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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제40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11. 1594년 5월
봄의 문턱을 훌쩍 넘어섰다. 온 세상에 싱그러운 이파리가 넘실거렸다. 길섶에 늘어선 이팝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이 살짜기 부는 바람에 떨어져, 꽃잎이 하늘하늘 휘날렸다. 마치 눈이 내린 듯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식물이 봄의 향연에 초대되어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무, 꽃, 벌레, 새들, 개구리까지도 절정에 이른 봄이 반가운지 짹짹, 개굴개굴 울어대고, 나비는 나풀거리며 꽃잎을 찾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얼굴로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화전을 부쳐 꽃놀이를 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전장으로 떠난 가족 소식에 애간장을 녹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농사였다. 봄이 되자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씨를 뿌렸다.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도 수리동산 소나무 아래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수리동산에 가면 다양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전투 중 부상을 당했거나, 가족의 상을 당했거나, 특별한 이유 때문에 귀가하는 의병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그렇게 귀가한 의병들이 전한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도 수리동산 소나무 아래였다. 물론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야 이보다 빨리 접하겠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 수리동산 소나무 아래서 듣는 게 가장 빨랐다. 다양하기도 했다. 돌샘의 빨래터를 수리동산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빨래터에서 오갔을 이야기들이 수리동산에서 전파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틈만 나면 수리동산으로 몰렸다. 남녀노소나 신분의 귀천과 상관없었다. 의병으로 참가했던 식구들이 어디쯤 오는지 살피기도 좋고, 빠르고 다양한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다. 
  
민경이도 점심을 마치고 수리동산으로 향했다. 광옥이도 따라나섰다. 광옥이는 집에서 책을 읽으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민경이는 그런 광옥이를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광옥이가 병간호할 일도 없고, 능주도 농사일로 바빠 집에 광옥이 혼자 있어야 했다. 열 살이나 되었으니 집에 혼자 남겨두어도 걱정할 건 없었다. 하지만 광옥이도 아버지 걱정에 책은커녕 뭔들 손에 잡힐까 싶어,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함께 나온 것이다.
  
떡배가 추월산을 떠난 지 한 달째 접어들고 있었다. 전세는 소강상태고, 기존 의병들은 덕령이에게 예속되었다고 했다. 이런 소식에 사람들은 이제야 덕령이가 뜻을 제대로 펼치게 되었다고 반겨했다. 오십 근짜리 철병도와 이백 근짜리 쌍철추에 맞으면 왜군 장수가 아니라 조선 침략의 원흉인 히데요시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민경이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다. 민경이는 그런 소식들이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차라리 부상당해서 돌아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장수가 아니라면 전란이 소강상태이니 잠시라도 집에 다녀갈 수 있을 텐데, 장수라는 책임감 때문에 오히려 발이 묶였다고 생각해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에 겉치레성 대답만 할 뿐이었다.
  
 “도련님도 열심히 무예를 닦아서 장군님처럼 훌륭한 장수가 되셔야지요.”
육십 줄에 접어든 노파가 광옥이에게 말했다. 노파는 절반쯤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서 있었다.
 “어머님이, 죽검조차도 잡지 말라하셨는데요?”
  
사실이었다. 덕령이를 전장에 보내고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며 지내는데, 광옥이에게 무예를 수련하라고 할 수 없었다. 광옥이가 죽검을 들고 무예 연습이라도 할라치면 민경이는 즉시 죽검을 버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집에서 죽검이 보이면 보이는 족족 아궁이에 넣어 태웠다. 광옥이는 며칠이 지나면 또 죽검을 들고 휘두르려 했다. 주검동에서 무기를 제작했던 덕령이의 피를 물려받았음을 증명하듯 스스로 죽검을 깎은 것이다. 대나무는 지천이었다. 어쩌면 왜군을 무찌르고 싶은 충정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민경이는 그런 꼴마저도 보기 싫었다. 몇 차례 타일러도 먹히지 않자, 민경이는 울먹이며 간절히 애원했다. 두 번 다시 죽검을 잡지 말라고. 
  
 “앞으로 광옥이 앞에서 두 번 다시 그런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민경이는 노파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표정에서 노기가 짙게 묻어났다. 사람들의 이목이 일시에 민경에게 집중되었다.
 “아이고, 쇤네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다시는 절대 그런 말 안 할 거구먼유.”
노파가 굽은 허리를 더욱 굽혔다. 신분 차이는 있지만 노파의 그런 모습이 민경이는 불편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노파를 달래주기도 할 겸 화제를 돌리고도 싶었다.
 “할아버지는 다 나으셨어요?”
  
