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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1/ 담양이야기(79) 【추성지(秋成誌)】

담양알기1/ 담양이야기(79) 【추성지(秋成誌)】

【추성지(秋成誌)】는 1756년 담양부사로 부임한 이석희 부사가 재임시 담양고을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며 풍속을 순화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1758년(영조34년)에 발행한 일종의 <담양군지>이다. 
담양에 속해 있는 각각의 면에 대한 산천, 누정, 인물 등을 상세히 기재하는 등 당시 담양의 기록물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이에 담양뉴스는 우리지역 관련 가장 오래된 향토역사서인 【추성지】 국역판을 토대로 【담양알기1/담양이야기】 코너에 연재함으로써 과거 담양의 사회상과 제도, 역사문화, 풍습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추성지】 국역판은 2020년 담양군 의뢰로 순천대학 문화유산연구소가 번역 발간했다.)

■ 추성지(秋成誌) 국역⑦
【누정(樓亭)】 

▲추성지 국역본

• 축요루(祝堯樓)
객사 동쪽에 있었는데 정유년(1597년)에 없어졌다.

• 망미루(望美樓)
담양부 터전 서남쪽은 광활하여 막힌 데가 없어 옛날에는 높은 누각을 세워 비보(裨補) 하였다. 무자년(1648년,인조26년)의 홍수에 휩쓸려 허물어졌던 것을 계유년(1693년,숙종19년)에 부사 조정우가 군민에게 권유하여 돈을 걷어 건립하고자 했는데, 완공되기 전에 체직되어 돌아갔다. 이듬해 을해년(1695년,숙종21년)에 부사 조전주가 단장하여 단청을 했다. 
운곡 김수중이 팔분체(*예서,전서를 절충해 만든 서체)로 편액을 썼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 불훤루(不喧樓)
담양도호부는 수성장을 둔 요충지로 일찍이 아문(衙門)의 누각이 없었다. 무인년(1758년,영조34년) 봄에 부사 이석희가 재목을 모으고 장정을 모집해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하고 ‘불훤(不喧)’ 이라는 이름을 지어 친히 상량문을 지었다. 

• 일아정
만력 갑진년(1604년,선조37년)에 부사 신경진이 죽헌을 개조할 때, 죽헌의 북편에 흙을 쌓아 올려 후원이라 일컬었다. 천계 병인년(1626년,인조4년)에 부사 윤천구가 그 위에 작은 정자를 짓고 스스로 정자 이름을 지어 전서체로 편액을 썼다. 참판 신유가 시를 지었다(생략)

• 세심정(洗心亭)
담양부의 서쪽으로2리쯤 가서 양각산 산허리 층층바위 위에 있다. 푸른 물결 넘실대어 마음을 씻을 수 있고 깎아지른 바위가 층층이 있어 누대를 짓기에 적당하다. 부사 유태명이 누대 위에 정자를 지었으나 뒤에 없어졌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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