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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8) 담양부사 김여물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8) 담양부사 김여물
부사 재임시 대나무정자 죽헌(竹軒) 건립 

▲김여물 부사 정려문

김여물(1548~1592)은 담양부사를 지냈으며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1788년 장의(壯毅) 시호를 받았다. 본관은 순천,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 또는 외암(畏菴) 이다. 영의정 김류의 아버지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활약하다 순절했다.  
1588년(선조21년) 담양부사 재임시 관아에 작은 정자를 세웠는데 기둥과 들보, 서까래를 모두 대나무로 사용함으로써 죽헌(竹軒)이라 불렀다.

김여물은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시 생원시에 3등 3위로 입격하였고 1577년(선조 10) 알성시 문과에 갑과 1위로 장원급제했다. 이후 병조낭관, 충주도사(忠州都事), 담양부사를 지낸후 의주목사(정3품)로 있던 1591년 정철의 부하로 몰려 파직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명을 받고 신립 장군의 종사관으로 충주 방어에 나섰다. 조령의 문경새재를 이용하여 방어하자는 김여물의 건의를 신립이 묵살하는 대신 어리석은 계책을 세우자 필패할 것을 예견하고 아들 김류에게 “삼도(三道)의 근왕병(勤王兵)을 요청했으나 한 사람도 응하는 자가 없다.

우리들이 힘을 다해 싸우나 아무런 도움이 없으니 안타깝다. 남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본시 바라는 바이지만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고, 또 장한 뜻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갓 재가 되어버리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만 지을 뿐이다.” 는 유서를 남겼다.

또, 가족에게는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우리 일가는 모두 임금님의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돕되 결코 난을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한편, 그의 예상대로 신립군은 탄금대 전투에서 대패했고, 김여물 역시 남한강에 투신 자결했다. 사후 아들인 김류가 인조대의 권신이 된 덕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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