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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제41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1화)
                              12. 1596년 8월
결실의 계절, 가을이 깊었다. 들녘의 노란 벼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논에 온전히 서 있는 벼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황금 들녘이 어느덧 텅 비어 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가위 상을 준비한답시고 분주히 움직였다. 방아 찍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고, 육전이며 생선을 튀기는 노릇한 냄새도 코끝을 간질였다. 두부를 만들겠다고 물동이를 이고 돌샘으로 물을 뜨러 가는 아낙이 줄을 이었다. 아이들은 한가위가 되었다고 들뜬 얼굴로 돌아다녔다. 오늘이 한가위 전날이지만 밤이면 아이들이 마을 광장에 모여 밤이 깊도록 술래잡기며, 말뚝박기 놀이를 하면서 명절 분위기를 만끽할 것이다. 동네도, 어른들도, 아이들도 추석을 맞아 한껏 들떠 있었다.
  
 민경이네 집은 침울한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 민경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장군봉을 바라보았다. 봉우리가 투구를 닮았다고 장안봉이라는 본래 이름보다 장군봉이라고 더 많이 불리었다. 장군봉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몇 시간째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잠깐잠깐 땅으로 내려앉았는지, 잠시 보이지 않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는 멀리 가지도 않았고, 까마득하게 높이 날지도 않았다. 일정한 높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위의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까마귀는 불길한 징조라는데. 마치 덕령이 때문에 까마귀가 나타난 듯했다. 민경이는 가슴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아저씨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민경이는 능주를 오늘 아침 일찍 아저씨 본가로 보냈다. 식구들하고 한가위를 보내라는 취지였다. 한가위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한가하게 한가위를 맞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덕령이가 없어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광옥이 역시나 한가위가 다가온다고 들뜬 표정도 아니었다. 능주도 덩달아 얼굴이 굳어졌다. 해서 능주만이라도 마음 편히 한가위를 보내라고 본가로 가시라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덕령이가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한양으로 압송당했다는 것이다. 김응회 소속 의병이 점심 전에 찾아와 은밀하게 소식을 전했다. 명나라와 왜가 강화협상 중이었고 조정에서는 치열하게 찬반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전란이 길어질수록 왜군의 노략질이 극에 달했다. 몇 년째 흉년까지 겹쳐 민중들의 생활은 처절하고 비참했다. 그 와중에 일본의 재침에 대비한다며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동원해 산성을 쌓았고, 갖은 명분으로 수탈을 일삼았다. 이에 이몽학이 반역을 꾀해 난을 일으켰는데, 세를 불리려고 명성이 자자한 김덕령이나, 최담년, 곽재우 등의 이름을 들먹였다. 이 때문에 덕령이가 반역죄로 압송되었다. 
  
 민경이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 반역죄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잘 알고 있었다. 반역죄를 범한 자는 소나 말에 묶어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들었다. 가족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 소식을 들었으니 민경이는 혼비백산했다. 의병은 민경이가 혼절할까 봐 한동안 민경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광옥이가 집에 없어 그 소식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민경이가 정신을 가다듬을 때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그제야 의병이 돌아갔다. 
  
