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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65)문순태 작가

<일곱 번째 꿈, 소쇄원의 소쇄처사> 제65화

“누구 글씨를 받으실 건데요.”
“나는 청송 글씨가 좋더구만. 청송의 담묵 글씨가 마음에 들어. 내려오기 전에 청송을 만났었네. 백악산 기슭에 청송서실을 지어놓고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었네. 내가 찾아갔을 때는 태극도를 그리고 있드만. 청송 말이 태극도를 그리고 있노라면 세월 가는 것도 잊을 수가 있다고 하데. 두문불출하고 청송 서실에 들어앉아 대학 과 논어를 읽고 태극도를 그린다고 하더구만.”  
“청송 형을 만나셨어요? ”
“참 청송이 자네한테 안부 전하데. ”
“그래요? 참으로 고결한 분이지요.”

양산보는 송순으로부터 청송 성수침에 대한 소식을 듣자 울컥 눈물이 복바쳐올랐다. 문도이기는 해도 성수침은 양산보보다 열 살이나 위고 아우 수종은 여덟 살이 위라, 형님으로 깍듯하게 대했다. 성수침은 정암 스승의 장례 때 문도 이연경.이충건과 함께 능주까지 와서 서럽게 통곡을 하지 않았던가. 스승의 무덤 앞에서 목을 놓아 통곡하던 청송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종 형은 어찌 지낸다고 하던가요? ”

양산보가 얼핏 듣기로 성수침의 동생 수종은 기묘사화가 일어난 그 해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정암의 문인이라 하여 과방에서 삭제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초시에 여러 번 합격했으나 벼슬하지 않고 청빈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들었네.”

송순의 말에 양산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때 정암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했던 문도들이 모두 그늘 속에서 고단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문도였던 이충건과 그의 동생 문건 또한 삶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형제는 정암 장례 때 문상했다는 이유로 파직이 되고 말았다. 이충건은 그후 안처겸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귀양 가던 중에 청파역에서 세상을 떴다. 그 아우 문건은 복직이 되었으나 역시 안처겸의 옥사 때 낙안에 유배되었다가 풀려 한참 후에 정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정암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청송께 편액 글씨를 받으시려면 올라가시게요? ”
“서찰을 보내야겠지. 서찰을 보낼 때 자네 것도 부탁을 할까? ”
“ 아닙니다. 제 것은 기촌 형님께서 좀 써주시지요.”
“아닐세. 응당 당호를 지어준 하서야 써야지.”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밝게 웃었다. 양산보는 웃고 있으면서도 헤어진 지 오래된 옛 문도들이 생각나 잠시 기분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참, 고모님께서 오셨다는데 그만 집으로 내려가세.”

송순은 그러면서 앞장서서 언덕을 내려가 고모를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송순이 파직 되어 고향에 내려왔다는 소문을 듣고 경향각지에서 문우들이며 제자들이 몰려왔다. 맨 먼저 김인후를 비롯하여 유희춘이 왔고 임억령이 다녀간 후로 홍문관 교리 김윤제가 먼 길을 찾아왔다. 그들은 조정으로부터 내침을 당한 스승을 위로했으나 ,송순은 아쉽다거나 서운한 기색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어 홀가분해 하는 표정이었다.

“애시당초 나는 벼슬길에 나가고 싶지가 않았네. 가친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을 알고 효도한다는 생각으로 출사를 했는데, 이제 고향에 돌아왔으니 책이나 읽고 시나 읊으면서 한가롭게 살고 싶을 따름이네.”

송순은 밝은 얼굴로 제자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제자들은 김안로의 세력이 꺾이게 되면 임금이 스승을 다시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송순은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임금이 다시 부른다 해도 사양할 뜻임을 보여준 것이리라.
송순을 찾아온 그들은 그냥 돌아가지 않고 어김없이 면앙정에서 가까운 소쇄원에 들렀다. 송순으로부터 소쇄원을 무이정사에 비교하고 새로 지은 전각들이며 원림이 잘 조성되었다는 찬탄의 말을 전해 듣고 나서 구경삼아 찾아온 것이다.
뒷산에서 꾀꼬리가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며 낭자하게 울어대는 날 아침에 하서와 미암이 함께 양산보를 찾아왔다. 그들은 지난해에 귀양온 지 15년 만에 해배된 신제 선생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미암은 장성 진원에 계신 노모를 뵙고 오는 길이었다. 미암의 형인 유성춘이 28세로 세상을 뜬 후로 그의 부인이 친정 마을에서 시모를 봉양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침 서하당에 머물고 있던 임억령도 만났다.

“셋이서 같이 술병 들고 신재 선생님을 찾아다니던 나옹 형의 모습이 눈에 선 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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