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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담양천년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 귀농으로 새희망을 일구다(9)
  • 강성오 농업전문기자
  • 승인 2018.03.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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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벨리의 탑을 꿈꾸다   채 경 일

“어머님과 애들 때문에 귀농했습니다”

채경일씨는 한때 위풍당당한 셰프 모자를 쓰고 내로라하는 관광호텔에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에 종사하며 전국 탑을 꿈꾸다, 개인 사정으로 창평면 오강리로 귀농했다. 오강리는 다섯 개 강이 지나고, 지류가 모인다 하여 이름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져왔다. 인간에게 물이 생물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은 풍수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는데, 재물은 귀천을 초월하여 소중히 여겼고, 사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의 왕릉에는 수로가 필수였다. 후손이 발복하고 재물이 모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처럼 묘지에 인위적으로 수로를 만들 정도로 물의 영향이 지대한데, 오강리는 다섯 개의 강이 지난다고 하니 풍수학 측면에서는 명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오강리가 그의 태자리다.

“홀로 계신 어머님과 애들 때문에 귀농했습니다”

귀농 후, 무슨 일이라도 하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젖먹이 아이를 어머니께 맡기고 일하려 했으나, 어머니도 농사일로 바빠 애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애들을 봐야했다. 그러느라 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귀농인이라면 누구나 작목 선정에 대한 고민이 크고 깊다. 그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흔하디흔한 작목이나, 전통을 이어온 작목이 경제성이나 장래성이 약하다는 것을 오래도록 지켜보았기에 작목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한 고민 과정을 거쳐 선정한 작목이 와송이었다.

그는 전부터 효소에 관심이 많았다. 생산된 재료를 다듬어 요리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농산물을 다루다보니 어지간한 농산물에서는 신선함을 느끼지 못했다. 재료의 신선도가 아니라 희소성에 대한 신선함이었다. 그래서 효소에 신선함을 느껴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의 끝자락에 와송이 있었다.

기와 와자에 소나무 송자를 쓰는 와송. 한자 풀이로만 본다면 기와에서 자라는 소나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와송은 선인장에 가깝다. 기와 위에서 자라는 모습이 소나무 꽃이나 잎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와송 육묘에 열정을 쏟는 채경일님

그는 7년 전에 와송 재배에 나섰다. 그러자 너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소한 작목에, 판로마저 없는 판국에 재배에 나섰으니 그런 말이 들려오는 건 당연했다. 마주하면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비웃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심지어는 어머니마저도 그의 도전에 회의감을 가졌다. 그는 그렇게 불신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와송을 재배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했기에 첫해부터 성공적으로 재배했다. 그는 씀바귀, 곰보배추, 민들레 씨를 발아시켜 재배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런 경험이 와송을 재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수확한 와송을 로컬푸드에 납품하거나 지인에게 판매했다. 생초는 요쿠르트에 갈아서 마시게 하고, 말린 와송은 차로 끓여 마시기를 권했다. 가루를 내거나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판매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가 원했던 방법도 아니었다.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저를 바라보는 게 보람입니다”

그는 당초 구상대로 발효를 시켜 차로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 와송을 발효시켜 효소와 차를 생산하여 지인과 인터넷 판매에 집중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의 제품을 경험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 주어 주문 전화가 쇄도했다.

▲발효과정을 거친 와송


와송은 성질이 차가운 식품이기에 열을 내리고 해독과 피를 멈추게 하는데 효과가 있다. 하지만 효소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는 기운을 느낀다. 그런 기운 때문에 입소문을 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효소는 엄청난 반응을 일으켜 월 매출이 3~4천만 원에 이르렀다. 500평 정도의 땅에 와송을 심어 거둔 수확이니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상한 눈으로 보던 사람들이 다르게 본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는 와송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열심히 한다면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부농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와송은 급격한 공급 확대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감을 무기로 다른 작목을 찾기 시작했다.

“와송이 인생2막의 씨앗이었다면, 마키베리는 전성기를 구가할 식물이 될 겁니다.”

