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田 송희자의 【꽃차이야기】(24)
담양뉴스는 2022년 새로운 생활문화 코너로 우리 지역에서 꽃차전문가로 활동중인 茶田 송희자 님의 ‘꽃차이야기’를 월2회 게재합니다. 
茶田 송희자 님은 ‘茶田(차밭)’ 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차와 우리 꽃을 소재로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책을 펴내 국내외 명성을 얻고있는 꽃차 전문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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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흰 눈을 녹이는 난(蘭)꽃차

밖은 눈 속에 쌓여 하얗다. 안에서는 화분에서 금지옥엽 키워낸 난이 꽃을 피워낸다. 한해의 제일 먼저 내게 다가오는 꽃이 난꽃이다. 보기도 아깝지만 몇 대 가져다가 손질하여 차로 만들었다. 지금 찻잔에서 피어나며 올라오는 난향이 한 해의 희망을 일으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삼국유사』에서 난꽃을 차와 술로 마셨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수로왕의 결혼식 때도 난으로 만든 술과 음료를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난꽃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춘란(春蘭)의 명칭은 일본식이고, 보춘화가 한국식 명칭이다.

보춘화는 꽃대 하나에 한 송이 씩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일경일화(一境一花)’라고 불리며, 향을 뿜어내는 열기가 눈을 녹일 만큼 강하다 하여 님을 향한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난꽃은 열매를 맺지 않고 오롯이 향기로 일생을 마무리하기 때문에 진자리도 아름다운 꽃이다.

난꽃은 한란, 풍란, 석곡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향이 강한 것은 차로 만들어서 우려내면 그 향이 매우 좋다. 또한 꽃대의 식감이 사근거리고 좋아서 살짝 데쳐서 꽃과 함께 샐러드로 먹기도 한다.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꼭 먹어보아야 하는 꽃음식이라 권하고 싶다. 이처럼 보춘화는 식용꽃으로 쓰임새가 훌륭하여 한국에서는 차, 음식의 식재료로 건조 또는 염장을 해두었다가 사용되어 왔다. 

어느 해에 한 교육생이 남해의 섬 어딘가에서 보춘화 한 박스를 보내왔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귀한 꽃을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손끝이 바빠졌다. 난꽃은 수분이 많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건조해야 색과 향을 보존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난꽃차 2~3송이를 찻잔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우려내면 다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염장을 하는 것이다. 

난꽃을 채취하여 깨끗이 세적한 후 물기를 제거한다. 용기에 소금을 먼저 넣고 난꽃을 넣는다. 다시 그 위에 소금을 덧입힌다. 겹겹이 소금으로 절인 상태로 냉동보관하면 오랜 시간 보존에 용이하다. 특히 색과 향의 유지가 이상적으로 된다. 염장한 난꽃을 우릴 때는 첫물을 토렴하듯이 씻어내고 두 번째 잔부터 우려내어 마시면 은은한 향과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보춘화는 남쪽에서는 1월부터, 이곳 담양에서는 3월 초에 야산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의 난꽃차는 녹차(묵은 차)에 난꽃향을 입혀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한국의 난꽃차와는 차이가 있다. 마시는 차인 것은 같지만 꽃송이 자체를 꽃차로 만든 것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제조기술이자 문화이므로 이 점을 알고 마시면 더욱 좋을 듯 싶다.

난꽃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하루 종일 난꽃을 어루만지고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으며 그 향이 은은하지만 끊이질 않으니 과연 놀라운 꽃이다. 주섬주섬 지난해 넣어 놓은 소금 속 난꽃을 꺼내본다. 끓는 물을 부어 한 번 버리고 다시 끓는 물을 부었다. 정숙한 자태가 보기 좋다. 새해의 소망을 담아 희망을 일으켜 보련다. 흰 눈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떠는 난꽃차를 한 잔 하며 한해를 기도한다.

“흰 눈 속에 향이 떠니
물이 되어 녹아 들고
동그란 원이 되어 님을 향해 노래하니
햇살 속에 바람 타고
텀벙 찻잔 속에 피는 구나“
-茶田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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