  “어머님, 무슨 있으십니까?”
  집으로 들어온 광옥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친구들하고는 재밌게 놀다 왔느냐?”
  민경이는 광옥이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데 재밌게 놀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님 안색이 영 어둡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민경이는 광옥이를 꼭 끌어안았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해버린 광옥이가 안쓰러웠다. 덕령이가 없는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광옥이는 애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한참 응석을 부려야 할 열한 살 나이에 어른처럼 행동하는 광옥이가 그저 안쓰럽고 또 안쓰러웠다. 조섬을 침략한 왜군이 원망스러웠고, 어린 광옥이와 자기를 남겨두고 전장으로 달려간 덕령이가 야속했다. 민경이는 광옥이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 장군봉 위를 바라보았다. 까마귀가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민경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덕령이가 어떻게 심문을 받고 있을지 떠올랐다. 바지를 엉덩이 아래까지 벗기고 덕령이를 틀에 묶어, 입으로 곤장에 물을 뿜어 내리치는 모습에 눈에 그려졌다. 물 묻은 곤장을 맞아 살점이 찢기고, 하얀 옷은 피로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덕령이가 혼절했다. 온몸에 찬물을 끼얹어 덕령이를 깨웠다. 그리고는 다시 물 묻은 곤장으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치도곤으로 부족해, 주리까지 틀었다. 두 다리를 묶어 그 사이에 몽둥이를 넣어 사납게 비틀었다. 빠지직,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극심한 고통에 덕령이가 괴성을 질렀다. 괴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조총에 발목을 맞아, 다리를 절단했다는 사람이 지른 괴성이 겹쳤다. 아니 그보다 더 한 괴성이었다. 다리를 절단할 때는 재갈을 물렸겠지만, 덕령이의 입에는 재갈도 물리지 않았다. 민경이는 그런 장면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광옥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어머니, 숨 막히겠습니다. 좀 풀어주세요.”
  민경이는 얼른 품에서 광옥이를 풀었다.
  “어머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요즘 자주 눈물을 훔치시던데, 지금은 더 하시는데요? 무슨 일 있으신 거죠? 아버지에게 변고라도 생기셨습니까?”
  “변고는 무슨 변고!”
  민경이는 버럭 소리쳤다.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십니까?”
  민경이는 눈물을 훔치고 입을 열었다.
  “큰외삼촌이 그동안 우리 뒤를 봐주었잖아? 추석인데도 찾아뵙지 못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그래.”
  “언제 한 번 다녀오시면 되잖아요?”
  광옥이가 별 일도 아닌데 어머니가 눈물바람이라고 책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그래도 명절에 찾아뵙는 게 예의잖아? 내일 아침 일찍 능주 아저씨하고 큰외삼촌 댁에 다녀오면 어떻겠느냐? 모처럼 외삼촌 뵐 테니 바로 오지 말고 며칠 묵고 오면 좋겠구나. 그렇게라도 인사를 드려야 내 맘이 편할 것 같구나.”
  “어머님은요?”
  “근행도 아닌데 어떻게 집을 떠날 수 있겠느냐?”
  “아 참, 그렇겠군요. 그럼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민경이는 광옥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어떻게 하나, 반역죄인의 가족이라고 광옥이를 잡으러 오면 어떻게 하나, 내심 고민했다. 우선 광옥이를 집에서 내보내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광옥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능주 아저씨에게 가서, 내일 일찍 집으로 오시라고 전하라고 했다. 마음이야 당장 광옥이를 보내고 싶지만, 지금 출발하면 밤길을 걸어야 하고,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한 끼도 챙겨 먹이지 않고 보낼 순 없었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 잤기에,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도 싶었다.
  
 광옥이가 밖으로 나가자,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인경 오라버니에게 서찰을 썼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덕령이가 반역죄로 압송되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이미 오라버니가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단히 적었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광옥이를 보낼 테니 안전한 집에 맡기고, 뒤를 부탁한다고 했다. 어디로 부임을 하던 근처로 데려가라고 했다. 족보도 바꿀 수 있으면 바꾸라고 했다. 광옥이가 절대로 덕령이의 아들이어서는 안 된다고, 두서너 번 강조하고 끝을 맺었다. 
  
 서찰을 쓰는 동안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앞으로 덕령이는 물론이려니와 광옥이마저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뼈마디가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 밖으로 새어나온 것 같았다.
  덕령이가 반역죄에서 풀려나리라고 믿었다. 덕령이의 충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민경이었다. 충정이 없었다면, 어머니가 병중일 때 처음으로 기병하지 않았을 거 아닌가. 삼 년 작정한 시묘살이를 포기하고 다시 기병하지 않았을 거 아닌가. 전란이 소강상태일 때 잠깐이라도 민경이와 광옥이를 보러 집에 다녀갔을 게 아닌가. 군량미를 보충하려고 둔전을 개간할 일도 없지 않은가. 왜적에 대비해 목책산성을 쌓을 리도 없지 않은가. 밤늦도록 주검동에서 철병도와 쌍철추를 만들 리 없지 않은가. 설마 반란을 꿈꾸고 철병도와 쌍철추를 만들지 않았음을, 민경이는 믿고 또 믿었다. 그런데 반역죄라니. 반역죄라니. 믿을 수 없었다. 덕령이가 머지않아 풀려나리라 믿었다. 믿고 싶었다.

