리는 항상 속되었던 마음을 여미게 하고, 늘 혼자라고 여겼던 나 자신을 신의 가호 속에 있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당의 종소리 뒤편에는 사람들의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사는 데 있어 꼭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한가지씩은 있을 것이니, 그 얼마나 많은 기도의 음성이 박혀 있겠습니까.

백화점 마네킹의 앞모습은 화려하지만 그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화려함 뒤편의 고통을 미처 생각지 못합니다. 오늘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고도 그 성장의 그늘에 가려 신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계경제 11위일 정도로 물질의 총량은 이미 넘쳐나는데 그게 한쪽으로 몰려있는 바람에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뒤편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뒤란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뒤란에 쪼그리고 앉아 울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뒤편에는 남루한 것과 슬픈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남루와 슬픔을 견디었기에 삶은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뒤편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뒤란을 돌아가 본 사람은 화려함의 그늘에 있는 남의 고통도 돌아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의 철학을 설파한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라는 존재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가 없으면 나는 이미 ‘나’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관계적 존재인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뒤편엔 홀로 쪼그리고 앉아 우는 사람이 많다는 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다음은 이진명 시인의 「복자수도원」이라는 시입니다. 이진명 시인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계의 문학》으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집으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등 종교성이 짙은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내 산책의 끝에는 복자수도원이 있다 
복자수도원은 길에서 조금 비켜 서 있다 
붉은 벽돌집이다 
그 벽돌빛은 바랬고 
창문들의 창살에 칠한 흰빛도 여위었다 
한낮에도 그 창문 열리지 않고 
그이들 중 한 사람도 마당에 나와 서성인 것 본적 없다 
둥그스름하게 올린 지붕 위에는 드문드문 잡풀이 자라 흔들렸고 
지붕 밑으로 비둘기집이 기울었다 
잠깐이라도 열린 것 본 적 없는 높다란 돌기둥에는 
殉敎福者修道會修道院(순교복자수도회수도원)이라 새겨진 글씨 흐릿했다 
그이들은 그이들끼리 모여 산다 한다 
저녁 어스름 때면 모두 
聖衣자락을 끌며 긴 복도를 나란히 지나간다고 한다 
비스듬히 올라간 담 끄트머리에는 녹슨 외짝문이 있는데 
삐긋이 열려 있기도 했다 
숨죽여 들여다보면 
크낙한 목련나무가 복자수도원, 그 온몸을 다 가렸다 
내 산책의 끝에는 언제나 없는 복자수도원이 있다 
                             -이진명, 「복자수도원」

산책 도중의 명상을 피력한 이진명의 시 「복자수도원」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복자수도원을 보고 건져 올린 시이지만, 그러나 실재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복자수도원은 다만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 곧 복음과 복자들이 사는 신의 마을입니다. 

겉으론 빛바랜 벽돌집으로 길에서 비켜 서 있고, 창문의 창틀도 흰 도색이 벗겨진 채 열릴 줄 모르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 중 어느 하나도 마당에 나와 서성거린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적과 침묵으로 일관돼 있습니다. 그러니 둥근 지붕 위로는 드문드문 잡풀이 자라 있고, 지붕 밑으로는 비둘기집도 기울었고, 높다란 대문은 잠깐이라도 열린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과 탈속 가운데 놓여 있지요.

그이들은 그이들끼리 모여 살며 “저녁 어스름 때면 모두/성의자락을 끌며 긴 복도를 나란히 지나간다”고 누군가 일러주었지만, 시인은 더 이상 이 수도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담 끄트머리의 외짝문이 삐긋이 열려 있어 숨죽여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크낙한 목련나무가 수도원의 온몸을 가려서 더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 산책의 끝에는 언제나 없는 복자수도원이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번잡한 일상 뒤의 산책 끝에, 일상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복자수도원이 실존의 대면(對面)으로 터억 존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그 산책의 끝에서 언제나 복자수도원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인에게 산책은 실존의 진정한 의미를 만나러 가는 길인데, 그 길 끝에서 고독과 정적의 푸른빛에 휩싸인 복자수도원의 상상을 통해 신전 밖에서 간절히 간구하는 인간들의 영원과 평화에 대한 꿈을 꾸고자 하는 것입니다. 백단향처럼 참으로 슬프고 은은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시입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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