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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39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10. 1595년 4월
능주는 줄을 가슴에 묶고 위에서 칡넝쿨을 잡고 조심해서 내려왔다. 
떡배가 줄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능주는 밧줄보다 칡넝쿨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아래로 향했다. 난생처음 시도하는 거라 온몸이 떨렸다. 게다가 떡배 동태까지 살펴야 하니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능주는 아내에게 기도했다. 잘 지켜달라고. 기도가 먹힌 것일까. 능주의 걱정과 달리 떡배가 애초 계획대로 안전하게 줄을 잡아주었다. 
  
능주는 바위틈 벌집 앞에서 멈춰, 자세를 잡고 훈연기로 벌을 쫓았다. 벌이 연기를 피해 무리 지어 벌집을 빠져나갔다. 망태기에서 정을 꺼내, 망치로 치며 바위틈을 쪼았다. 땅, 땅, 땅. 망치 소리가 크게 들렸다. 메아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망치질을 열댓 번 하고 나니, 바위틈이 아이들 손이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이런!
능주는 짧게 탄식했다. 벌집 입구에 동박새가 죽어 있었다. 
비바람을 피하려고 바위틈으로 들어갔다가 벌떼의 공격에 죽은 모양이었다. 죽은 지 꽤 오래돼 보였다. 동박새는 단단한 깃털만 빼고 머리나, 가슴 같은 곳에 난 부드러운 털은 홀라당 빠져 있었다. 한데 이상한 점은 동박새가 하나도 썩지 않았다는 것이다. 썩은 냄새조차도 나지 않았고, 털이 방금 전에 뽑힌 듯 껍질이 온전했다. 뱀이 바위틈에 있다가 동박새를 죽였다면 털도 뽑지 않은 채 통째로 삼켰을 것이다. 바위틈은 부엉이나 독수리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그러니 맹금류가 죽였을 리도 없었다. 설령 어찌어찌 들어가 있다가, 맹금류가 동박새를 죽였다면 몸통은 쪼아 먹고 털만 수북하게 남았을 것이다. 능주는 산에서 맹금류에 잡아먹힌 새들의 흔적을 가끔 보았다. 그 자리에는 뼈마디는커녕 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동박새를 썩지 않게 했던 동물은 벌이 분명했다.
  
봉교 때문이었다. 
봉교는 식물의 점액, 수지, 수교 등을 벌이 채집하여 봉랍과 벌 자신의 분비물을 식물 분비물에 혼합하여 만든 천연 액체다. 수분이 송송 뚫어진 벌의 방으로 침투하는 걸 막고, 미생물이나 유충들의 침입도 방어한다. 봉방 속으로 진입하는 공기를 조절해주고, 정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도 있다. 그러니까, 다양한 균류의 침투를 막거나 치료하는 데 유용한 항균제이면서 방부제인 것이다. 벌이 봉교를 생산한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함이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벌이 살아야 하는데 병원균이 침투하면 금세 번지기 쉬운 구조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항균제나 방부제가 없으면 집단으로 감염되어 몰살당할 수 있다. 그걸 방지하려고 봉교를 고안했고, 침입자가 있으면 봉교를 바르는데, 그런 이유로 동박새가 썩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능주는 알지 못했다.
  
  “앗 따가워! 행님요? 밧줄 꽉 붙잡으이소, 이?”
고개를 돌려 떡배를 보니 떡배가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연기에 벌집을 빠져나온 벌떼가 떡배를 공격한 것이었다. 능주는 훈연기를 들고 있어, 벌이 접근하지 않았다. 벌에 쏘이면서도 떡배는 줄을 꼭 잡고 있었다. 줄을 당기거나 풀어주지도 않았다. 떡배가 줄을 풀어주거나 당겼다면, 능주는 오르락내리락했을 텐데, 능주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동상, 줄을 놓고 땅바닥에 엎드려!”
능주가 크게 소리쳤다. 중심을 최대한 낮추는 게 공격을 덜 당한다는 것을 익히 경험했기에 던진 말이었다. 떡배가 벌떼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줄을 놓지 않는 게 가상해 저절로 나온 소리였다. 떡배가 줄을 놓더라도, 칡넝쿨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올 수 있을지 싶었다. 떡배를 믿으니 예기치 못한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꺼? 그카다 행님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아입니꺼? 천천히 풀어줄 테니까, 작업 중단하고 그만 내려오이소!”
떡배가 여전히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
  “혼자 내려갈 수 있능께, 줄을 놓고 바닥에 엎드리라니까!”
능주가 다시 소리쳤다.
  “지는 그렇게 못합니더! 어쨌거나 줄을 단디 잡을 테니, 조심조심 내려오이소!”
  “알았으니까, 줄을 싸게싸게 풀어!”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떡배가 벌침에 쏘여 큰일 날 것만 같았다. 한두 방이면 몰라도 수십 번, 수백 번을 쏘인다면 쓰러질지도 몰랐다. 능주는 서둘러 내려갔다. 다른 건 떨어뜨리더라도, 훈연기만큼은 떨어뜨릴 수 없어, 꼭 잡고 있었다. 
  “줄을 더 빨리빨리 풀라니까!”
  
