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꿈, 내 사랑 자미화> 제34화

문인주는 다소 머쓱해져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기실 그는 진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단지 돌리는 것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최 선생의 강한 집착 때문에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 선생은 지금 전단지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들떠 있기까지 하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전단지는 몇 장이나 만드실 건데요? ”
“우리 면에 다 돌리자면 최소한 삼천 장은 만들어야겠지.”
“면 사람들한테 다 돌리려고요? ”
“당연하지. 우리 면에 다 돌리고도 못 찾으면 이웃면까지도 돌릴 계획이네.”

최 선생은 여전히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자면 또 며칠 동안은 미친 듯 면내 여러 마을을 헤집고 다니겠구나 싶어, 문인주는 씁쓸한 미소를 삼켰다. 뛰어다니며 전단지를 돌리는 최 선생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자 강아지 진주가 깡깡 짖어대며 반갑게 꼬리를 치고 반겨주었다. 이제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짖는 소리를 들으면 경계하는 것인지 반기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없이 불 꺼진 집에서 강아지라도 짖으니 사람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최 선생은 다음날 아침에 활기찬 걸음으로 서둘러 집을 나갔다가 해질녘에 흐물흐물해진 몸으로 돌아왔다. 그는 초록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진주를 찾습니다’ 라고 쓴 어깨띠까지 둘렀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지난번 군 의원 선거 때 출마한 이웃 마을 할아버지 후보를 연상케했다. 최 선생은 이웃면과 경계를 이루는 호수 아랫마을에 전단지를 돌리고 오느라 늦었다면서 몹시 지쳐있었다.

“자네 자전거 좀 빌려주소. 자전거만 있으면 이틀이면 다 돌릴 것 같은데...”
“그렇게 하세요. 저는 오토바이가 있으니까요.”
“기름 값 무서워서 오토바이 처박아 두고 그동안 자전거 타고 다녔는데, 나 때문에 어쩌까? 대신 내가 기름 한 번 넣어주겠네.”
“기름 값이 문젭니까. 진주를 찾는 일이 급한테...”
문인주의 그 말에 최 선생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지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껄껄 웃었다. 문인주도 최 선생의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 따라 웃었다.
 그날 밤, 문인주가 TV 9시 뉴스를 보고 나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최 선생이 헐근거리며 찾아왔다.
“연락이 왔네 연락이 왔어. 방금 진주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 전단지 효과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어.”
최 선생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당장 호수 아랫마을까지 오토바이로 좀 실어다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다. 문인주는 난감했다.
“당장 가보세.”
“이 밤중에요? ”
“가서 진주를 데려와야지.”
“진주가 확실해요? 자세히 알아보셨어요? ”
“분명히 검둥개라고 했다니까.”
“휴대폰 이리 줘보세요.”
문인주는 최 선생으로부터 휴대폰을 받아 통화기록을 체크하고 10여 분 전에 통화를 한, 같은 지역번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참 후에야 잠에서 취한 듯 짜증스럽고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잃어버린 개 때문에 전화했는데요. 시방 댁에서 호보중인 개가 열 두 살 된 검정 색 개가 틀림없나요? ”
문인주는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예의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검정개는 아니고, 몸통이 희고 목에 검은 띠를 한, 고양이만하고 털이 긴 발바리인데... 누가 우리 마을 식당 앞에 버리고 간 것을 데려다 놨소.”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인주가 휴대폰을 넘겨주며 허탈하게 웃었다.
“발바리라고 하지 않아요. 가서 주무세요.”
문인주가 일부러 냉갈령을 부리며 몸을 돌려세우자 최 선생은 멋쩍은 듯 한동안 마당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맥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최 선생은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전단지를 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곤 했다. 그는 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돌리고 해질녘에야 돌아왔다. 그런 그의 하루하루 삶이 생기로 넘쳐보였다. 진주를 잃어버리고 나서 처음 며칠 동안, 실의에 차 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진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가 오히려 씩씩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인주는 최 선생이 진주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결국 더 큰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될 때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막막했다.

“ 전단지는 다 돌렸어요? ” 
저녁을 먹고 나서 문인주가 최 선생한테 전화를 했다.
“아직 덜 돌렸어. 진주를 봤다는 사람들 전화가 하도 많아서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하느라고 바빠. 오늘만 해도 열두 군데서 전화가 왔는데, 다 못 가봤어.”
“진주 비슷한 개라도 봤어요? ”
“아니야.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아. 이러다보면 언젠가는 꼭 진주를 찾게 되리라고 믿네.”
전류를 타고 흘러온 최 선생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 힘이 넘쳤다. 문인주는 다행이다 싶어 안도하며 텔레비전을 켰다. 초가을에 잘 어울리는 비발디의 첼로 협주곡 디 장조가 잔잔하게 흐르는 화면에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이 코스모스 들길을 걷는 그림이 나타났다.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을 보자 딸이 보고 싶어졌다. 여름방학 때 꼭 오겠다더니 가을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딸한테서 먼저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간질간질한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문인주는 딸을 기다리지 않았던 지난날에 비해 딸을 기다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최 선생도 진주를 찾고 있는 지금이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선생 뿐만 아니라, 옛날 양산보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봉황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죽음처럼 생의 완전한 소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기다림은 기도이고 생명이며 희망이고 삶 그자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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