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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1/ 담양이야기(55) 일제강점기 담양남초등학교(略史)

담양알기1/ 담양이야기(55) 일제강점기 담양남초등학교(略史)

담양(潭陽) 남초등학교는 전신이 담양공립심상고등소학교이다.
1911년 9월 담양읍 천변리 1-3, 1-4, 1-21, 1-22번지 부근 일대에 새로운 초등학교가 신축되어 아동모집에 들어갔다.

학교명은 담양서보통학교(潭陽西普通學校)다. 교실 3개, 직원실 1개로 개교한 이 학교는 최초 내지인(內地人=日本人) 자녀인 아동 18명으로 1912년 3월에 개교한 것으로 전해온다.

1907년 광명학숙의 이름으로 개교한 담양보통학교가 신설됨에 따라 조선인 전용 담양보통학교의 교명이 담양동보통학교로 동(東)자가 따라 붙게 되어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담양서보통학교로 정해졌다.

이후 담양서보통학교는 6개 교실로 증설하고 아동수는 1930년대는 50여명으로 늘어나 교원수도 교장까지 5명으로 증원되었고 교장도 학급담당을 맡았다.

1936년에는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학생을 위해 중학교 1·2학년의 과정을 거치는 고등과(高等科)를 도입 신설했다. 그러나 고등과에는 조선인도 전형을 거쳐 입학이 허용되었다.

이로 인해 50~60명을 유지하던 학생수는 70명선으로 증가 되었다. 교직원도 8명으로 증원되었다. 초등학교 과정은 일본인 아니고는 입학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단 일본에서 거주한 조선인은 현지 학교장이 발행한 재학증명서가 있어야 전학이 허용되었다.

1940년 무렵에는 교명이 담양서고등소학교로 개칭되었다. 고등과가 신설되자 입학을 위한 지망생이 해마다 크게 늘어나자 학교 당국에서는 선발전형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고등과 1학년 모집 10명중 일본인은 전형을 거치지 않고 진학할 수 있었으나 조선인은 철저한 신원조사와 필기시험, 그리고 소위 일본말 시험을 위해 직접 시험관하고 5분간의 대화 등이 종합되어 4~5명의 합격자가 3일후에 발표되었다.

당시 고등과 응시자는 4~5명 모집에 20~30명에 달했다. 이곳 고등과를 나오면 당시의 광주동중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학교는 1940년 2월(?) 무렵 화재가 발생, 교실이 전소되어 신축 교사(校舍)가 마련되기까지 담양동국민학교와 추성관(秋成館), 청년회관 등에서 분산교육을 받았다.

담양읍 지침리 92번지에 교실 7개와 교장관사가 신축되면서 그동안 교명이 개칭되기도 하였는데 지침리 92번지로 학교가 이사 오면서 담양욱고등소학교(潭陽旭高等小學校)로 개칭돼 운영하다 8·15광복으로 일본인 학교에서 조선인 학교로 이양되었다. 당시 학생수는 초등학생 62명 고등과 1·2학년생 25명으로 모두 77명 가량이었다.

일본인 학교로서의 수업은 1945년 8월 13일이 마지막으로 끝나고 8월 17일 10시 전교생이 소집되었다. 이날 단상에 오른 기다(幾多) 교장은 12명의 선생과 60여명의 학생들에게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에 천황의 항복을 알리고 20년 내지 30년 후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이 학교는 1945년 11월 1일자로 일인(日人)으로 부터 인수하여 담양남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45년 11월1일로 일본인 학교에서 조선인 학교로 이양된 담양남국민학교는 1학년 2학급과 2학년 1학급, 3학년·4학년 각각 한 학급씩을 담양동국민학교로 부터 인계받았다.

1946년도에는 1학년 1학급, 2·3학년 각각 2개학급, 4·5학년 각 1학급씩으로 늘어났다.
1950년에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가 2개 학급으로 늘어나고 6학년만이 한 학급으로 전교생이 481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졸업생 현황을 보면 1948년도 1회 졸업생 63명, 2회 58명, 3회 73명, 4회 78명, 5회 60명 등이다. 초대 교장으로 김용근(金容根), 2대 김인흥(金仁興), 3대 정기선(丁基宣), 4대 김용근(金容根), 5대 이상욱(李相勗), 6대 김태중(金泰中), 7대 박종원(朴鐘元) 등이다.(출처: 이해섭의 담양이야기-담양향토문화연구회刊)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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