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에서 생각해 보는 문화정체성

담양을 대표하는 문화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오래전 우리는 호남의 인물하면 광주. 나주, 장성, 창평에서 난다는 ‘광나장창’ 이란 말에 익숙해져 있었고, ‘삼성삼평’ 사람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난다는 말로 장성, 보성, 곡성과 함평, 남평, 창평 사람들의 자주와 독립운동에 온 힘을 쏟아 싸웠던 선현들을 폄훼하는 일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담양읍이 전체 담양의 치소로서의 위상을 지닌다면 창평은 담양 정신의 못자리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담양부로부터 발신되는 메시지는 조정과 문무백관들 사이에 퍼졌고, 창평에서 나오는 소식은 재야와 외국으로까지 발신되는 울림이 많았다.

가까이 성이성 부사로부터 시작한 관방제림이 담양에 있다면 명나라의 희종황제로부터 받아와 지금은 전남대학교에서 봄을 알리는 대명매가 창평에서 이식된 것이 일례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신식 교육을 받아들이고자 영학숙과 창흥의숙을 마련하여 영재육성의 요람이 된 배경에는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민립 학숙이었던 수남과 수북 학구당의 근대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 창평의 고씨 가문을 보자. 

가훈이자 지침이었던 세독충정은 거슬러 보면 무등산의 원효계곡 누정가단의 맹주이자 식영정 4선 중 한분이었던 제봉 고경명으로부터 발원한다. 그가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창평의 누정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담양의 추성관을 창의지소로 삼고 6,000명의 의병과 함께 출병을 하게 되었다.

금산 전투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그와 그의 둘째 아들 고인후, 그리고 복수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첫째 아들 고종후는 뭇 선비들의 귀감이 되었던 바이다.

고인후의 후손들이 창평에 세거하면서 비롯된 창평고씨들의 역사는 이후 춘강 고정주로 이어지며 신학문의 요람인 영학숙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고, 창평상회를 통해 일제자본의 침탈을 막아낸 힘을 가지며 오늘 날 대창기업의 모토가 되었던 바이다. 그리고 녹천 고광순은 일제의 조선 병탄을 막기 위해 거병을 하고 지리산을 근거로 활약하다 석주관에서 순국하게 된다. 

구례에 있던 매천 황현은 그의 시신을 거두고 초분을 만들며 그 장한 뜻을 펼치지 못함을 애통해 했었다. 

필자는 그중 몇가지를 복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창평상회를 생각하면 오늘날 사회적 경제의 본보기와 같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진다. 지역의 내재적 자원과 가치를 공유하는 조합으로서 지역민의 자생 구조를 견인하는 역할을 이미 일제강점기에 춘강 고정주에 의해 실천된 것이라 생각된다. 예컨대 협동조합이나 로컬푸드 같은 것의 본보기가 바로 창평상회인 것이다. 

두 번째는 제봉 고경명이 활동의 주공간인 광산의 압보촌이나 창평을 두고 담양부에서 창의한 것이 시사하는 바이다. 창평은 현이고, 담양은 그 윗 단계인 부에 해당된다. 복수의병장으로 왕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출사표를 던지고 인접 지역의 의로운 사람들을 모으고 출병하기 위함에 적격인 곳이 추성관이었을 터이다.

세 번째는 영학숙이나 창흥의숙이 지닌 설립 취지이다. 봉건적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얽매여 있다가 외세의 침탈이라는 위기적 상황을 접하게 된 시국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아는 것이었으리라. 이런 판단이 춘강으로 하여금 신학문을 수용하고 나아가 외국 유학까지 보내며 시대정신을 키운 것이라 하겠다. 걸출한 인물들이 이 학교를 거쳐서 성장했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이렇듯 국가와 백성의 백년대계를 위한 대의의 현장성 있는 실천이란 측면에서 창평이 갖는 의미망을 오늘 날에 우리는 어떻게 담보해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땅을 근거지로 살아왔던 선현들이 남긴 자취와 어록에는 지금 당장 적용해도 시대를 뛰어넘어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오늘 날 창평의 모습은 그런 세상을 평정하고 비전을 제시할 기력이 보여지지 않는다.

어떤 단추가 잘 못 꿰어졌을까? 슬로우시티 창평은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눈요깃감으로만 부여되지 않아야 되는데, 그 중심을 이뤘던 정신들은 사뭇 희미해져가고, 오로지 풍광만 내세우는 것에는 아쉬움이 크지 않은가? 매해 증가하는 카페와 음식점들의 명소화의 배경에는 이런 매력물들이 뒷받침되기 때문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면 향후 관광의 후광효과 또한 유행이라는 변수에 휘말릴 것이 명약관화 할 터이다. 

인문도시의 모범사례를 만들어왔던 담양군이 이제 더 공고화된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면 이런 창평의 뿌리를 결코 좌시하지는 말아야 할 터이다. 그것은 비단 창평 뿐만 아니라 대덕면, 용면, 무정면, 가사문학면, 봉산면, 수북면, 월산면, 고서면, 대전면, 금성면 도 다 마찬가지 일 터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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