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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44)문순태 작가

<다섯번째 꿈, 제월당을 짓다> 제44화


 양산보는 밥상을 물리고 나서 버들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서둘러 누각을 짓고 있는 지넷등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덧 여름이 짙어 햇살이 따가웠다. 한 달 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바람이 불 때마다 푸석푸석한 흙먼지가 부옇게 날렸다. 양산보는 개울 쪽으로 내려가다가 큰 아이 자홍이와 둘째 자징이 바가지에 개울물을 퍼가지고 올라와서 나무에 쏟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홍은 그의 은행나무에, 자징은 측백나무에 각기 물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 지금 무엇을 하는 게냐? ”
양산보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비가 오지 않아서 아버지께서 심어주신 저희 나무가 목이 말라 죽을까 걱정이 되어 물을 주고 있습니다.”
자홍이가 바가지 가득 떠온 물을 은행나무 밑동에 쏟으며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사이 자징이 개울에서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올라와서는 측백나무에 물을 주었다. 측백나무는 셋째 자정의 나무였다. 양산보는 둘째가 자기 나무인 회화나무 대신 셋째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자징아, 너는 어찌하여 네 나무는 제쳐두고 동생의 측백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냐? 네 나무는 회화나무가 아니더냐? ”
“예, 제 나무는 회화나무가 맞습니다. 허지만 자정은 아직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우가 자기 나무에 물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형인 제가 도와서 측백나무가 잘 자라도록 해야지요.”
“그렇구나. 허면 자홍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 ”
양산보는 첫째를 향해 물었다.
“자기 나무는 자기 스스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의 말에 양산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두 아이들이 그들의 나무가 말라죽을까 걱정이 되어 물을 주고 있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간밤에 잠시나마 깊은 번뇌에 사로잡혀 자신을 책망하고 실의에 빠졌던 것을 생각하니 자괴감이 앞섰다. 양산보는 생각을 가다듬고 그가 거처할 누각 공사장으로 올라갔다.
  처남 김윤제로부터 도움을 받아 누각 짓는 일을 시작한 양산보는 뜻밖에 면앙정 형님과 하서한테서까지 어음을 받게 되자 한시름 놓았다. 그 무렵 양산보는 아버지가 업으로 삼아오던 면화제배를 둘째동생 견보와 셋째 광보에게 맡기고 자신은 원림 조성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다음날 양산보는 부모를 생각하며 애일가(愛日歌)를 지었다.

     가장 아끼는 몸 그 몸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가
     천금같은 눈과 얼굴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
     아 부모님께서는 나를 낳으시고       
     그 수고로움 망극하고 사랑 그지없어라
 
양산보는 동생들과 자식들을 모두 모아놓고 애일가를 큰 소리로 독송하고 나서 모두를 외우라고 일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위쪽 누각의 기둥이 세워졌고 상량이 올려졌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누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잿빛 두루미가 날개를 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좌측 1칸은 다락을 둔 온돌을 놓고 중앙칸과 우측 1칸은 마루 귀틀 중에서 세로로 놓이는 가장 긴 귀틀인 장귀틀과 마루의 장귀틀과 장귀틀 사이에 가로 질러, 청널의 잇몸을 받는 짧은 귀틀인 동귀틀 갖춘 우물마루를 놓았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한 형태로, 서까래가 보이는 부분에는 눈썹천장으로 했다. 홑처마에 추녀 끝에 팔각 활주를 세우고 지붕 위쪽의 양 옆에 박공으로 사람인자 (人) 모양을 이룬 합각부분에서 가재 꼬리처럼 굽은 우미량 형태의 보와 연결되어, 비록 작지만 덩실하게 높아 보였다.

위쪽 누각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장마가 들었다. 연일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면서 무섭게 물이 넘쳐흘렀다. 바위와 돌에 부딪치고 솟구치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창암 골짜기를 줴흔들었다. 다행히 개울물은 범람하지 않았다.  석가산 한쪽이 무너졌고 연못은 돌과 흙더미로 메워졌다. 누각 앞 쪽 매대(梅臺) 한쪽이 무너지면서 매화나무 뿌리가 뽑혔다. 봄에 누각 앞으로 옮겨 심은 배롱나무는 다행히 이파리 하나 다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양산보는 봄에 그가 거처할 누각에 앉아서 배롱꽃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옮겨 심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에도 배롱나무 꽃은 붉게 피었다. 비에 젖은 꽃잎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양산보는 배롱꽃을 보며 죽은 부인을 생각했다. 진홍색으로 핀 꽃이 죽은 부인의 넋처럼 애잔해 보였다. 요즈막 양산보는 매일 한 번씩 삿갓에 도롱이를 두르고 나와 비에 젖은 배롱꽃 나무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서곤 했다. 비바람에 행여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릴까 애태우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꽃을 바라보곤 했다. 부인과의 약속대로 부인의 묘 앞에 심은 배롱꽃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마가 그치자 누각에 문짝을 달고 창호지를 발랐다. 양산보는 그의 거처를 누각으로 옮겼다. 장마 때문에 한동안 중단되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물에 씻겨간 석가산도 새로 쌓고 연못을 가득 메운 흙과 돌도 모두 드러냈으며 허물어진 매단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장마가 끝나자 햇살이 가늘어지면서 왕성했던 여름 기운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소쇄한 바람이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양산보는 누각 마루에 앉아 시들어가는 배롱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 큰 아이 자홍이 다급하게 마을 쪽에서 뛰어내려오더니 숨넘어가는 소리로 갓난쟁이가 아프다는 말을 전했다. 양산보는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유유자적 하염없이 배롱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어서 안채에 가보셔요.”
자홍이 채근했으나 양산보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러자 지홍은 풀이 죽어 휘적휘적 발걸음을 돌렸다. 양산보는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된 것이 순전히 넷째 출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어미를 잃은 아기를 애틋한 눈길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고명딸인데 아직 이름도 짓지 않았다. 그날 양산보는 해가 저물도록 안채에 발걸음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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