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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추월산 길라잡이(제37화)

담양뉴스 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37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37화)
                              10. 1595년 4월

 능주가 떡배와 집으로 들어서자 민경이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 밝은 표정으로 떡배를 맞았다. 능주는 떡배가 덕령이 소식을 가져왔다고 알렸다. 요 며칠 그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던 터라 정보에 목말라했다. 민경이가 애를 태우고 있던 참이었다. 덕령이가 서찰을 보내오지 않아 마을에 은근히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덕령이가 전사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서찰 한 통은 보냈을 텐데, 함양으로 간 후로 소식이 없으니 그런 소문이 나돈 것이었다. 민경이는 떡배를 대청마루에 앉히고 덕령이 소식을 재촉했다. 떡배가 마루에 앉았음에도 아씨는 앉지 않았다.
 
 떡배는 민경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천한 주제에 귀한 우리 아씨를 어떻게 똑바로 바라본다는 말인가. 눈곱만큼도 버르장머리가 없는 짓거리였다. 흑심이라도 있는 거 아녀? 능주는 떡배가 민경이에게 허튼수작이라도 걸면 요절을 내고 말겠다는 각오로 지켜보았다. 민경이가 덕령이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감히 니 같은 게 우리 아씨를. 능주는 속으로 씩씩거렸다. 능주 마음을 읽기라도 했을까. 이윽고 떡배가 눈을 내리깔았다.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광옥이가 방에서 황급히 나왔다. 광옥이는 앉을 염도 없어 보였다. 민경이처럼 대청마루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어린 광옥이도 아버지를 무척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광옥이 눈시울이 촉촉했다. 핏줄이 뭐라고. 능주는 가슴이 찡했다. 아버지가 출병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던 광옥이었다. 능주가 남원에서 가져온 소식을 듣고도 담담해하던 광옥이었다. 한번쯤 아버지 소식을 물을 수도 있었는데, 광옥이는 아버지라는 세 음절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능주는 속으로 광옥이를 불효자로 생각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아버지 생사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궁금증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다는 생각에 안쓰러워 보였다.
 
  “장군님은 무탈하신가요?”
  민경이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떡배에게 물었다.
  “하먼요. 장군님께서 이월에 고성에서 기습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아입니꺼? 그뿐이 아닙니다. 삼월에는 곽재우 장군님과 연합해가, 왜군을 섬멸해뿌렀습니더!”
  떡배가 마치 자랑하는 것처럼 들뜬 어조로 말했다
  “장군님께서 무탈하다 이거죠?”
  “그렇다니까예? 왜군 사이에서는 장군님 이름만 들어도 오줌을 지란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더.”
  “혹시 부상을 당하거나, 편찮으신 적은 없었나요?”
  “장군님이 왜 부상을 당합니꺼? 한 번도 다친 적 없습니더. 그러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더.”
 
 긴장하던 민경이의 얼굴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광옥이 표정도 밝아졌다. 민경이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을 거라며 떡배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손수 아침상을 준비하겠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능주는 민경이가 손수 차려준 밥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민경이가 부엌으로 사라지자 떡배는 광옥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와! 도련님도 엄청 늠름하네예? 튼튼하게 자라서 장군님처럼 훌륭한 분이 되셔야지예?”
 
 광옥이는 떡배 말에 가타부타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능주는 민경이가 준비한 밥상을 들고 떡배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떡배는 밥을 뜨면서도 덕령이 이야기를 침 튀겨가며 했다. 떡배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떡배 말에 장면 하나하나가, 동작 하나하나가, 머리에 선명히 그려졌다. 떡배는 마치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은 것처럼 덕룡이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산에서 듣고, 방금 전 민경이에게 전할 때 듣고, 지금이 세 번째지만 싫증나지 않았다. 능주가 계속 귀를 기울인 탓인지, 떡배는 덕룡이의 무용담을 반복했다. 떡배 말에 과장이 섞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왜군을 무찔렀다는 것만큼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대단한 전과라고 생각했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활이나 창검 같은 재래식 무기로 대적했을 게 아닌가. 그것마저 없어 죽창을 들고 싸우는 의병들의 활약상이 머리에 그려졌다.
 
