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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41)문순태 작가

<다섯번째 꿈, 제월당을 짓다> 제41화

“그나저나 언진 형님께서는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될 것이라 예측하십니까? ” 
김인후가 묻자 양산보는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았다.
“작은 뜻이나마 이룰 치세를 맞을 수 있겠는지요? ”
“심정이 거꾸러졌으니 김안로의 세상이 되었지 않은가. 김안로가 죽기 전까지는 변화가 있겠는가.”
“김안로가 죽은 후에는요?”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세상이 되겠지.”
“그 다음에는요? ”
“중종임금이 죽겠지.” 
“또 그 다음에는요? ”
“우리도 죽겠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김인후는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 없이 대바람소리만 듣고 있었다. 대바람소리에 가려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양산보가 먼저 대숲을 나가자 김인후도 뒤를 따랐다. 그들은 다시 개울가로 나왔다. 그 떼서야 개울물 소리가 되살아났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그려. 이런 선경을 즐기는 언진 형님을 자꾸 속세로 끌러내려고 한 제가 잘못 생각을 했습니다.”
김인후가 가까이 다가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의 얼굴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날 이른 조반을 먹은 그들은 각기 돌아갔다. 기진은 장성 집으로 혼자 떠났고 임억령, 유성춘, 김인후 등 세 사람은 동복에 귀양 와 있는 신제 최산두를 만나러 유둔재를 넘기 위해 독수정 쪽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김인후는 신재 공이 술을 좋아한다면서 양산보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일꾼을 시켜 동복까지 술 한 말을 지고 가게 하였다. 양산보는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유둔재 너머까지 따라갔다. 최산두는 광양 봉강 태생으로, 한 때 순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 문하에서 유성춘의 아버지 유계린 등과 함께 수학했다. 귤정 윤구( 윤선도의 증조부), 유성춘과 함께 호남 3걸이라고 칭했다. 최산두는 조광조, 김식 ,김안국, 김정국과 더불어 군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낙중군자회(洛中君子會)를 만들어 지치와 도의를 논했다. 그는 의정부 사인 벼슬을 하다가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사약을 받던 날 나복현 (羅&#33869;縣. 동복) 으로 유배되었다.
“아버님께서는 신재 선생님과 한훤당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라서 꼭 찾아뵈라는 당부가 있었다네. ”   
유성춘이 양산보에게 말했다.
“아우님께서도 지금 신재 선생님 문하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양산보는 김인후에게서 유성춘의 동생 유희춘이 오래 전부터 최산두 문하에서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 오기 전 해남에서 귤정 댁에 들렸더니, 귤정께서는 유배에서 막 풀려난 몸이라 같이 오지 못한 것을 한탄하시며 신재 선생님께서 보낸 시를 보여주더구만.”
그러면서 유성춘은 귤정 윤구가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 때 기묘사화를 만나 삭직을 당하고 영암에 유배당해 있을 때 보내왔다는 시를 읊었다.

 강 길에 봄을 찾는 일이 늦었는데
 그대를 생각하여 달 아래를 거니네
 해마다 산 시냇물 구비에서
 분수따라 살아가고 있다네 

최산두는 자기보다 열두 살 아래인 윤구를 그리워하며 정감 넘치는 소식을 시로 써서 보냈다. 양산보는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최산두의 따뜻한 마음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 자신도 이들과 동행하여 최산두 선생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참고 또 참았다. 잠시라도 창암촌 밖에 나가게 되면 행여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서였다. 양산보는 유둔재를 넘어, 적벽산과 백아산이 빤히 바라보이는 구원(龜院)까지 따라 갔다. 구원 왼쪽으로 솟은 연화봉을 뒤로하고 백아산 쪽으로 십리 쯤 더 가면 물염적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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