텔레비전에 무심코 시선을 박고 있었다. 한손에는 스마트폰을 잡고 통화하고, 다른 손으로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 낯선 열매를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열매에 전기충격을 당한 것처럼 뇌리에 강력한 필이 꽂혔다. 그는 냉큼 전화를 끊고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마키벨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신경을 끌어 모아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마키벨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곧장 마키벨리의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칠레가 원산지라 칠레의 기후와 토양이 우리나라, 특히 오강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검토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 칠레. 마키벨리의 원산지인 파타고니아의 기후가 오강리보다 조금 높았다. 토질은 오강리가 낫다고 판단했다. 아무튼 자연 조건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이었다. 칠레는 해풍으로 따뜻한데 오강리는 겨울의 북서풍 때문에 노지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해 보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방법은 간단했다. 시설하우스를 설치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문제였다. 그는 시설에서 연구 겸 재배할 목적으로 칠레산 씨앗을 구입했다.

▲판매용 마키벨리 묘목

칠레는 묘목과 씨앗의 외국 반출을 막고 있었다. 때문에 씨앗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정말 어렵게 구한 씨앗을 발아시켰다. 킬로그램 당 1,600만 원이나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 발아가 되지 않았다. 씨앗이 문제였던 것이다. 수천만 원을 들여 구입한 씨앗에 문제가 생기자 소송까지 제기했다. 2년 넘게 걸린 지루한 공방 끝에 승소하기는 했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은 보상받지 못했다.

씨앗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음에도 그는 마키벨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이 합법적으로 반출할 수 있는 법령도 제정되었다. 그는 믿음직한 후배를 칠레로 보냈다. 좋은 씨앗을 구하기 위해 현지에서 직접 수확을 돕고, 씨앗을 채취하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씨앗을 국내로 들여왔다.

묘목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발아를 시켰다. 노지, 화분, 멀칭작업 후의 발아 과정이나 성장 속도 등을 집중 분석했다. 눈을 뜨면 묘목장에 나가 새싹과 대화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다. 영농일지에 기록을 고스란히 남기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택에 묘목은 잘 자랐다.

“저에게 와송이 인생2막의 씨앗이었다면, 마키벨리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해줄 식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키벨리 묘목장


1,000여 평 그의 묘목장에는 10만 그루의 묘목이 자라고 있다. 2년생 기준의 판매가로 환산하면 15에서 18억에 달한다. 발아부터 판매까지의 사이클이 최대 3년이라고 하니, 그처럼 확신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가도 남는다.
 

“기존의 관념을 과감히 벗어 던져라.”

마키벨리는 생소한 작목이다. 때문에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효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세포 회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보랏빛 회춘식품이라 부르곤 한다. 게다가 안토시아닌이나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이나 활성산소 제거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다른 베리류보다 미세먼지를 4배 이상 막아준다고 한다. 칠레의 아우스뜨랄 대학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안토시아닌 성분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식물이 마키벨리다. 아시아베리의 400배, 아로니아보다 344배가 많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칠레 정부가 그토록 마키벨리의 반출에 신경을 썼단 말인가.
어쨌든 그는 이런 정보를 파악하고 앞뒤 재지 않고 묘목 시장에 바로 뛰어들었다.

“귀농하려면 육체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거기다 결단력도 필요합니다. 기존 농업인은 선두에 나서길 두려워 합니다. 남이 하는 걸 보고 안정적이다 싶으면 뛰어듭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와송을 작목할 때도 그랬어요. 많은 분들이 풀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계셨고, 판로에 대한 불신, 성공에 대한 의심 등으로 주저하다가 한참 후에 뛰어들었죠. 그러나 후발주자들이 대박을 터트리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의 농장 이름은 ‘더불어 농장’이다. 귀농하여 경험하다 보니, 더불어 살지 않으면, 협동하지 않으면 부농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농장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야말로 귀농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고 보람임을 느꼈다. 게다가 아이들과 묘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위풍당당한 셰프 모자를 쓰고 호텔주방을 휘어잡을 때는 셰프로서의 탑을 꿈꿨지만, 이제는 마키벨리로 전국 탑이 되기를 꿈꾸며 묘목에 물을 뿌린다.

(귀농인 채경일 연락처 : 010-3728-9876)/ 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강성오 농업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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