  밤이 깊어 민경이와 광옥이가 안방에 나란히 누웠다. 민경이는 광옥이에게 팔을 내주었다. 광옥이는 어머님께서 힘드실 텐데, 그럴 순 없다며 팔을 베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주고 싶었는데, 속도 모르고. 민경이는 쌔근거리며 잠에 빠진 광옥이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이라도 한 번 매만지고 싶지만 광옥이가 깰까 봐 만질 수도 없었다. 일어나 앉아 축축한 눈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광옥이가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민경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방에 앉아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덕령이가 너무나 보고 싶고,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광옥이도 탈 없이 자라기를 바랐다. 민경이 꿈은 소박했다. 평범하게 살아도 좋으니, 아니 빌어먹고 살아도 좋으니, 세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살고 싶었다. 한숨과 눈물이 범벅인 채로 기다리다가 광옥이가 깊은 잠에 빠지자, 민경이는 바느질 도구를 찾아 광옥이 옷을 짓기 시작했다. 먼길 떠나는 광옥이에게 새로 지은 옷 한 벌은 입히고 싶었다. 자시가 끝날 무렵 옷 한 벌이 완성되었다. 
  
 민경이는 밤도둑처럼 살며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두둥실 밤하늘에 떠 있었다. 보름이 아니지만 다른 때의 보름달보다 커 보였다. 정갈한 마음으로 가슴 앞에 합장을 했다. 광옥 아비가 무사히 풀려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며 두 손을 공손히 비볐다. 단아하고도 정중하게 허리를 굽실거렸다. 애절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몇 번이나 빌었다. 보름달이 뜨면, 얍, 얍 기합을 지르며 오라버니와 대련하는 모습이 떠올라, 사무치도록 그리워서 마당으로 나가 보름달을 올려보았을 때는, 단정한 차림으로 덕령이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지금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고,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들었고, 군데군데 찢어진 옷에 피가 흥건했다. 차마 달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누울 수가 없었다. 장롱을 열었다. 장롱 깊은 곳에서 밤손님처럼 패물 보자기를 꺼내 허리춤에 찼다. 보자기에는 금반지, 금팔찌, 머리 장신구인 떨잠, 봉잠, 혼례 때 사용했던 용비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는 방을 바장거렸다.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새벽녘이 되자 다리가 아파왔다. 바닥에 앉았다. 내일을 위해 잠을 좀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차라리 앉아서 아침을 맞을 생각으로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뒤뜰에서 자꾸만 덕령이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처음 기합소리를 들었을 때 들었던 그런 감정이 다시금 새록새록 솟았다. 얼굴이 상기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듬직한 덕령이가 빙그레 웃으며 민경이를 바라보았다. 당신 오셨어요? 덕령이의 품을 파고들려고 팔을 쭉 뻗었다. 따뜻한 가슴팍이 아닌, 차가운 벽이 느껴졌다. 깜짝 놀랐다. 눈을 번쩍 떴다. 잠깐 졸은 사이에 꿈을 꾼 것이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정말로 덕령이가 와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덕령이는 보이지 않았다. 미명에 빛을 잃어가는 달이 서산으로 기울고 있을 뿐이었다.
  
 ‘무사하신 거죠? 반드시 돌아오실 거죠?’
  ‘제발 우리 광옥이 아버지를 무사히 돌려주세요.’
  민경이는 달을 보며 절절하게 빌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려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렸다. 난생처음이었다. 광옥이를 잉태했을 때도, 덕령이가 기병을 할 때도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진 않았다. 부엌에서만 빌었을 뿐이었다. 정화수를 올리자, 문득 정성이 부족해 덕령이가 압송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 진즉 치성을 드릴 걸, 하는 후회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왔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백 번도 넘게 굽실거렸다. 모든 죄는 자기에게 내리고, 덕령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치성을 드리는 동안, 어느덧 여명이 밝아왔다. 한 숨도 못 잔 데다, 정성껏 치성을 드리고 난 후라 몸이 뻐근했다. 
  
