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田 송희자의 【꽃차이야기】(23)
담양뉴스는 2022년 새로운 생활문화 코너로 우리 지역에서 꽃차전문가로 활동중인 茶田 송희자 님의 ‘꽃차이야기’를 월2회 게재합니다. 
茶田 송희자 님은 ‘茶田(차밭)’ 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차와 우리 꽃을 소재로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책을 펴내 국내외 명성을 얻고있는 꽃차 전문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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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랑과 화합의 백화차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린다. 올해는 때 아닌 겨울 축구의 열기가 차가운 겨울을 녹이고 서로를 감싸 안는 시간을 준다. 2018년도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그 함성과 뜨거운 감동이 하얀 눈 위에서 펼쳐졌던 기억이 난다.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슬로건 아래 바라볼 수 있었던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순간들.

각양각색의 상징과 함께 알려진 한국의 우수하고 독창적인 문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세계인들의 열정과 화합. 올림픽 내내 보았던 ‘하나 된 열정’은 곧 우리 모두가 ‘다양한 하나’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 평창 동계올림픽 때 전 세계 대사관들에게 소개되었던 한국의 꽃차가 있었다. ‘한국의 사계절’, ‘사랑과 화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백화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백화차는 한국의 사계절 꽃을 골고루 모아 만든 꽃혼합차이다. 백 가지의 꽃을 혼합했기 때문도 맞고, ‘많다’는 의미에서도 백화차라고 한다. 한국의 사계절은 얼마나 많은 빛깔의 꽃을 피워내는가. 봄이면 꽃다지, 봄까치꽃, 자주괴불주머니로 시작해서 매화, 목련, 도화, 벚꽃 등이 봄을 알린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당당히 피어나는 하얀 비의 아카시아, 사랑의 상징 장미, 향기로운 일당귀꽃 그리고 한 곳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까지 크고 수분 가득한 여름꽃들이 피고 진다. 하늘이 맑고 청명한 날 하늘거리며 피는 쑥부쟁이와 코스모스, 쓴 향을 뿜는 구절초와 국화는 어떠한가.

그러다가 찬서리에 고개 숙인 차꽃이 피고 지면 이어서 겨울꽃인 동백이 피어난다. 알뿌리로 숨어있던 수선화도 피고 생강나무꽃도 피어난다. 이러한 사계절의 꽃들을 한 데 모아 다시 피워낸 것이 백화차다. 백화차는 결합과 화합, 하나 아닌 둘을 잇는 사랑의 상징으로서 아름다운 사계절을 합하고 사랑을 담은 꽃차이다.

처음 백화차를 탄생시킨 것은 25년 전의 일이다. 가까운 사찰인 용흥사의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이후 문헌과 책을 참고하고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백화차 제조 방법을 완성시켰다. 초창기에는 순수하게 백 가지 꽃을 혼합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백화차를 제조했다. 이후 체계적인 기록을 위해 백가지 꽃을 학술적으로 정리했고, 색과 향과 맛의 선호도 조사를 기반으로 백화차 제조방법을 재차 정리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향기로운 우리꽃차』(송희자,아카데미북,2010)를 통해 국내에 선보일 수 있었다. 오늘날 국내 식약처의 식품원재료준수사항에 따라 판매되고 있는 백화차는 식약처 식품공전에서 사용가부를 확인된 것을 재료로 제조되고 있다. 기록과 현실에 사뭇 거리감이 있다는 점이 현재로서는 큰 아쉬움이지만,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연구를 통해 백화차의 진가가 더 널리 알려지고, 가장 한국적인 차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길 바란다. 

백화차 탄생의 배경에는 지리적 요건과 생태 조건이 큰 역할을 했다. 이곳 담양은 예나 지금이나 청정한 공기, 풍요로운 땅과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이곳에 내리 앉는 따뜻한 햇살과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맞으면 이곳의 산과 들의 풍경과 어울리는 꽃들이 피어난다. 당시 국내에서 자생하는 식물종의 대다수가 담양에서 자생하고 있었고 사계절 동안 사람의 도움 없이도 건강하게 피고 졌다. 백화차를 연구하며 찾아다닌 담양 이곳저곳은 여전히 머릿속 도감의 주석으로 남아있다. 다양한 생명이 자리한 땅과 꽃차가 만나 마침내 다양한 하나, 백화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백화차 제조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사계절의 꽃을 각각 찌고 덖고 건조하여 다시 균일한 크기로 찢어서 혼합한다. 여기서 ‘혼합’의 기준은 단순히 사계절의 꽃을 동일한 비율로 넣는 것이 아니다. 맛·향·색의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의미한다. 향이 강한 꽃, 생으로 먹어도 되는 꽃, 색이 강한 꽃, 성분이 강한 꽃 등 각 꽃차의 특성을 고려하여 혼합 비율을 정한다.

다시 말해 성미, 성질, 성분에 따라 함량을 달리하는 것이 백화차 제조의 기본 원칙이다. 이후 6개월 간 ±0℃에서 보관하면 다양한 향이 서로 섞이는 과정과 함께 백화차가 숙성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찻잔에 서로 다른 꽃이 들어가서 피더라도 균일한 맛과 색, 향을 담을 수 있다. 

사람도 오래된 친구는 몸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백화차도 혼합되어 오랜 시간을 거치기에 서로가 서로의 색을 입고, 향을 품고, 맛이 되어 찻잔에서 피어난다. 백화차는 진한 향과 맛을 원한다면 다관에 백화차 1g을 넣고 끓는 물 300ml을 부어 2분간 우려내어 마시고, 평범하고 은은하게 마시고 싶다면 동일한 조건에 0.5g을 넣고 우려내어 마신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하고 매력적인 사실은, 백화차는 각자가 쉽게 인지하는 향을 먼저 느끼게 되는 차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찔레꽃을 좋아하면 찔레꽃의 향이 먼저 인지된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1년을 지내오는 동안 시원했던 부분, 감동과 감사의 시간, 슬픔과 기쁨의 시간,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사랑과 화합의 의미로 백화차 한 잔 피워보면 좋겠다. 눈발이 날린다. 벽난로의 장작소리와 함께 백화차 한 잔이 불빛과 함께 핀다. 감싸 안은 손끝에 따뜻함이 전달된다. 백화차 한 잔을 끓여 찻잔 기울이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본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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