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평【대숲소리】(65)/위계와 수평

태국의 고대 수도 수코타이 사원에 500년 전에 만든 진흙 불상이 있었는데 신도들이 해마다 그 불상을 보수하며 성스럽게 지키고 예배해왔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해 불상이 많이 갈라졌는데 주지스님이 갈라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속에 황금으로 된 불상이 하나 들어 있었다.

진흙 불상 속의 황금불상! 아마도 이것은 옛날부터 그 황금불상을 도둑이나 독재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겉에 진흙으로 옷을 입혀 보호해 왔던 것으로 추측됐다.

지금은 그 황금불상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이 진흙 옷을 입은 황금불상은 중생들의 허접한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는 고귀함에 대한 상징 같은 것이다. 『금강경』을 ‘허접한 꽃들의 축제’라고 하지 않던가.

질 들뢰즈와 펠리스 가타리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용어 혹은 철학적 용어에 리좀(Rhizome)이란 게 있다. 이는 땅속줄기를 말한다.
비슷한 예로 감자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줄기가 땅속에서 서로 연결해 자라며 그 마디마디에 감자라는 열매를 맺는다. 덩이줄기다. 그런데 그 감자알은 어느 것 하나 똑같지도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 감자알을 음식으로 사용할 때 굵은 것은 쪄먹고, 자잘한 것은 조림을 해먹고, 중간 것은 쪼개서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된다. 그래서 쓸모없는 감자알은 없다. 리좀도 그런 의미인데, 이제 사회가 발달할 만큼 발달했으니 생각을 ‘리좀적 사유’로 바꾸자는 이야기다.

인류는 지금껏 ‘수목적 사유’를 해왔다.
인간은 세계를 나무와 같은 삼각형의 위계적인 체계로 세워놓고 하나의 개체는 상위 이웃만을 갖는 구조로 이해해왔다. 삼각형 밑변은 항상 약하고 못나고 저열한 존재들이 대거 운집하고, 삼각형 꼭대기에는 강하고 잘나고 우등한 존재가 독야청청 한다는 구조 이해다.
가령 백성-사대부-대신-왕이라는 조선시대 신분 구조처럼 우리는 여전히 그런 수목형 사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재산이나 권력이나 학벌 등이 없어 밑바닥에 헤매는 사람들은 늘 상위 이웃을 원망하고, 또 독재자건 선출로 된 리더건 정상에 오르면 거기서 군림하며 바로 하위 이웃에 지시하고 명령하게 된다. 물론 그 하위 이웃은 자기 밑의 이웃에게 자기가 겪은 것과 똑같은 행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진흙 속의 황금불상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속에 고귀함을, 광명을 갖고 태어난다. 열반경에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접한 자기 안에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자기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즉심시불도 있다.

성경도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다. 하느님의 창조성, 상상력, 지혜력 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이런 자기 안의 고귀함을 스스로 발견해서 각자가 개성과 능력대로 빛을 내고 살며 연대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어려운 철학언어로 말하면 욕망과 권력의 재배치라고나 할까.

그 욕망과 권력은 차이로 재배치되는 것이지 차별로 재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거리의 청소부는 청소부대로 회사의 사장은 사장대로 자기 일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존중과 배려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위계 구조가 아니라 수평구조, 수목형 사유가 아니라 리좀형 사유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사회가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온 만큼 인간들의 인식능력도 최고조로 성장해왔다. 그러니 누가 수목형 위계 구조 속에서 늘 굽신거리며 살려고 할 것인가. 서로의 욕망들이 충동할 때 그 사회의 성숙은 그만큼 늦어진다.

요새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에 ‘갑질’이라는 게 있다.
이 말은 이미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여 사회의 경직된 수목형 구조에서 발생하는 상위 사람들의 오만방자하고 무법 무례한 폭력을 질타할 쓰는 용어로 정착되어 버렸다. 좋은 말로 세계에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부정적이고 천박한 말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그 갑질을 부리는 주체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커지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일들도 어떻게 보면 인터넷이란 세계적 연결망이 있어 가능했는데, 그 인터넷의 연결망이 리좀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 인터넷 연결망에 개체들은 누구나 접속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활발히 개진할 수 있으며 자기의 고귀함에 대한 이야기로 세계를 감동시킬 수도 있다.

예전에 대중가요에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라는 가사가 담긴 최희준의 노래가 있다. 그리고 『임제록』에 ‘수처작주 입처개진’ 곧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진리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리좀적 사유의 예들이다. 지혜는 많은데 실천은 없다. 사회가 점점 더 삭막해지는 이유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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