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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담양천년 특별기획Ⅰ/ 담양의 근대건축물(3)-담양의 명물 ‘양샘’

담양읍의 명물 ‘양샘-양시암’
주민들 식수, 약수로 1년 내내 애용하던 우물
여름날 무더위 씻어주던 속칭 ‘땀때기 시암’
낮에는 남자들 놀이터, 밤에는 여자들 목욕장
40대 후반 이상 중장년층에겐 추억의 장소

담양뉴스는 '2018 담양천년 특별기획'으로 <담양의 인물> <담양의 마을탐방> <추억의 우리동네> <담양의 근대건축물> <담양, 꼭 알아야할 100가지> 등 '담양 알기' 시리즈를 보도중입니다. 이번호에서는 ‘담양의 근대건축물(2)-담양읍 양시암’을 소개합니다. 
한편 본지는 <담양의 근대건축물> 취재 영역을 보다 더 확대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담양 지역사회 여러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던 근,현대기 건축물과 시설물을 비롯 역사적 건물 까지 보존가치가 높은 것을 발굴해 소개할 방침입니다. / 편집자 주

▣ 양샘의 추억

▲'양샘'이 있던 자리(1박2일 포장마차 뒷편)

담양읍 주민들의 식수는 물론, 여름철이면 냉수마찰과 목욕을 즐겨하던 ‘양샘’ 또는 ‘양시암’(좋은 물이 나는 샘)은 낮에는 남자들의 놀이터로, 밤에는 여자들의 목욕장소로 애용되면서 이러저런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냈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쉬움을 더해준다. ‘양샘’은 현재 담양문화회관 건너편 ‘1박2일 포장마차’ 부근에 존재했으며, 70년대 초반 담양읍에 상수도(지하수 활용)가 보급된 이후 물 부족을 우려해 양샘의 우물을 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 양샘의 유래

▲남희정 정자

담양읍의 명물 ‘양샘-양시암’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60여년 전인 조선후기때 부터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된 우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최초 양샘이 발견된 이후 260년이 넘도록 양샘은 담양읍의 가장 맑은 물, 좋은 물로 읍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우물이었다.
기록이나 옛 어른들의 전언에 의하면, 양샘은 조선시대 황종림 담양부사에 의해 발견돼 읍민들의 우물로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황종림 부사가 담양읍 남산 산록에 ‘남희정’을 건립하면서 허허벌판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정자 건립에 종사했던 목수와 백성들의 식수로 사용한 것이 양샘의 최초 발견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양샘의 수량이 워낙 풍부하고 물맛이 좋아 읍내 백성들의 식수로 사용하도록 우물을 조성하게 되었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월동안 담양읍의 가장 오래된 우물중 하나로 사용되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 양샘의 활용

양샘은 워낙 물맛이 좋고 맑아 1970년대 중반까지 주로 인근 지침리, 천변리, 남산리, 미리산, 주민들의 식수로 애용됐지만 무엇보다 여름철에는 한번의 목욕으로도 땀띠가 없어지고 피부병에도 좋은 약효가 있다해서 담양읍민들이 너도나도 찾아와 목욕을 즐겨한 생활용수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시설이 너무 열악해 1970년 담양군(당시 군수 민경기)이 주위 일대를 정비하게 되었는 바,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하고 세면장, 빨래터, 우물통과 우물지붕 등을 설치하는 등 말끔히 단장해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이어서 양샘 근동의 마을은 물론이고 읍내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양샘의 물을 물통에 퍼나르며 식수로, 생활용수로 이용했다. 

▣ 양샘의 폐쇄

▲상수도 취수장이 있던 자리(현.원광어린이집)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세월 읍민들의 식수로, 생활용수로 사랑받아 왔던 역사적 산물이었던 이 양샘은 아쉽게도 담양읍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우물’의 역사도 끝이나고 말았다.
1971년 3월 담양군청(현.읍사무소)에서 많은 읍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담양읍 상수도 통수식이 거행됐고 이후 상수도를 사용하는 수용가구가 점차 늘면서 상수원 수량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양샘 바로 옆 100m 거리에 있던 취수장(현.원불교유치원)으로 양샘의 물이 유입되면서 양샘의 물이 급격히 감량되고 말았던 것. 이로인해 담양읍 주민들의 식수와 약수, 그리고 놀이터와 목욕장으로 사용되던 양샘은 1975년에 완전 페쇄되고 말았으며 추억의 장소로만 남게됐다.
이 시기에 양샘을 이용하던 읍민들, 지금은 대략 40대 중후반 이후의 연령대에게 ‘양샘’은 이처럼 추억의 장소로 기억된다. 더운 여름날이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양샘에 뛰어들어 얼음보다 차가운 양샘물로 세수하거나 등멱을 감으면 무더위가 씻은 듯 사라지고, 그시절 유난히 자주 났던 땀띠도 거짓말처럼 없어지곤 했다.
특히, 여자들은 해가 저물면 너나없이 양샘에 삼삼오오 모여 등멱을 감고, 목욕을 하면서 생활에 지친 하루를 씻어내곤 했다. 이때 동네의 개구쟁이들은 아름드리 수양버들 뒤편에 숨어 달빛에 비취는 여자들의 목욕 모습을 훔쳐보느라 밤새는 줄 모르곤 했다.
아쉽게도 양샘이 폐쇄된 지 40여년이 흘러 지금 그 당시 양샘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양샘이 흘러가던 농수로 수문(현존)

▣ 양샘의 복원

담양군은 ‘2018년 담양지명 천년’을 맞아 기념사업 일환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관내 역사적인, 그리고 기념할만한 우물터, 연못, 뚬벙 등을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에따라 담양읍의 가장 오래된 우물터인 양샘의 복원에 희망이 엿보이고 있다.
양샘의 경우는 역사적 유래와 함께 수질이 좋고 풍부할 뿐 아니라 장소적 여건도 좋아 복원할 경우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도 매우 높다는 평가여서 담양군의 보다 적극적인 복원 의지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담양(潭陽)은 못담(潭), 볕양(陽)을 쓰는 지명에서 유래하듯 예로부터 물이 좋고 풍부한 고장이었음을 볼 때 역사적 유래까지 갖춘 ‘담양읍의 양샘’은 반드시 복원하여 양샘에서 퍼 올린 맑고 깨끗한 물을 관광자원화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 장광호 국장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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