노파의 남편은, 마부라도 하겠다며 자청해 의병에 가담했는데 군량미를 실은 소를 끌고 이동하다 매복한 왜군의 습격에 왼 팔이 잘렸다. 부상으로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아들도 전장에 있어 노파가 틈만 나면 수리동산으로 나왔다. 민경이는 노파가 부러웠다. 육십이 가깝도록 가시버시로 살아왔다는 것과, 비록 왼팔은 잘렸지만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민경이는 덕령이가 그렇게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덕령이도 왼팔에 화상을 입지 않았었던가. 
  
  “통증이 잡히긴 했습니다만…….”
  “그런데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요.”
  “아…….”
민경이는 낮은 신음을 토했다.
  “만수도 그란다드랑께.”
  “길남이도 허벅지를 칼에 찔려서 왔는디, 밤마다 악몽을 꾼다드랑께.”
  “겸이는 등에 칼을 맞아 엎드려서 잔다잖여?”
  “덕이도 눈깔이 뽑혀서 반 장님이 되어부렀드랑께.”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런 말들을 한 방에 잠재운 것은 약초꾼 김가였다. 그는 마흔 줄에 접어든 남정네였다.
  
  “내가 말이요이? 문일이가 조총에 발목을 맞았다고 들었어라우. 다리가 썩어 들어간다고 합디다. 해서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와송 한 꾸러미를 들고 찾아가지 않았겄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날 의원이 와서 다리를 절단하고 있습디다. 마당에 서서 문일이가 지르는 비명을 들었는디,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쌩오줌을 지려버렸어라우. 다리를 자를란께 재갈을 물렸을 거 아니요? 그래도 문일이가 괴성을 질러댄 탓에 와송 꾸러미를 마루에 던지듯 놓고 그냥 나와부렀당께라우. 생각만 해도. ……어이구.”
  
약초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약초꾼이 말을 마쳤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약초꾼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아낙은 약초꾼처럼 몸을 떨었다. 민경이는 다리를 절단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소름이 돋았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어머니, 저기 좀 보세요!”
좌중의 침묵을 광옥이가 깼다. 광옥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수십 명의 인파가 남산 산기슭을 돌아 막 담양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들 하얀 차림이었다. 딱 봐도 왜군의 복장은 아니었다.
  “오메, 오메, 우리 아들이 온갑당!”
한 아낙이 부리나케 그리로 달렸다. 그 움직임이 마치 신호라도 되는 듯 사람들이 일시에 수리동산을 달려서 내려갔다. 노파만 휘적휘적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민경이도 광옥이의 손을 잡고 무리에 섞여 뛰었다. 체면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일각이라도 빨리 가서 덕령이를 마중하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광옥이도 숨을 헐근거리며 달렸다. 
  “어머니, 신발이 벗겨졌어요!”
  광옥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신발을 찾아 신고 여기서 기다리거라.”
  
민경이는 잠깐 광옥이를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리에 합류했다. 경사길을 경쟁하듯 달리다 넘어진 아낙도 있었다. 무릎이 까졌을 법도 한데 아낙은 바로 일어나 무리를 따라잡았다. 일행은 금세 고갯길을 내려와 평지에 접어들었다. 일행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우르르 들길을 달렸다.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에 징검다리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징검다리를 무시하고 물에 첨벙 뛰어들어 정신없이 건넜다. 민경이도, 개울에 뛰어들었다. 어느새 광옥이 뒤따라와 개울에 뛰어들었다. 광옥이의 무릎 언저리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민경이는 광옥이가 행여 미끄러질세라 손을 꽉 잡고 첨벙첨벙 개울을 건넜다. 개울을 건너자 다시 들길이 이어졌다. 아직 의병 행렬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달렸다. 
  
드디어 의병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리에 의병들이 무리 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흰색 무명 저고리에 바지를 입고,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걸 보니 의병이 확실했다. 의병들이 이쪽의 움직임을 보았단 말인가. 몇 명의 의병이 이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힘이 저절로 생긴 모양이었다. 덕령이가 진주에서 주둔하고 있다 했으니, 의병들이 분명 진주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적어도 닷새 이상은 걸었을 테고, 기진맥진할 법도 한데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쪽 일행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광옥이가 속도를 내서 민경이를 앞서갔다. 민경이를 이끄는 광옥이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사내대장부다운 힘이 강렬하게 전해왔다.
  
  “엄니!”
  “아이고 내 새끼!”
  “영감!, 우리 영감 맞지리우?”
  “우리 영수는 어딨다요? 야? 우리 영수는 왜 안 보인다요?”
  “니 손이 왜 없다냐? 아이고, 아이고…….”
  “어무니가 돌아가셨는디, 왜 이제야 왔소, 왜 이제야…….”
감격에 겨운 소리들, 원통해하는 울음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민경이와 광옥이, 일행 몇 명은 허망한 눈으로 저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또 다른 의병 행렬이 오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행렬은커녕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덕령이가 보이지 않자, 민경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민경이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했다. 세상이 아득해 보였다. 아니, 까맣게 보였다. 땅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덕령이의 소식을 묻는 게 순서였다. 민경이는 낯익은 어른을 붙잡고 덕령이의 소식을 물었다. 그는 덕령이가 태어난 석저촌 사람이었다. 
  “장군님은 어떠신가요?”
어른은 민경이의 숨이 골라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오히려 민경이를 불안하게 했다. 나쁜 소식이기에 뜸을 들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야 뜸을 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민경이는 가까스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장군님은 잘 계시구만요.”  
오 신령님이시여, 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없던 기운이 샘솟았다.
  
