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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제35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9. 1594년 2월
 
(35화)
  능주는 석굴 안에서 쉬었다 가는 것을 포기했다.
안에 어떤 맹수가 들어있을지도 몰랐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능주는 냉정을 잃지 않았다. 늑대 눈을 빤히 바라보며, 능주는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로 산을 내려갔다. 단검을 쥐고 있는 손과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오금이 저려왔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바위를 디디며, 늑대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봇짐 속 단지에도 신경 썼다. 덮치면 어떻게 하나.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대비책을 세웠다. 한 마리가 덮치든, 다섯 마리가 동시에 덮치든, 단검으로 대항하는 방법뿐이었다. 그 다음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로 내려가는 동안 늑대는 사납게 지켜보기만 할 뿐 덮치지 않았다. 늑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능주는 뒤로 돌아 잽싸게 걸었다.
‘쉰널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쉰널이는 바위가 편편하고, 전망이 탁 트여 쉬어가기 좋은 바위라는 이름이었다. 바닥에 봇짐을 풀고 털썩 주저앉았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손부채를 하며 땀을 식혔다.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늑대는 야행성이라 날이 새면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라갈까. 그럼 너무 지체되는 거 아닐까. 뭐 그래 봤자 한두 시간 차이잖아. 어차피 석굴에서 쉬기로 한 거 아냐. 여기서 쉬나 석굴에서 쉬나 마찬가지 아냐. 능주는 자문자답했다. 오던 길을 돌아가 다른 길로 간다면 쉬었다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 길에 왜군이 매복해있을지도 몰랐다. 정보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능주는 다시금 느꼈다. 왜군이 어디에 진을 치고, 어디에 매복해 있는지를 안다면 굳이 돌아서 가거나 험준한 산에서 밤길을 걷지 않아도 될 게 아닌가. 능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석굴보다 쉰널위에서 쉬었다 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이윽고 능주는 두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주쳤을 때는 울지 않더니, 왜 이제야 운단 말인가. 능주와 마주쳤을 때 늑대들도 긴장해서 울지 않고 예의주시했는지도 몰랐다. 늑대가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기들 영역에 침입한 침입자를 몰아냈다고 자축하는 듯했다. 능주는 문득, 저기가 늑대들의 영역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석굴 안에는 짐승의 흔적이라고는 털끝 하나도 없었다. 그런 흔적이 있었다면 능주는 그들의 영역임을 인정해 그 안에서 밤을 새우지 않았을 것이다. 굶주린 짐승의 침입을 막으려고 등잔불을 켜놓긴 해도, 짐승이 자기들 영역이라고 언제 들어올지 모르지 않은가.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늑대 무리가, 야밤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영역을 주장하는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다. 아내를 죽게 한 늑대라서 모두 잡아 때려죽이고 싶지만, 마음뿐이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데,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별이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저 많은 별 중에 아내별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별이 되어 능주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능주는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며 입속말을 했다. 지켜 줄 거지? 대답은커녕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동틀 무렵이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늑대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능주는 봇짐을 풀어 주먹밥 한 덩이를 꺼내 날름 씹어 삼키고 발길을 재촉했다.
날이 새기 전에 최대한 멀리 가야 했다. 길을 걸으며 봇짐 속의 단지를 생각했다. 등잔불이야 없으면 관솔불로 대체하면 되지만, 꿀단지는 없앨 수 없었다. 단지만 없으면 한결 자유로울 텐데, 단지가 능주 몸을 일정 부분 옭아매고 있었다. 바위 사이를 지날 때도 행여나 단지가 깨지지 않을지 조심해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단지를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나중을 기약하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 드는 게 아니었다. 사실 덕령이에게 꿀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광옥이 동생을 바라는 마음에 준비한 꿀이지 않은가. 덕령이는 민경이와 떨어져 있지 않은가. 꿀을 먹고 욕망이 끓어 넘친들 민경이에게 쏟을 일은 없지 않겠는가. 능주는 덕령이에게 꿀이 없어도 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생각했다.
 
 하지만 봇짐에서 꿀단지를 꺼내지 못했다.
덕령이가 생사를 걸고 전장에 나갔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단지를 숨겨놓고 갈 수는 없었다. 꿀을 먹고 힘을 내서 왜군을 모조리 무찌르기 바랐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전장에 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덕령이가 의병을 모집할 때 내심 함께 가자고 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덕령이는 능주에게 그런 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가족을 잘 돌보는 것도 충정의 하나고, 부인과 아들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전장에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가족이 걱정되면 전장에서 주저할 것이 우려되었는지도 몰랐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눈앞에 원봉이 가까이 있었다. 요동산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능주는 빠르게 원봉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다음 목적지인 천태산까지 가는 길에 장막은 보이지 않았다. 왜군이 아직 여기까지는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낮에 이동해도 안전할 것 같았다. 안전할 때 최대한 멀리 가고 싶었다. 능주는 호흡을 한 번 고르고 천태산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걸으면 천태산 거북바위에, 술시에는 도착할 것이다. 석굴에서 요기도 하고 잠시 눈을 붙일 것이다. 능주는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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