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제33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33화> 9. 1594년 2월

아내가 소피를 보고 싶다고 했다. 능주는 안에서 보라고 했다. 아내가 한사코 반대했다. 지린내가 석굴 안에 밸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부끄러워 그렇다는 걸 능주는 알고도 남았다. 위험하니 안에서 소피를 보라고 해도 아내가 기어이 석굴 밖으로 나갔다. 능주가 뒤따라가려는데, 아내가 동굴 밖에서 능주 머리를 밀며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다. 능주는 아내를 더 이상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석굴 입구에서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석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내가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능주는 어두우니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오줌 누는 소리가 능주에게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오줌을 누는지, 오줌 누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라버니!”
아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르렁 거리는 늑대 소리가 뒤따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능주는 망치와 정, 단검을 들고 황급히 석굴을 빠져나갔다. 석굴 밖으로 막 빠져나온 순간 턱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은 낭떠러지 아래였다. 그리고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늑대 소리도 사라졌다. 아내가 늑대의 움직임에 놀라 급히 피하려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것이었다. 지리를 잘 아는 능주도 당장 내려가기 힘든 곳이었다.

능주는 아내를 목놓아 부르며 낭떠러지로 향했다. 가면서 연신 망치로 정을 두드렸다. 짐승들이 피비린내를 맡고 몰려와 아내를 물어뜯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능주를 덮칠지도 몰랐다. 쇠붙이의 날카로운 소리를 내서 덮치지 못하게 하는 하려는 것이었다.

아내 근처로 가기도 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아내의 피비린내라는 생각에 속이 울렁거리거나 구토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비통함이 피비린내를 덮었다.
아내는 뾰족 뾰족 튀어나온 바위가 지천인 너덜겅 위로 떨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잘하게 토막 나 있었다. 너덜너덜했다. 머리는 서너 동강이 났고, 뇌에서 흘러나온 골이 여기저기에 튀어 있었다. 육신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장 뭉치가 빠져나와 바위 등걸에 걸려 있었고 창자는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늑대 무리가 낭떠러지 위에서 눈에 불을 밝히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하지만 도망칠 상황이 아니었다. 능주는 망치로 연신 정을 땅, 땅 때렸다. 천지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능주는 아내의 살 한 점 한 점, 뼛조각 하나하나를 주워 모았다. 중간 중간 망치로 정을 두드려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막대기나 손이 들어가지 않은 좁은 바위틈에 낀 살점이나 뼈는 수습할 도리가 없었다.

능주는 난감했다. 임신이었으니, 아내와 아이의 육신이 다를 텐데, 구분할 수 없었다. 두 개의 관을 만들어 안치시키고 묻어주어야 하거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너덜너덜한 시신일지라도 지고 가서 장례를 치러야 마땅하나 포기했다. 처참한 아내를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착하고 곱상한 아내였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하며 요절을 안타까워할 텐데, 처참한 모습을 보고 나면 기억이 달라질 것이다. 아내를 생각하면 착하고 곱상했다는 기억보다 참혹한 모습을 먼저 떠올리고 진저리를 칠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내가 참혹한 모습이 아니라, 착하고 곱상한 이미지로 남기를 바랐다.

아내 뱃속에 있던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지만, 무덤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능주는 수습한 살점과 뼛조각을 분리했다. 한 줌의 살과 뼈를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내 시신 옆에 한 줌의 살과 뼈를 고이 놓고, 주변의 돌을 주워 시신을 겹겹이 덮었다. 어떤 짐승들도 파헤치지 못하게, 묵직한 돌로 덮고 또 덮었다. 돌무덤을 만드는 동안 차오르는 분노와 후회와 슬픔을 꾹꾹 눌러 삼켰다.

어둠이 옅어질 무렵 너덜겅 사이에 봉긋한 돌무덤 두 개가 생겼다. 양지바른 곳이 아니었다. 내생마저 음지에서 보내게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터지는 듯했다. 능주는 돌무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를 따라 저세상으로 훌쩍 건너가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마음은 아내를 따라 가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살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능주는 마음뿐인 자신을 비겁한 놈이라고 책망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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