 부엌으로 들어가 등롱을 밝혔다. 광옥이에게 차려주는 마지막 밥일지도 모르니 있는 재료를 탈탈 털어 반찬을 만들 생각으로 찬장을 뒤졌다. 국수 외에 마땅한 재료가 없었다. 추석 대목장은 어제 열렸다. 차례상에 올리려고 장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저육에, 소고기, 조기, 나물 세 가지, 밤, 대추, 사과 같은 과일에 강정도 살 요량이었다. 덕령이의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식혜도 만들고, 송편을 만들기 위해 떡방아도 찧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령이가 압송되었다는 소식에 장에 나갈 생각이 아예 가셔 버렸다. 그러니 저잣거리에서 며칠 전에 사 온 국수가 전부였다. 곡간에서 쌀을 됫박에 고봉으로 퍼와 큰방 아궁이 솥에 밥을 안쳤다. 작은방 아궁이에는 물을 끓여 국수를 데쳤다. 찬물에 국수를 식혔다. 능주가 오면 광옥이를 깨워 열무김치에 국수를 비벼 줄 것이다. 마지막 밥상이 너무 초라함에, 또 가슴이 미어졌다.

  “능주 아저씨, 명절 때 먼 길 떠나게 해서 죄송하구먼요.”
  아침 일찍 찾아온 능주와 광옥이에게 아침상을 차려주고 민경이가 말문을 열었다.
  “쇤네야 명절이고, 새벽이고 상관있답니까? 아씨가 우선인 걸요.”
  능주가 괘념치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식사부터 좀 하세요.”
  능주는 황송함에 몸 둘 바 몰라했다. 광옥이하고 겸상이 처음이라 그런 듯했다.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더 미안하니까, 괘념치 마시고 같이 드세요.”
  
 민경이 말에도 능주가 밥상 앞에 앉지 못했다. 민경이는 능주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앉혔다. 광옥이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소세를 하고, 의복을 단정히 갈아입고 상 앞에 앉아 있었다. 광옥이는 무거운 표정이었다. 밥상이 소박해서가 아니라, 심상치 않은 흐름을 감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먼 길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몰랐다. 광옥이도 능주도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먹는 시늉에 가까웠다. 민경이는 그런 모습에 속으로 울었다. 고봉으로 밥을 담았는데, 둘은 반 그릇도 비우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뚝딱 해치웠을 양이었다. 그릇이 비워지면 더 퍼 줄 요량으로 큰 사발에 따로 밥을 담아 놓았지만 퍼 줄 일은 없었다. 국수도 준비했지만, 둘 다 국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민경이는 능주에게 밥상을 부엌으로 물리라고 했다. 능주가 밥상을 들고 나가자, 민경이가 바로 따라 나갔다. 부엌에 들어서서, 민경이는 품에서 서찰을 꺼내 능주에게 건넸다. 능주가 서찰을 품속에 넣었다. 광옥이가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지금 인경 오라버니가 용안현에 와 계시는데, 광옥이를 데려가 인사도 시키고 서찰을 전해주고 오라고 했다. 서찰을 광옥이가 절대 보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밤길은 걷지 말라며 허리춤에서 은전을 꺼내 건네고, 봇짐도 건넸다. 봇짐에는 주먹밥이 들었지만, 그걸로 허기만 달래고 여각에서 광옥이에게 양껏 밥을 사 먹이고, 용안현에 도착하면 봇짐에 있는 새 옷으로 갈아입히라고 했다. 
  
 민경이는 두 사람을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갔다.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홰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개들이 컹컹 짖는 소리도 들렸다. 꼭두새벽에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짖어댈 것이었다. 광옥이는 다시 한 번 집에서처럼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광옥아!”
  민경이는 저만치 멀어져 가는 광옥이를 목청껏 불렀다. 목이 매인 목소리였다.
  “왜요?”
  “조심해서…….”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민경이는 훠이훠이 손짓하며 광옥이 쪽으로 걸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다시 볼 수는 잇을까. 저 어린 것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민경이는 발길을 차마 돌릴 수가 없었다.
  “무사히 다녀올 테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광옥이가 다시 허리 굽혀 인사하고,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민경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광옥이를 지켜보았다.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칠 생각도 없이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돌부처처럼 꼼짝 않고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광옥이가 지나간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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