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의 詩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쇠기러기는 날아가고 동부새는 불어옵니다. 쇠기러기가 앉았다 떠난 자리엔 깃털 흔적이 남고 동부새 불어온 자리엔 새싹이 돋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은 이동순 시인의 「기러기의 깃털」>이란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동순 시인은 대구출생으로 1970년 동아일보 신문문예로 등단한 뒤 그동안 많은 시집을 내신 참 좋은 시인이십니다. 시집으로 『홍범도』 등 많은 작품집이 있습니다.

쇠기러기 한 마리 
잠시 앉았다 떠난 자리에 가보니 
깃털 하나 떨어져 있다 
보숭보숭한 깃털을 주워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이런 깃털조차 하나 없을 것이다 
하기야 깃털 따위를 남겨 놓은들 
어느 누가 나의 깃털을 눈여겨보기나 하리
                                       -이동순, 「기러기의 깃털」 

아무리 하찮고 못난 삶일지라도 한두 줄의 문장으로 개괄되거나 요약될 삶은 없습니다. 
어떤 진리 하나에 목말라 집안을 온통 도서관으로 바꾸어버린 삶, 알아주지 않는 그림이나 음악 한 점 때문에 뮤즈의 신에게 인생을 통째로 넘겨버린 삶, 목숨을 담보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하여 용기를 휘날려버린 삶, 자기가 경배하는 신을 향하여 무소유와 고행으로 오체투지하고 용맹 정진하는 삶, 나라와 민족에 대한 피 끓는 열정 때문에 10년 감옥도 불사한 채 투쟁하고 혁명하는 삶, 진정한 노동은 신성한 노동이 되어야만 정녕코 삶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동의 망치를 드는 삶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어떤 대중가수의 노래가사처럼 “등이 휠 것 삶의 무게” 때문에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들이 어느 날 대삿집에서 술 한 잔 얻어먹고 돌아와, 느닷없이 쏟아지는 설움과 원한으로 마당에 두 발 쭉 벋고 앉아 땅을 치며 통곡해대는 모습을 자주 보고 자랐습니다. 
또 그 울음 끝에 “내가 내 살아온 내력을 글로 엮으면 장편소설 열 권짜리는 될 것이다”라고 해대던 푸념을 듣곤 했습니다. 내 아내는 내가 귓구멍이 작아서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들을 말을 듣는 것이지 자본에 오염된 아무 말이나 다 들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 어머니들의 푸념이 내겐 오히려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진짜 이야기들입니다. 

어쨌거나 아무리 하찮고 못난 삶일지라도 한두 줄의 문장으로 개괄되거나 요약될 삶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동순 시인은 기러기 한 마리가 잠시 앉았다 떠난 자리에서 깃털 하나를 주워들고서는,“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이런 깃털조차 하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건 겸손의 극치입니다. 아무려면 기러기의 깃털 하나로 요약돼 버릴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동순 시인의 개결한 성품은 문단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설령 깃털 따위가 남아있다 한들 또 그걸 누가 눈여겨보기나 할 것인가,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시인뿐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날씨가 한결 풀리니 벌써 봄날에 들어앉은 듯합니다. 
그래서 여기선 천양희 시인의 「이른 봄의 詩」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나셨으며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오래된 골목』, 『마음의 수수밭』 등의 시집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도 둥지를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메아리는 능선을 짧게 찢는다 
한줌씩 생각은 돋아나고 
계곡은 안개를 길어올린다 
바윗등에 기댄 팽팽한 마음이여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랐구나 
아직도 덜 핀 꽃망울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둘러 나를 앞지른다 
아무도 늦은 저녁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리움은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이 붉다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온 동네 골목길이 
수줍은 듯 까르르 웃고 있다. 
                                           -천양희 「이른 봄의 詩」 

  이른 봄의 시입니다.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이 둥지를 고릅니다. 겨울날 둥지에 눈이 내리면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날개를 털어 둥지에 눈이 쌓이지 않게 했던 새들이 이제 한결 수나롭게 둥지를 고릅니다. 새둥지가 골라지는 그 나무의 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네요. 지금 시인은 봄 산행 중인데 봄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누군가의 야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산능선을 짧게 가릅니다.

그때 생각도 한줌씩 돋아납니다. 아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자연의 순리에 대한 생각을 하겠지요. 그런 생각에 젖을 즈음 계곡은 안개를 길어 올립니다. 아마 봄에 대한 희망으로 안개가 사라지고 맑은 봄빛이 비쳐나겠지요. 잠시 바윗등에 마음을 기대 쉬고 있는데 그 마음은 이미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라가 있겠군요. 여기 저기 피어나는 꽃망울을 보러 사람들은 서둘러 산을 오릅니다.

그러니 아무도 늦은 저녁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봄 산에 올라 설령 좀 늦은들 그리 대수가 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음 속 그리움이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들은 살구꽃이며 복사꽃으로 뒤덮여 붉겠지요.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인지 온 동네 골목길의 꽃들이 까르르 웃듯 마구 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봄산에 올라 바로 꽃 피어나고 있는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벅찰까요? 봄은 이렇게 싱그럽게 우리들의 마을에 이미 물밀듯 밀려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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