 덕룡이의 무용담이 되풀이될수록 능주는 덕룡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말이 봄이지 아직 추위가 한창이었다. 민경이가 정성스레 준비한 철릭과 직령도 전하지 못했고, 석청은 전할 수도 없게 박살나버렸다. 덕령이는 이 추위에도 생사를 걸고 왜군을 무찌르느라 여념이 없을 텐데, 자기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덕령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함양까지 가서 철릭과 직령을 전해주라고 해도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석청이 걸렸다. 민경이가 또 석청을 보내고 싶을 텐데, 집에 석청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석청을 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추월산 암벽에 있는 석청을 따는 것뿐이었다. 아내와 따려고 했던 곳은 다른 석청꾼이 발견해 온통 바위를 헤집은 바람에 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능주는 벌이 이동하지 않게 최소한의 구멍만 내서 석청을 땄는데,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다행인 건 지금 때죽꽃이 만발했다는 것이다. 암벽 벌집에 석청이 충분히 들어 있을 것이다.
 
  “동상, 지난번에 나하고 한 약조를 잊지 않았는가 모르겠네?”
  아침상을 물리고 능주가 떡배에게 물었다.
  “약속이라니예?”
  “배랑방에 있는 석청을 따는데 동상이 도와준다고 했잖여?”
  “아, 그거요? 당연히 도와야지예.”
  떡배가 호탕하게 대답했다.
  “그람 오늘 그 석청을 따러 가세. 내가 있잖여? 장군님 드릴라고 석청 단지를 봇짐에 메고 남원으로 갔단 말이시. 왜군이 매복하고 있을지 몰라 밤에 산길을 가는데, 사향노루가 바위 등걸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 주저앉았지 않았겄는가? 그 바람에 그만, 단지가 깨져부렀단 말이시.”
  “아이고야! 식껍했겠는데예?”
  떡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식겁이 문제가 아니었제.”
  “그라먼예?”
  “석청이 바지에 촉촉하게 젖었지 않았겄어? 마늘을 재웠으니 냄새도 고약하고. 그 차림으로 장군님 계신 곳을 물어보려는데 다들 똥 싼 줄 알드랑께. 미친놈이 옷에 똥을 싸고선 씻지도 않고 돌아다닌 줄 알고 다들 고개를 외로 틀고 피하드라고.”
  “하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는데예?”
  “꼴새가 그랬으니 동상도 틀림없이 그라고 생각했을 거구먼.”
  “석청이 똥색하고 비스무리하니 생겼다 아입니꺼? 사정을 모르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았겠네예. 하하하.”
 
 떡배가 호방하게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능주도 따라 웃었다. 모처럼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능주는 십 년 묵은 체증이 해소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민경이에게 단지를 깨트린 사연은 털어놓았지만 똥 싼 놈 취급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가슴에서 하얗게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연달아 들려오는 비보에 사람들이 침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얼빠진 놈이라고 매도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에 담고 있었는데, 떡배에게 풀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능주는 밧줄, 정, 망치, 단지, 훈연기 등의 채밀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혼자 산에 오를 때면 늘 외로웠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더구나 위험지역에서 채밀할 때는 두려움이 더했다. 하지만 떡배와 길을 나서니 든든했다. 그동안 그림의 떡으로만 여겼던 직벽의 석청을 기필코 따리라 마음먹었다. 떡배가 직벽을 타는 것은 일도 아니라 했으니 돌아올 때는 단지 가득 석청을 담아 올 것 같았다. 때를 맞춰 아내가 떡배를 능주에게 보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떡배는 능주와의 약속 때문에 다시 왔을 수 있다. 아니면 덕룡이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단지 사향만을 구하려 했다면 가까운 산에서 잠복하는 게 더 유리할 테니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떡배와의 동행에 든든함을 느낀 건 어쩔 수 없었다.
 
 추월산이 가까워올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쉬엄쉬엄 올랐던 산이지만 오늘따라 가뿐하게 올랐다. 가는 길에 낫으로 칡넝쿨을 잘라 한 아름 들고 갔다. 덕룡이가 기병 후로 추월산에 오지 않았지만 발견하기도 쉽지 않은 위치에 있으니 석청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다른 석청꾼이 발견했다 해도 감히 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능주가 그 장소를 발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산에 오르면 전망이 좋은 곳에 멈춰 서서 벌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벌의 이동 경로를 알아야 석청의 위치를 찾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부엉이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휘우듬한 소나무 우듬지 근처에 벌떼가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였다. 수십 마리의 벌이 주위를 맴돌았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모여 있을 터였다. 기존의 벌집에서 분봉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저 나무에 둥지를 틀면 톱으로 베지 않는 한 따기 힘들어 보였다. 벌이 안착하기에 적당한 장소도 아니었다.
 
