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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1/ 담양이야기(59) 우리 지역 어떻게 생겨났을까? ①

담양의 중심지, 담양읍(潭陽邑)

담양의 중심지인 담양읍은 조선시대에 담양도호부의 동변면과 서변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개편으로 담양면으로 통합됐으며 1943년 10월 1일에 담양읍으로 승격됐다.

1983년 2월 15일에 담양읍 인근의 4개면에서 9개리를 추가로 편입했다. 전체 면적은 29.52㎢로 담양군 전체의 6.5%에 이르는 규모이다. 행정구역은 법정리 18개 마을, 행정리 44개 마을, 자연마을 39개 마을, 반 115개 마을이다.

문화재로는 석당간(보물 제505호), 오층석탑(보물 제506호), 남산리 용화사 불조역대통재(보물 제737호), 향교리 담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으며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등 자연유산이 아름답다.

죽세공예단지(현.한국대나무박물관)가 있어 담양의 특산물인 죽세공예의 중심지이며 광주와 근접하고 있어 근교농업이 발달해 생산성이 높다. 그리고 학문의 전통을 이을 도립 담양대학(현.전남도립대학)이 들어서 있다.

객사리(客舍里)는 담양도호부 관아인 객사(客舍)건물이 있어 지명이 유래됐다. 객사란 지방을 방문한 관원들을 접대하거나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국가를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관원들이 참배를 하던 기능을 가졌던 건물이다.

반룡리(盤龍里)는 1680년경 마을이 성촌되었는데 1구는 서쪽의 마두마을, 2구는 용주마을이다.

용주에는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이곳은 용이 물고 있는 구슬(珠)과 같다하여 불리게 됐다. 반룡 3구는 600년 전부터 구터로 불려 오다 신촌(新村)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담양의 역사와 문화/담양군刊) /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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