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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의 문화에세이(36)전고필 위원(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책장을 넘기며 시대를 읽어가는 나만의 방식

새해 들어 부쩍 책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적 여유로움이 아니라 탕진해 버린 지식의 고갈로 인한 강박 때문이다.

특히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장의 여건을 파악하지 못하고 책방이라는 무덤에서 덧없이 소모되지 않기 위함이다. 

작년 말을 휩쓴 두 권의 소설이 있었다. 
하나는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아직도 하얼빈은 읽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틀 정도를 투여해서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등장하는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는 대사에는 이념도 폭력도 사기도 몰상식도 다 덮어주고 남는 말씀으로 기억되었다. 찰진 전라도의 말맛, 특히 구례 일원의 “제땅말”로 구성된 소설은 마치 내가 지금 거기에서 작중의 아버지인 ‘고상욱’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넘실댔다. 과거 소설 태백산맥을 접할 때처럼 말이다. 

서울의 중류사회에서 사용하는 말(표준말이라고 한다)로 이 소설이 쓰였었다면 아무리 베스트셀러라 해도 1주일은 넘겨 읽었을 것이다. 생동감 있게 전개되는 장례식장의 표정에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의 궤적을 밟아가며 거기에 연관되었던 인물간 관계의 축적 과정은 온통 그 고장말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친숙함은 마치 실경을 그린 진경산수화 같은 적확한 말의 성찬이 다양하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제땅말의 향연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작년 그 책을 가지고 구례에서 작가를 만났음에도 사인을 받지 못하고 다음에 받기로 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뒷 따랐다. 언젠가는 책방의 말술학교로 초대해 뒷얘기도 듣고 사인도 받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다음에 집어 든 것은 역사강사인 황현필 선생이 쓴 “이순신의 바다”라는 책이었다. 
시종일관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진 이순신장군의 활약상에 풍덩 빠져드는 다른 방식의 역사서였다. 하지만 그 싸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준 호남에 대해 너무 소략하거나 넘어가는 것이 종내 아쉬웠다. 전라 좌수영의 5관5포 중에 1관4포가 있는 흥양현(고흥)의 사도진, 녹도진, 여도진, 발포진 군관들의 활약 같은 경우는 특별하게 다루어 주어도 좋을 터인데 생략한 것도 마음이 쓰였다. 

하긴 저자는 우리가 이미 몇가지 단편적인 것만으로 이해하며 다 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아봅시다 라는 청유의 의미를 담아 이 책을 집필했을 터이니 후속편을 기다려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고 위안했지만.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은 수군병사들의 희생이 있었던 곳도 고흥이고, 장군의 휘하에 가장 많은 부장들도 고흥이며, 둔전을 통해, 선소를 통해 전쟁물자의 공급이 그치지 않았던 지역으로서의 고흥의 역할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으니 그저 안타까움이 따랐다. 그럼에도 그 책은 하룻밤 사이에 다 읽혀졌다.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연대기별 기술인데도 적절한 자료 사진과 그림, 도표를 통해 쉽게 이해되도록 구성된 편집과 시원한 글쓰기 덕분이었다. 

다시 붙잡은 책은 이대흠 시인의 “코끼리가 쏟아진다” 라는 시집이었다. 
담양 사람중에 “대몽”이라고 제땅을 부르는 사람이 있듯, 진짜 장흥사람은 “어디 사쇼?”하면 “장”이라고 한다는 ‘장흥’이란 시를 쓴 작가의 최근 시풍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장흥과 남도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한 고군분투가 역력했던 “물속의 불, 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상처가 나를 살린다, 귀가 서렵다” 같이 익숙한 전라도 풍경과 말맛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번데기가 우화하여 나비가 된 듯한 느낌이라 해야 옳을 법했다. 

천형처럼 짊어지고 왔던 고향의 DNA를 벗어던져 버리고 동안거를 마친 스님이 산문을 나서는 듯한 모습을 시 안에서 보았다. 시들이 너무 좋아 아끼고 아껴 사흘에 걸쳐서 나눠 읽었다. 마음을 휘젓는 시는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작가의 시심에 의기투합하는 나만의 시그널을 남겼다. 

다시 책을 들었다. 이번에는 가장 어려운 평론집이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교수가 쓴 “인생의 역사”를 발행된 작년 10월 말에 샀는데 목차만 보고 책상 위에 두었었다. 그런 책과 눈이 마주치면 나를 꼬나보고 꾸짖는 것처럼 무섭다. 이제 책을 잡았다는 미안함과 안도감에 책머리 글부터 읽어간다. 평론가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라 적어갔다. 이것은 감성의 글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시 안에 나를 밀어 넣고 몸을 섞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의 평론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어 사이에 어떤 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며 파장이 남긴 지문이 오롯이 묻어 있는 터일 것이다. 

4일 간에 걸쳐서 읽는데 문득 이 문장이 눈에 밟혔다. 
한창훈 소설가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서 인용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그리고 W.H 오든의 “장례식 블루스” 시평을 통해 오늘을 읽는 독법을 배웠다.

159명이 죽었는데 그것을 한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고로 치부하는 것은 모독이다. 
한 생애가 비통하게 죽어간 것이 159번 일어난 참사이며 이로 인해 한 명 한 명이 가진 무한한 연결망이 송두리째 파괴된 짓이다. 며칠간 몰아서 읽은 소설과 시와 평론집은 한결같이 그렇게 얘기했다. 모든 생명은 존귀해서 지위고하가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 것이다. 
몇권의 책이지만 머릿속이 자글거리는 또 한해를 비로소 맞이한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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