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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밀착취재/ 중앙로 4개 거리⑥ 담양읍 천변리

담양뉴스는 ‘담양다운’ 풀뿌리 지역신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 하고자 지난 2019년 부터 【담양 원도심 살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연중 기획특집 보도를 통해 침체된 담양읍 원도심과 중앙로 활성화 방안에 대한 지역사회 의견 및 담양군의 사업방향을 제시중이다. 

금년에도 그 연장선에서 지역밀착형 기사 【담양 원도심 이야기】를 통해 담양 원도심의 형성과 번영, 그리고 침체의 부침을 겪었던 중앙로 일원 상인들의 이야기, 담양읍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뉴트로 및 레트로 감성 가게와 청년 상인들의 입점·정착기를 지면에 보도중이다. 

주요내용은
▲Ⅰ.밀착인터뷰/중앙로 사람들(기존가게&신생가게)
▲Ⅱ.밀착취재/중앙로 4개 거리
▲Ⅲ.원도심 상가의 유래와 역사 등이며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담양 원도심의 향토사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2022년부터 <밀착인터뷰/중앙로 사람들-기존가게&신생가게>를 보도중이며, 그 과정중에 두 번째 순서인 <밀착취재/중앙로 4개 거리>을 특집으로 보도한다. 
담양뉴스는 이같은 기획특집 보도를 통해 담양군이 추진중인 <담양 원도심 활성화>, <담양 문화도시> 추진사업과 관련, 담양읍 원도심 상권회복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물론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번 동기부여에 나설 계획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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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담양읍 천변리
<천변리>

▲천변리 전경

※사진=1. 천변리(드론사진)   
“담양읍 천변리는 관방천 물줄기가 담양읍의 동쪽에서 남산 앞 들을 거쳐 마을을 서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이곳 천변에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천변(川邊)’ 마을로 불렸다” 

천변리 행정구역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주변의 누문리, 간리 일부를 합해 천변리로 편입했다.
고려시대 1,300년 말 담양사람 국무(고려 호부상서를 지낸 국유의 아들)가 고려의 멸망으로 개성에서 피란 차 이곳에 들어와 지금의 천변리 23번지 부근에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또, 천변리 2번지 부근에는 조선시대 관아와 아전 관속의 자제를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그 자리에 담양심상고등소학교가 있었다.
천변리는 옛.우리약국 사거리에서 지금의 뚝방국수 방면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누문동, 병문거리, 비석거리, 소전머리, 수바래 등의 지명을 가지고 있다.

▲담양축협-정미다방(옛 병문거리)

과거 천변리는 담양버스터미널이 있었고 인근에 재래시장인 담양5일시장이 있어 담주리와 함께 많은 외지 사람들이 오가는 담양읍의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또, 중앙로를 중심으로 초가식당 골목길과 옛.우리약국 사거리 등 이면도로를 따라 주로 주택들이 밀집했다.  

천변리는 또, 중앙공원 바로 앞에 옛.담양소방서(현.중앙파출소 옆)가 있었으며 자애서점, 대동의원(옛 동산병원), 김동호 고택, 담양택시, 제일약방, 담양버스터미널, 88올림픽다방, 담양신협 등이 있다. 담양중학교 후문쪽으로는 김재호 고택, 국쾌남 고택, 옛.농촌지도소, 담양탁구장, 연탄공장, 빵공장, 천변정미소, 담양우시장 등이 있었다. 

담양 우시장이 있던 일대를 ‘소전머리’라 불렀고 이 일대는 우마차 제작소와 정비소, 공업사, 대장간, 농기계수리소, 석유가게를 비롯 우시장 손님을 상대로 한 선술집, 국수집, 밥집 등이 즐비해 근대 담양읍 최대의 상공업 중심지 역할을 했다. 

▲버스터미널 주변

또한, 당초 담양버스터미널이 천변리 현.광주은행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좌우 중앙로 거리에 각양각종의 상가들이 형성됐으나, 버스터미널이 지침리에 위치한 지금의 장소로 옮겨간 뒤에는 그 지역의 쇠퇴를 가져왔다. 대신 현. 버스터미널 일대 천변리 상가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담양읍의 중심 상가지역으로 상권이 크게 확장됐다. 

천변리는 현재 담양중학교와 담양고등학교 등 학교가 있는 버스터미널 주변 천변리 지역의 상권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사이에는 담양사랑병원, 동산병원을 비롯한 크고 작은 병원, 의원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어 일종의 ‘의료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끝/중앙로4개거리)
※다음호 부터는 Ⅰ.밀착인터뷰(중앙로사람들-기존가게/신생가게)가 계속 이어집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옛 천변리 전경(구.담양경찰서 앞)


※사진=거리사진1,2,3(3컷)

【천변리 마을의 역사문화자원】
⚫ 주요 문화유산
석인상(조선 헌종4년(1838년) 담양부사 홍기섭이 담양의 지세가 떠다니는 배 형국이어서 배를 움직이는 뱃사공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세웠다. 천변리 주민들은 해마다 추석과 정월보름에 석인상에서 제사를 지냈다.

⚫ 옛 주요건물
김재호 고택, 국쾌남 고택, 김동호 고택, 담양성당, 중앙파출소, 담양소방서, 담양농협(구.본 점), 담양축협, 담양중학교, 담양고등학교, 천변정미소, 우시장, 담양탁구장, 천주교담양성당

⚫ 주민소통 문화공간
천변리 마을회관, 정미다방(구.천변정미소), 담양중학교, 담양고등학교 

<지명에 얽힌 천변리 문화유산>
⚫ 또랑길
현재의 정미다방 앞에서 마을회관 옆으로 이어지는 길은 과거에 폭5m 가량의 실개천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주거지가 밀집되면서 복개해 길을 만들었다. 

⚫ 수바래
하천을 따라 제방 주변에 아카시아, 탱자나무 숲이 있어 ‘숲 아래’ 마을이었던 것이 발음상 ‘수바래’로 불려졌다.

⚫ 소전머리
소를 팔고사는 옛 우시장이 있었던 곳을 말하며 전국에서 가장 큰 우시장 중 하나였다고 함. 현재의 뚝방국수 앞

⚫ 비석거리
천변리마을회관 앞에 석인상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로 불렀다. 

⚫ 병문거리
조선 숙종때 문신인 이만유가 이곳에 낙향하자 임금이 세워준 병문(兵門)으로 인해 병문거리라 함. 현재의 담양축협-천변마을회관까지 천변리 중앙을 가로 지르는 1구, 2구의 경계지역 골목길.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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