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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43)문순태 작가

<다섯번째 꿈, 제월당을 짓다> 제43화

 그날 집에 도착한 양산보는 상식(上食)을 올리는 초하루 보름도 아닌데, 서둘러 굴건 상복으로 갈아입고 아버지의 신주를 모신 영연(靈筵)에 들어가 엎드려서는 곡을 하더니, 서럽게 통곡했다.
“아버님, 이 불효자를 용서해주십시오. 자식 놈이 급제하여 어사화 꽂고 삼현육갑 앞세워 금의환향 하는 모습 한번 보시는 것을 그렇게도 간절히 소원하셨건만, 이 못난 불효자의 고집 때문에 아버님의 그 간절한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님 살아 계시올 적에는 아버님의 그 소망이 자식에 대한 한갓 헛된 욕심으로만 여겼으나,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하니 이 불효자의 오만하고 미거한 탓이었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사옵니다. 이제라도 잘 못을 통회하고 이렇게 간절히 비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비록 이 불효자식 어사화 꽂고 금의환향은 못할지언정, 장차 바르고 청정한 뜻을 세워 군자답게 살아가면서 가문을 번창시켜 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리겠으니 노여워 마시고 용서해주시옵소서.”
 
양산보의 통곡소리에 집안 식구들이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두 나와서 영연 앞에 서 있었다. 양산보는 오랫동안 영연에서 나오지 않고 엎드려 통곡을 계속하다가 홀연히 상복을 벗고 아버지가 거처했던 별채 사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몰려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양산보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캄캄한 큰사랑에 들어앉아 있다가, 또바우를 불러 버들이한테 주안상을 들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버들이로부터 주안상을 가져왔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심지에 불을 밝히고 저녁 밥 대신 혼자 술을 마셨다.
 
버들이는 안채로 돌아와 갓난아기를 유모방에 데려다주고 이유 없이 잠투세를 하며 보채던 셋째 자정이가 깊이 잠든 후에야 어둠을 더듬어 별채 큰 사랑 쪽으로 갔다. 불이 켜진 큰 사랑에서는 양산보가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창호지 문에 그림자로 비쳐졌다. 버들이가 알기로 양산보는 아씨가 세상을 뜬 후로 혼자 대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궐녀는 양산보가 무엇 때문에 영연에 들어가 통곡을 하고 저녁도 물리친 채 술만 마시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저승으로 떠난 아씨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씨가 없어 적적함을 이기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된 버들이는 한참동안 별채 큰 사랑 토방에 서서 창호에 비친 양산보의 그림자만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는 간간히 무겁고 깊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버들이는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그림자를 통해 방안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양산보가 한숨을 내쉴 때마다 버들이 마음이 싸하게 아려왔다. 양산보는 가끔 손바닥으로 방을 거세게 내리치며 아버님, 아버님 하고 외쳐 부르다가 똑같은 동작으로 스승님을 외쳐댔다. “아버님, 용서해주십시오.”하며 울부짖다가, 다시  “스승님이 원망스럽습니다.”하고 투정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동안을 그렇게 통곡하듯 울부짖기를 되풀이하다가 조용해졌다. 심지 불을 켜 놓은 채로 지쳐서 잠이 든 것 같았다. 버들이는 사랑에 들어가 심지 불을 끄고 나오려다 그냥 두고 한참이나 마루 끝에 앉아 있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양산보는 해가 상투머리에 올라앉아서야 잠이 깨어 큰 사랑에서 나왔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오른손바닥을 펴서 눈을 가리고 거푸 하품을 쏟으며 사랑방 문을 열고 마루로 나와 보니 버들이가 놋쇠 대야에 소세 물을 떠놓고 그 옆에 수건을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침상 큰 사랑으로 들일까요? ”
버들이가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이고 물었다.
“참, 어저께는 손님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네.”
양산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버들이와 대면하는 것이 어색한지 한사코 눈길을 돌렸다가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소세를 했다. 그 사이 버들이가 아침상을 들이기 위해 수건을 옆에 놓고 돌아섰다. 양산보가 소세를 끝내고 사랑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이 버들이가 밥상을 받쳐 들고 와서 방에 놓고 나갔다. 궐녀는 양산보가 밥을 먹는 동안 마루 끝에 앉아서 기다렸다. 지넷등 쪽에서 산 까치가 떼 지어 날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궐녀의 귀에는 산 까치울음소리보다는 간밤에 양산보가 방바닥을 치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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