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의 꿈, 제월당을 짓다>제37화

“원림을 만들 때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를 말 해주겠네. 첫째가 천인합일을 생각하게.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것은 수양의 최고 경지이자 우리 유학의 모든 수양체계 방법일세. 이는 곧 천지인은 하나라는 것과 같네. 주역에서도 하늘은 땅을 섬기고 땅은 하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만물이 서로 통한다 하였으니, 서로 구분하지 않은 것이 좋아. 주역에서 최상의 소통 괘는 태괘(泰卦)라는 것쯤은 자네도 알 테지만, 태괘는 상하가 소통이 원활하여 태평하다는 뜻이지. 그러니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구분하거나 막히지 않고 통하도록 하게. 두 번째는 무위(無爲)일세. 무위란 억지로 하지 않고 인공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위를 말하네. 되도록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잘 이용하게. 애써 큰 돌을 옮겨오거나 새로 물길을 내지 않는 것이 좋아.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사람의 손을 거쳐 오밀조밀하게 만들 필요도 없네. 자연을 지배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최상이지. 세 번째는 애써 경계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모든 풍광을 넉넉하게 품어 담으려고 하게. 그러기 위해서는 되도록 담 쌓는 것을 피하게. 눈에 보이는 자연을 원림 안으로 품기 위해서라면 높지 않게 쌓도록하게. 네 번째로 누각을 지을 때 명심할 것이 있네. 거처를 하게 될 위쪽 집은 물소리를 피하고, 방문을 열고 앉아서 밖을 볼 때 풍광이 수평으로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하고, 손님을 맞을 아랫집은 물소리가 잘 들리도록 하게. 베개를 배고 누워서 폭포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낮은 곳에 집을 짓는 것이 좋네. 그리고 거처할 집과 손님을 맞을 집은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되네. 지금 자네가 구상한 대로라면 너무 가까우니, 낮게 담을 쌓아서 담장을 끼고 돌아 들어갈 수 있게 하게. ”

양산보는 송순의 자상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누각의 당호는 무엇인지요? ”
김인후가 양산보를 보며 물었다.
“아직은....후에 형님께서 하나 지어주시지요. 하서 자네한테도 부탁함세.”
“당호가 제일 중요하지. 당호가 바로 집 주인의 생각과 사람됨을 말해주거든.”
“손님을 맞을 누정을 시내계자 집당자 계당으로 하면 너무 흔한 당호가 되겠지요? ”
양산보가 송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인들의 시나 고사에서 따오는 게 어떻겠는가.”
송순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개울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널따란 바위 물이 찰랑거리는 끝자락까지 내려가더니, 쪼그리고 앉아 두 손바닥을 펴서 물 한 움큼을 떠 소세하듯 얼굴에 적시다 말고, 차가움에 가볍게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쳤다.
“이 널따란 바위하며 적당히 흘러내리는 맑은 물, 그리고 물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와 하늘을 가린  나무들,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과 지저귀는 새들, 대숲을 흔드는 소소한 바람소리, 무릉도원이 바로 여길세. 여기야 말로 신선이 살만한 곳이네.”
송순은 쪼그리고 앉은 채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하서가 보기에는 어떤가? ”
“예, 큰 바위가 온통 개울을 덮고 물이 그 돌을 씻어 내려오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스승님 여기서 시회를 열면 좋겠습니다요.”
“시회? 그러지 뭐. 근동의 선비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거문고며 가야금, 아쟁, 대금 잘 부는 악공들도 불러서 마음껏 풍류를 즐기세나.”
“누각이 완공되면 제가 근동 선비들을 모두 청하여 거판지게 시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양산보는 그 자리에서 시회를 열겠다고 언약을 하였다. 그는 시회에 청할 선비들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날은 사촌한테도 미리 연락을 해서 참석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울에서 초정 쪽으로 올라와 오동나무 그늘 밑에 섰다. 그곳에서 개울과 지넷등 언덕,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며 대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원림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것 같았다.
“아우가 애타게 기다리는 봉황은 언제쯤 깃들겠는가? 그래, 자네는 봉황이 날아올 것이라고 믿는가? ”
송순이 벽오동 우듬지를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포기하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설마 기다리다 지쳐서 죽기야하겠는지요.”
“허허, 그렇구만. 기다리는 것이 백번 낫지. 무던히 기다리면 연작(燕雀)이라도 날아오겠지.”
“연작이라니오. 오늘도 봉황을 기다리는데 형님께서 오셨지요. 오늘은 면앙정 형님과 하서가 저의 봉황이 되어주셨습니다요.”
“그런가?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자네의 봉황이 되어주었어? 자네가 애타게 기다리는 봉황이 별거 아니로구만.”
송순이 놀라는 눈빛으로 양산보와 하서를 번갈아보았다.
“자주 오셔서 저의 봉황이 되어주십시오.”
양산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도 여기 와서 한평생 봉황을 기다리며 살고 싶습니다.”
하서도 끼어들었다. 셋은 서로를 마주보며 파안대소했다.     
그날 송순과 하서는 점심을 먹은 후에도 한참이나 담소를 나누다가 김윤제 부친한테 인사나 드리고 가야겠다면서 증암천을 건너갔다. 송순과 하서는 양산보와 헤어지면서 누각 짓는데 보태 쓰라면서 어음 두 장을 내놓고 갔다. 양산보 생각에 그 두 사람은 어음을 전달하기 위해 애써 먼 걸음을 한 것 같아, 사무치도록 고마웠다. 면앙정 형님은 그렇다쳐도 초면인 하서가 어음을 준 것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기실 양산보와 하서의 이날 만남은 사돈지간으로 발전하였고 평생 잊지 못할 돈후지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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