 능주는 조심스럽게 소나무로 다가갔다. 소나무는 암벽지대와 가까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힘껏 소나무를 흔들었다. 소나무가 워낙 굵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잘한 돌을 주워 벌떼를 향해 날렸다. 오십 번 넘는 돌팔매질 끝에 벌떼를 명중시켰다. 놀란 벌이 일시에 날아올랐다. 능주는 벌에 쏘이는 걸 각오하고 벌떼가 향하는 장소를 유심히 보았다. 직벽의 바위틈에 벌떼가 진을 쳤다. 벌떼의 움직임을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은밀한 곳이었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지 않는 한 딸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곳으로 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암벽뿐인 곳에서 자잘한 돌을 찾을 수 없었다.
 
 드디어 벌집이 있는 직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벌집은 그대로였다. 벌들이 분주히 바위틈을 드나들었다. 능주는 칡넝쿨을 여러 가닥으로 야무지게 엮어놓고 어디에다 밧줄과 칡넝쿨을 매야 하는지를 살폈다. 나무에서 석청이 있는 지점과, 석청에서 바닥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는데 떡배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님요? 줄을 타고 내려가는 기는 문제가 아닌데, 벌이 쏘지 않습니꺼?”
   예상치 못한 질문에 능주는 어안이 벙벙했다.
  “침이 있는디, 당연히 쏘제. 그래서 이렇게 훈연기를 준비한 거 아니겄어?”
  “연기를 피워도 벌이 전부 도망간다는 보장은 없다 아입니꺼?”
  “그거야, 그라제.”
  능주는 말끝을 내렸다.
  “그카먼 행님이 따실랍니꺼? 행님은 벌에 내성이 생겼을 거 아입니꺼? 지는 마, 아직 경험이 없다 아입니꺼? 저 높은 곳에서 벌에 쏘여, 깜짝 놀라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아입니꺼?”
  능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떡배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반박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동안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이제 와서 떡배가 이렇게 나오니 답답할 뿐이었다.
  “아니, 그 자신감은 도대체 뭐였는디? 지금까지 나를 기만했다 이거여?”
  능주는 말끝을 높였다.
  “와 행님을 기만하겠습니꺼? 지금까지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야 떠올랐다 아입니꺼?”
  “동상을 찰떡 같이 믿었는디, 시방 이게 뭐란 말인가?”
 
 능주는 바위에 짓눌린 듯 답답했다. 오늘은 질 좋은 석청을 따 올 거라고 민경이에게 큰소리까지 쳤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떡배를 너무 믿은 탓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이렇게 나오다니. 배신감이 스멀거렸다. 담양 부사가 떡배에게 생향을 내 준건 덕령이의 목숨 값이나 진배없었다. 출병한 의병장이나 의병들이 거지반 목숨을 잃었지 않은가. 그걸 알고도 장군은 생향 때문에 담양 부사에게 약조하지 않았던가. 꼭 생향이 아니라 충정 때문에 기병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해도, 떡배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능주는 떡배 멱살을 움켜잡고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었다. 능주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에 살벌한 기운이 어렸다. 불끈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떡배가 정말로 꿀벌이 쏜다는 것을 이제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생향을 얻었을 때는 감격에 겨웠거나, 아버지를 빨리 구출할 생각에 벌침을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스무 살도 넘은 나이에 이제야 벌침을 떠올렸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제 와서 발뺌할 수는 없었다. 능주는 금방이라도 때려눕힐 것처럼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 떡배를 노려보았다.
  “행님요? 와 그렇게 쏘아보는교? 제가 뭐, 거짓말한 줄 아십니꺼?”
  떡배가 대거리했다.
  “니가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여!”
  “그럼 어째야 되는데예? 줄에 매달려 벌침을 온몸에 맞아야 사람입니꺼? 그러다 고통을 못 이겨 줄에서 떨어져야 사람입니꺼? 떨어져 바위에 대갈통이 깨지고 온몸이 산산조각 나야 사람입니꺼? 너무 하신 거 아입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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