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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1/ 담양이야기(62) 우리지역 어떻게 생겨났나 ④

선비문화의 본향, 남면(가사문학면)

조선시대에 창평현의 내남면, 외남면에 속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시 외남면, 내남면을 합해 남면이라 했다. 

1955년 7월 1일 광산군 석곡면의 덕의·충효·금곡리가 편입됐다가 1957년 11월 6일 광주시로 다시 넘어가고 1990년 4월 1일 외동리가 창평면으로 편입됐다.

남면은 43.55㎢의 면적으로 담양군 전체의 9.6%이다. 행정구역은 법정리 11, 행정리 19, 자연마을 26, 반 30개 이다. 무등산을 앞으로 안고 서쪽으로는 광주와 고서면, 동남으로는 화순 이서면과 북면, 북으로는 창평면, 대덕면과 접경하며 담양군의 최남단이다. 

광주호 및 식영정(전라남도기념물 제1호), 소쇄원(사적 제304호),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호), 독수정(전라남도기념물 제61호), 개선리 돌미륵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가사문학관이 개관되어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방도 887호선이 중심을 관통하여 화순온천과 연결되어 있다.

학선리는 원래 창평군 내남면 이었는데 1914년 남면에 편입되면서 개선동, 외지곡, 학미동 일부와 광주군 석저면의 덕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학선리라 했다. 1976년 준공된 광주호로 인해 학미동은 잠기고 말았다.

지곡리는 창평군 내남면 지역으로 지실이라 했다. 1914년 지석리를 병합해 담양군 남면에 속하게 됐다. 예로부터 선비들의 발길이 그칠 새 없는 사림문화의 발상지이자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인 식영정이 있고 2000년 11월에 개관한 가사문학관이 있다.

지석리는 1525년경 제주 양씨가 입촌했던 곳이다. 양산보가 소쇄원(사적 제304호)의 애양단을 쌓으면서 마을 뒷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통과하는 지점에서 자연석이 외줄로 괴어 있는 위에 담을 쌓았다하여 고인돌을 뜻하는 지석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연천리는 창평군 내남면 지역으로 제비내 또는 연천이라 불렀다. 1914년에 담양군 남면에 속하였다.

정곡리는 솥골로 부르는데 창평군 내남면에 속했으나, 1914년 담양군 남면에 편입됐다. 왼편에 무등의 영봉이 지맥을 승화하는 듯 아담스러운 느낌이 저절로 풍긴다.

천연석의 돌담도 예전 터의 정감을 그대로 말해준다. 남양 홍씨가 처음 정착했다고 하며, 1950년 한국전쟁 때 정곡리의 장문터, 내촌, 사봉실, 평촌마을 등 125호가 모두 소각됐다. 

사봉실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해가 비치는 시간이 매우 짧다. 해가 저물면 “사봉실 사람들이 제상의 멧밥을 지을 때라고 하였다”는 말이 전하고 있다. 서봉사터가 있다. 
(출처: 담양의 역사와 문화/2001년 담양군刊) /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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