떡배가 줄을 조금씩 풀자, 능주는 떡배를 재촉했다. 그래도 떡배는 전후좌우로 뛰어다니면서 줄을 조금씩 풀었다. 떡배가 아니라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지만, 떡배 도움으로 더 안전하게 바닥에 발을 디뎠다. 능주는 곧장 떡배 몸에 훈연기를 가까이하여 연기를 뿜었다. 그 많던 벌 떼가 연기를 피해 날아갔다.
  “동상, 얼굴이 그게 뭔가? 완전 쑥대밭이 돼부렀구먼.”
떡배는 얼굴이 온통 부어올라 있었다.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눈꺼풀도 퉁퉁 부어 앞이 보이기나 할지, 싶었다. 손등이며, 팔, 발목 등 노출된 모든 부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벌침이 옷까지 뚫었다면서 떡배가 저고리를 올려 아랫배를 보여 주었다. 침에 쏘인 흔적이 대여섯 군데 있었다. 떡배는 식겁했다는 표정으로 있다가, 벌떼가 완전히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행님요?”
  “왜?”
  “꼭 이렇게 위험하게 따러 다닐 필요가 있습니꺼? 집에다 한봉을 몇 통 들이면 될끼 아입니꺼?”
떡배가 그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왜 생고생하느냐고, 다그치듯 말했다.
  “그걸 몰라서 이러고 다닌 줄 아는감?”
  
능주는 잠시 기억을 되살리고는 왜 석청을 따러 산에 오르게 되었는지 연유를 들려주었다. 
민경이가 여섯 살 때였다. 능주는 꿀을 따려고 산기슭에다 한봉 10통을 놓고 관리했다. 대감 땅이었다. 민경이가 대감 손을 잡고 구경 왔을 때 벌통 가까이에 장수말벌이 날아들었다. 장수말벌이 벌통 안으로 들어가면, 그 벌통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여왕벌까지도 위험했다. 이를 막으려고 수많은 벌떼가 벌통에서 나왔다. 벌꿀만의 소통 수단이 있는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장수말벌을 둘러싸고 공격했다. 꿀벌의 침에는 화살촉처럼 거꾸로 된 가시가 있어서 침을 쏘면 가시에 걸려, 내장이 빠져나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장수말벌의 침에는 가시가 없어 내장이 빠질 일이 없었다. 수십 번을 쏘아도 죽을 일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침에 독까지 있어 꿀벌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꿀벌이 장수말벌을 퇴치하는 방법은 단 하나, 떼를 지어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수많은 벌떼가 장수말벌을 공격했다. 장수말벌은 표피가 단단해 꿀벌 침이 뚫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꿀벌의 사체가 바닥에 수북하기 마련이었다. 바람에 밀린 낙엽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것처럼 바닥에 수북하게 널린 꿀벌의 사체를 보고 민경이가 대감에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공주님이 어인 일로 부르시는고?”
  “꿀벌이 너무 불쌍해요. 벌들을 모두 날려 보내주시어요.” 
민경이가, 청이라기보다, 당돌하다시피 강단지게 말했다.
  “날려 보내도 얼마 살지 못할 거야. 그게 벌이란다.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이니 날려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런 운명을 타고났더라도, 제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멀리 보내주시어요.”
대감이 부탁을 안 들어주면 민경이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허, 청을 안 들어 드리면, 집에 가지 않겠다는 게요?”
  “그럴 거예요.”
대감이 껄껄 웃으며 능주에게 벌통을 산속 깊이 치우라고 했다. 능주는 밤에 치우겠다고 했다.
  “왜 지금은 안 되는데요?”
민경이가 능주에게 따져 물었다. 
  “벌이 밤에는 움직이지 않으니 쏘일 일이 없습니다요. 벌은 꿀을 따려고 멀리 날아가도 밤이 되기 전에 모두 돌아오는데, 밤이 되기도 전에 벌통을 옮겨버리면 돌아오지 않은 벌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요. 그래서 밤에 옮겨야 합니다요.”
  “그래요? 그럼 당연히 밤에 옮기셔야지요.”

