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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55) 임진왜란 최초 의병창의 의병장 유팽로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55) 임진왜란 최초 의병창의 의병장 유팽로

▲월파관

유팽로(1554~1592)는 임진왜란 최초로 호남에서 의병을 창의한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을 제창함에 따라 김천일, 고경명과 함께 ‘호남삼창의’ 명성을 얻었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형숙·군수, 호는 월파(月坡)이며 개국공신 유만수(柳曼殊)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충주판관을 지낸 유경안으로 을사사화 때 옥과로 낙향함에 따라 유팽로는 옥과 합강에서 출생했다. 1579년(선조12)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옥과현에서 살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창에서 대동산에서 5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해 ‘전라도의병 진동장군 유팽로’ 라는 임진왜란 최초의 창의의 깃발을 세우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5월 11일 임실 갈담역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여 조선 의병 최초의 승전보를 전했다. 

이후 이종사촌형 남원 양대박과 안영을 만나 모병 활동을 펼쳐 의병군의 세를 불리면서 고경명에게 호남연합의병을 일으킬 것을 제안했으며 임진왜란 최대 규모의 호남연합의병군의 기틀을 마련한 ‘담양회맹’을 이끌어냈다. 

이후 피난민과 가동, 의병 600여명을 이끌고 담양에 입성, 고경명의 군사와 합세해 6천여명의 호남의병이 담양 추성관에서 창의했다. 고경명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고, 유팽로는 고경명 휘하의 좌부장, 양대박이 우부장을 맡았다. 

호남의병은 처음에 근왕(勤王)을 목적으로 북상하려 하였으나, 일본군이 전주를 침입하려 하자 금산에서 적을 맞아 싸웠으나 패전했다.

유팽로는 일단 탈출해 고경명이 아직도 적진 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고경명을 일단 구출하고는 끝내 전사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대사간, 좌승지에 추증됐으며 광주 포충사(褒忠祠)와 금산 종용당(從容堂)에 배향됐다. 

담양군은 대표적 관광명소인 죽녹원내 시가문화촌 인근에 호남의병 창의를 기념하는 ‘추성창의관’을 조성, 유팽로의 호를 딴 월파관 등을 지어 추모하고 있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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