어른이 덕령이의 근황을 상세히 전해 주었다. 덕령이는 충용군 소속의 의병장이 되었다고 했다. 군량도 문제고, 의병과 충용군의 지휘 통솔에도 문제가 생겨 의병과 관군을 통합했다는 것이다. 군량도 문제지만 농번기 철이라 농사를 지으라고 덕령이가 의병 오백 명만 남긴 채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목책산성을 쌓아 주둔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걱정 말라고 걱정이 사라진단 말인가. 민경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가슴에 가득한 걱정을 도려낼 수 없었다. 조총에 대한 위력 때문이었다. 목책산성이 아무리 튼튼해도 총탄을 막을 수 없을 게 아닌가. 의병장이라면 선두에서 지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보다 먼저 왜군의 표적이 될 것이었다. 총탄 앞에서는 갑옷이 무용지물일 것 같았다. 민경이는 덕령이가 총탄에 맞는 상상을 하고 도리질을 쳤다. 약초꾼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아무리 도리질을 쳐도 살이 썩어 들어간다는 말과, 다리를 절단할 때 질렀다는 괴성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왜 의병장이 되셔 가지고. 나라를 구하려는 충정은 이해되지만 꼭 그 방법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무기를 제작하고, 군량미를 모아서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는가. 몇 번을 곱씹어도 덕령이 선택이 아쉬웠다. 덕령이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던 것을 동생 원경이에게 권했다. 원경이는 쉴 새 없이 발품을 팔고 다니며 군량미와 무기를 수집해 의병에게 보냈다. 민경이는 그런 원경이를 보며 자연스럽게 덕령이를 떠올렸다. 덕홍 형의 죽음을 겪었으면서도 무모하게 전장에 나간 덕령이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달님에게라도 빌어보려고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깊은 밤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은커녕 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민경이는 기도 대상을 넓혔다. 집에서 십 리쯤 떨어진 선동부락 위에 개선사가 있었다. 개선사에 미륵바위가 있었다. 옅은 눈썹, 감은 눈, 오뚝한 코, 두툼한 입술이 얼비치는 미륵바위. 영락없는 부처님 형상이었다. 마치 석공이 일부러 조각한 듯했다. 사람들은 미륵바위를 석등불이라며 소원을 빌었다. 미륵바위에서 빌면 소원을 들어줄까 봐, 민경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륵바위로 향했다. 가기 전에 정결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고 몸을 씻고 집을 나섰다. 행여나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 개미도 밟지 않으려고 발 앞을 살피며 걸었다. 미륵바위 앞에 선 민경이는 마음을 정갈하게 모으고 합장했다.
  
‘석불이시여. 정묘생 김덕령이 왜군의 침입에 나라를 구하겠다고 기병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나이다. 하루하루 들려오는 비보에 애간장 태우다가 석불님 생각이 나서 빌러 왔습니다. 저의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경고빗사위나 마찬가지랍니다. 석불님께 앙망하옵나이다. 어서 왜군이 물러날 수 있게 원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정묘생 김덕령을 살펴 보우하사, 꼭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원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손이 부러져 밥을 떠먹지 못해도, 다리가 부러져 걷지 못하더라도 성심 성의껏 보살피겠으니 꼭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원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원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불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곁에만 있게 해 주시옵소서. 날마다 석불님께 지극정성으로 치성 드리겠사옵니다. 정묘생 김덕령을 어여삐 여기셔서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민경이는 정성을 다해 빌었다. 덕령이가 살아 돌아 올 수 있게 매일 찾아와 치성을 드릴 생각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수리동산으로 가려고 발길을 돌렸지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민경이는 다시 미륵바위 앞에 서서 합장하고, 허리를 굽실거리며 손을 비비고 정갈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빌었다.
  
민경이의 일과는 달이 뜰 때와 뜨지 않을 때가 달랐다. 달이 뜨지 않은 날은 새벽과 저녁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달이 뜨면 달을 보고 빌었다. 일과는 규칙적이었다. 아침에 미륵바위에 가서 빌고, 수리동산이나 방청매에 올라 덕령이를 기다렸다. 어렸을 때 달이 클수록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 보름달이 뜨면 밤이 이슥하도록 빌었다. 그렇게 빌고, 기다리느라 살과 뼈가 거의 붙어버렸다. 미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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