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꿈, 조광조의 죽음> 제6화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 꿈속에서 문인주는 조광조가 금부도사에 붙들려가서 의금부에 갇히는 것을 보았다. 붙들려 간 것은 조광조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사림파 벼슬아치들이 갇혀 추국을 당했다.

쑥대머리에 피투성이가 된 얼굴들이 보이고 매질하는 소리와 숨넘어가는 비명이 궐 안을 줴흔들었다. 기묘사화. 왕도정치를 실현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사림 세력은 훈구세력의 반발을 가져와 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림과 개혁을 저지하려는 훈구 척신들 간의 권력 주고받기가 시작 된 것이다.

 그해 동짓달 스무닷새 날, 조광조는 연산군을 축출하는데 공을 세웠다하여 작위가 주어진 정국공신 가운데서 연산군의 사랑을 받은 신하가 너무 많으므로, 그들의 이름을 삭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개정을 요구하는 신하들과 이를 거절하는 중종 사이에 지루한 언쟁이 보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백17명의 정국공신 중에 88명을 삭훈하고 29명만 남기기로 했다.

그러나 심지가 약하고 우둔한 왕은 홍경주. 남곤. 심정 등의 농간에 놀아나, 조광조와 그의 추종자들은 죄인으로 몰아 잡아가두도록 했다. 그날이 11월 15일이다. 중종은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가 서로 붕당을 맺어 자기들 편에 서는 자는 관직에 나가게 하여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국론과 조정을 그릇되게 하였고 윤자임, 박세희, 박훈, 기준 등이 동조하였으니, 문초하여 철저히 밝혀내도록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신들은 오직 전하를 요순과 같이 만들고자 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저희 일신만을 도모했겠습니까. 하늘이 내려다보는데 진정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바라옵건데 신들은 천번만번 죽어도 마땅하오나 선비들의 참화가 생기면 훗날 나라의 명맥이 염려되옵니다. 전하께서 친히 국문을 해주신다면 일만 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

조광조는 임금께 간청했으나 중종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는 모두 관직을 박탈하고 장 1백대를 친 후에 먼 지방에, 윤자임, 기준, 박훈, 박세희는 가까운 곳에 유배하기로 결정되었다. 사림의 중심에 있었던 조광조는 죄인이 되어 학포의 고향인 능주로 유배를 당했다. 제자인 양산보와 장잠, 그리고 남평 출신인 제자 이두가 조광조의 유배길을 배종했다. 학포도 삭직을 당해 아우와 함께 고향으로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조광조는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넘고 과천을 지나 죽전에 이르자 잠시 수레를 멈추게 하고 선영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안에 이르니 영남 유생들이 유배 길에 나와 조광조를 보고 통곡하였다.

“상감께서는 성심이 밝으신 분이시니 곧 다시 부르실 것입니다. 너무 비통해하지 마십시오.”
조광조는 눈물을 흘리는 유생들을 다독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조광조를 실은 수레는 금강을 건너 여산에 당도했다. 동짓달이라 눈이 내리고 바람이 매서웠다. 설한풍 몰아치는 추위 속에 유배 길을 떠난 조광조는 열하루 만에 능주에 당도했다.

“조금만 고생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걸세. 상감께서 결코 남정이나 심곤의 사주에 넘어가시지 않을 걸세. 반듯이 그 두 사람을 내치고 나를 다시 불러들일 것이니 두고 보게.”
눈발 속에 그 먼 길을 왔는데도 조광조는 지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배소까지 배행한 친구 학포와 제자들을 위로했다.
 

 낡은 초가에 위리안치 된 조광조는 그 해가 가기 전에 임금이 다시 그를 불러들일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양산보는 스승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훈구척신들 세상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그는 스승에게 너무 임금을 믿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다만 그의 속내를 학포 당숙한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학포 당숙도 양산보와 같은 생각이었다. 학포 생각에 조광조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묻혀있는 인재발굴이라는 명분으로 현량과라는 특별과거를 실시하여, 자기 세력을 요직에 진출시킨 것이 임금의 눈에 벗어나기 시작한 듯싶었다.

위훈삭제 주장이 나오자 임금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 때 조광조를 따르던 사헌부. 사간원. 승정원 관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러나 임금은 끝내 조광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학포가 들은 바로는 중종은 처음에 조광조를 비롯하여 김정, 김식, 김구를 당장 죽이라고 했는데 정광필등 대신들이 극구 반대하자, 임금은 한발 물러서 조광조와 김정만 죽이라고 언명을 내렸다고 했다. 정광필이 다시 반대하여 결국 유배를 당하게 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의 생각에 결국 임금은 조광조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왕권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훈구대신들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 분명했다. 임금은 반정으로 왕에 오르기는 했으나 이미 훈구대신들의 힘에 눌려 왕권이 위태롭게 되자,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를 앞세워 사림파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사림파가 너무 강해지자 다시 불안을 느낀 나머지, 이들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중종은 훈구대신들과 사림파 사이를 교묘하게 조정하고 이용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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