민경이는 본연의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밤에 등롱불을 밝히고 벌통으로 간 능주는 적이 놀랐다. 그 많던 꿀벌 사체들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새나 꿩이 주워 먹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능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체를 물고 날아가는 벌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을 지켜주려는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려고, 조류 따위의 부리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은밀한 곳으로 옮겨 놓은 듯했다. 벌이, 미물이 아닌 것 같았다. 묘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벌통 뚜껑을 연 능주는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벌통에 아이 손바닥만큼이나 커다란 나비가 죽어 있었다. 치우려고 나비를 집어 들었는데, 파슬파슬한 날개가 가루처럼 찢어져 흩날렸다. 죽은 지 괘나 오래된 나비였다. 하지만 나비의 몸통은 하나도 썩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신이했다. 벌들이 어떻게 했기에 나비가 썩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의별 궁리를 다했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벌통을 정리하고 난 며칠 후, 대감이 능주 아버지에게 말했다. 한봉이 없으니 석청을 따오라고. 그때부터 능주 아버지는 고산지대의 암벽을 뒤졌고, 능주도 몇 년 후에 아버지와 산에 다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혼자 산에 올랐다.
  “아씨의 감성이 정말 여리네예?”
잠자코 듣고 있던 떡배가 말했다.
  “순수하신 거제.”
  “하긴 그리 보이십디더. 장군님 말씀이라면 뭐든지 따르는 백치 같기도 하십디더.”
  “클메 말이여. 동상이 안 왔다면 지금도 수리동산에 계셨을 거네. 장군님이 혹시나 오시는지 보려고 말일세.”
능주는 민경이 생각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 지가 할 말이 없습니더!”
떡배가 고개를 푹 꺾었다. 
  “행님요?”
떡배가 까먹고 있던 기억을 되찾은 듯, 느닷없이 소리를 높였다.
  “왜?”
  “석청은 안 따실랍니꺼?”
  “동상 얼굴이 이 모양인디 어떻코롬 따겄능가? 동상 얼굴이나 좀 가라앉으면 다시 오세.”
  “안 딸 거면, 물이 있는 곳이나 갈카주이소.”
  “급한 거 아니잖애? 낼이나 모래 다시 와서 알려줌세.”
  “아입니더! 오늘은 추월산을 더트고, 낼부텀 부산 쪽으로 가면서 샅샅이 더터볼랍니더!”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당가? 두어 달 있을 거라 하지 않았남? 꼴새도 말이 아닌디?”
능주는 걱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사향노루가 내한티 잡히겠능교? 산을 돌아다니면서 줍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꺼? 향기가 진동하니 냄새를 찾는 게 더 빠르다 아입니꺼?”
능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벽지대를 타고 다니며 올무를 놓기도 어렵고, 놓았다 한들 잘 걸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떡배 말대로 냄새로 찾는 것이 나을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붓기나 좀 가라앉으면 가지 그란가?”
  “아입니더. 하루라도 빨리 가야 부모님이 빨리 풀려나실 거 아이겠습니꺼? 늦었다고 또 몇 개 더 구해오라 카면 답이 없다 아입니꺼?어둡기 전에 추월산을 더트고, 저물면 물 가까운 데다 자리 잡고 밥도 짓고, 잠도 잘라 캅니더. 행님도 바쁘실 텐데 장소만 알려주시고, 얼른 내려가이소.”
  
떡배는 어떤 말에도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능주를 보았다. 능주는 더 이상 떡배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떡배에게 시간을 주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렵게 사향 두 개를 구해 갔는데, 늦었다고 또 트집을 잡아 몇 개를 더 구해오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닌가. 능주는 어차피 헤어질 거, 어차피 보낼 거,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동상, 내가 시방 가진 것이 요것밖에 없는디, 이거라도 받소. 그래야 내 맘이 편하겄네.”
능주는 망태기에서 주먹밥을 꺼내 떡배에게 주었다. 떡배와 먹을 요량으로 싸온 점심이었다. 능주는 좀 배가 고프더라도 집에 가서 허기를 달래면 되니까, 떡배에게 모두 건넸다. 뭐랄까. 떡배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주먹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주먹밥을 받았다.
  “후담에 또 만나면 좋겄네만, 여튼 부모님 무사히 풀려나기를 바람세.”
능주는 떡배 어깨를 토닥였다. 능주는 떡배와 손인사를 나누고는 뒤돌아 걸었다. 여남은 걸음 걷다가, 능주는 아차, 하며 떡배를 돌아보았다. 떡배는 돌아서지 않고 있었다.
  “동상!”
  “와예?”
떡배가 뒤돌아보았다.
  “내가 동상한테 사과를 할 게 있어서.”
  “뭔데예?”
  “동상이 우리 아씨를 겁탈할지도 모른다고 오해했당께. 면목이 없구먼.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평생 가슴에 박힐 것 같응께, 동상이 이해해주소. 망령이 들어서 사리분별도 파악 못하는 놈이라서 그랬다고 말이여. 뭔 말인지 알겄제?”
  “행님…….”
떡배가 말끝을 흐렸다.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능주는 백분의 일각이라도 빨리 능주를 보내는 게 도리이다 싶어 그대로 뒤돌아섰다. 떡배는 한참이나 능주의 뒷모습에 시선을 붙박았다. 시야에서 능주가 사라지자 터벅터벅 걸었다. 온종일 산을 타고 다닌 사람처럼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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