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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42)문순태 작가

<다섯번째 꿈, 제월당을 짓다> 제42화

최산두가 속세에 오염되지 않은 이곳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보고 감탄하여 붙인 이름이다.
“언진 형님 물염적벽에서 잠시 쉬었다 가십시오.”
양산보는 그냥 돌아가려다가 김인후가 붙잡는 바람에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양산보는 한양으로 떠가기 전 서너 차례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강물이 넉넉하게 굽어 돌고, 물 위로 수백 척 높이 암벽이 산수화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산모퉁이를 돌아 물가로 내려갔다.

“이 깊은 산골에 이런 경치가 숨어 있는 것을 구경하다니 이 무슨 호사요.”
 이곳 경치를 처음 본 유성춘이 걸음을 멈추고 탄성을 질렀다. 일행이 물가 자갈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깎아지른 기암괴석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 절벽 위의 노송들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짐을 지고 따라온 또바우가 두 개의 큰 보자기를 들고 와서 풀어놓았다. 양산보가 보자기 하나를 풀어보았더니, 대오리로 엮어 만든 큰 석작 안에 작은 고리 도시락들이 들어있었다. 도시락에는 찰밥이며 반찬들이 채워져 있었다. 다른 석작을 열어보니 술병과 대통 잔 외에 , 제육산적이며 계란부침, 호박전, 죽순무침, 고사리나물 등 안주가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양산보는 이 음식들을 마련하느라 버들이가 간밤에 한숨도 잠을 못 잤겠구나 싶어 한껏 고마운 정을 느꼈다. 어제 저녁에 또바우가 사랑에 나와서 손님들의 행선지가 어디냐고 묻더니만, 버들이가 이들의 점심과 안주를 준비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필시 버들이 생각에 이들이 귀객임을 알아차리고 각별히 마음을 쓴 것이리라.

넷이 안주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자 양산보가 백자 술병을 꺼내 들고 대통 잔에 국화주를 따랐다.
“신재 선생님이 처음 이곳에 오셔서 지은 시가 있는데 제가 읊어드리겠습니다.”
모두 술잔을 들자 김인후가 그렇게 말하고 시를 읊었다.

           백로가 고기 엿보는 모습 강물이 백옥을 품은듯하고
           노란 꾀꼬리 나비 ㅤㅉㅗㅈ는 모습 산이 황금을 토하는 것 같네

독송이 끝나자 모두들 잔을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그 때 꾀꼬리 한 마리가 암벽 위 노송을 옮겨 날아다니며 낭자하게 울었다. 그들은 꾀꼬리 소리를 권주가로 들으며 술잔을 비웠다.
“헌데, 신재 선생께서 말술이시라는데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는가? ”
양산보가 김인후에게 물었다.
“신재 선생님께서는 술을 모든 근심을 없애주는 망우물(忘憂物)이라 하셨지요. 그래서 인사불성이 되는 한이 있어도 결코 한 방울도 남기는 법이 없답니다. 한번은 나복현에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모여 사마소에서 연회를 배풀었는데, 선생께서 먼저 가보았더니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더랍니다. 속이 상한 선생께서는 그 곳에 있는 술을 모두 마시고 시 한수를 써놓고 와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써놓은 시가 ‘ 뽕밭은 푸르고 오디는 붉으며 감나무 잎사귀는 어느새 살이 쪘구나. 작은 동산에 풍물이 꽃답고 향기롭네. 사마소 술단지에 술이 다한 연유를 알고자 하거든 선생이 취하여 돌아가는 모습 속에서 찾아보시게.’ 였답니다.”
김인후의 이야기에 모두들 박장대소 했다.
“술에 취해 허리를 곧게 펴 돌아가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구만 그려. 신제 선생께서는 술이 취할수록 허리가 빳빳해지시거든.”
얽굴이 불콰해진 임억령이 연신 껄껄대고 웃으며 말했다. 순간 양산보는 언제였던가, 오늘처럼 네 사람이 이곳에 모여, 절벽과 강물과 구부러진 노송이 어우러진 경치를 구경하고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였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아마 전생에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술병이 바닥이 나서야 일어섰다. 양산보는 그곳에서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술이며 안주며, 점심 도시락까지, 누가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주셨지요? 언진 형님, 저 모르는 새 후취하셨습니까? ”
“이 사람이 별 소리를....”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김인후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양산보는 그 자리에서 그들이 물을 건널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돌아서는 양산보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오목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술과 음식을 싸들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최산두를 찾아가는 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특히 배움을 찾아 마음을 열고 여러 스승들을 두루 찾아다니는 김인후의 패기 넘치는 삶이 부러웠다. 그 자신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세 사람 중에서 둘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 하였다가, 사화로 벼슬을 잃고 낙향을 했는데도, 오히려 삶이 당당하고 그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얽매임 없이 무한히 자유스러워보였다. 임금을 비난할 수 있을만큼 용기도 있어보였다. 그리고 젊은 김인후는 어쩌면 그도 선배들과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벼슬길에 나가고자 한다. 김인후는 과거에 응시하는 이유가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고관대작이 되어 세상을 경영할 뜻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양산보 자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벼슬은커녕 제대로 과거 한번 응시해보지 못한 채 한때 꿈꾸었던 입지(立志)를 꺾고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며 은사니, 은일군자니 하는 말을 듣고 사는 자신의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용기도 없고 자유도 없는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양산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으면서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았다. 

물염정에서 창암촌까지 기껏해야 30리 안팎 거리인데, 해가 설핏해서야 마을 앞에 당도했다. 그가 창암촌 개울 앞에 이르렀을 때 입구 쪽에 버들이가 넷째 갓난아기를 업은 채 오른손으로 셋째 자정의 손을 잡고 독수정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양산보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양산보 생각에 버들이는 오래전부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손님들에게 도시락과 안주를 마련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빠른 걸음으로 개울 입구에 와서 주위를 둘어보았으나 버들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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