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한우를 먼저 선택한 총각    김 득 재

“부모님이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김득재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여느 직장인처럼 눈을 뜨면 씻고, 아침 식사를 마치면 바로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직장인들이 그렇듯 주말이 가까워지면 주말을 기다리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시곗바늘이 정해진 구간을 도는 것처럼 변함없는 생활이었지만 직장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제안을 받았다.

“축사가 나왔는데, 회사 정리하고 내려와라.”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과는 반대의 제안이셨다. 자식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는 농부가 많은데 그분들과도 다른 생각이었다.
“경험도 없고, 일도 힘든데 오라는 말입니까?”
그의 항변에 아버지는 단호했다.
“돈은 힘들게 벌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고, 귀농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 아버지 마음을 돌릴 이유를 찾았다. 아직 미혼이며 서울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비전도 있다며 기나긴 시간을 들여 끈질기게 아버지를 설득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아버지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축사를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대출을 끼고 축사에 딸린 집까지 샀다. 그만큼 아버지는 완고했다. 결국 그는 축사로 이사해야 했다.

▲산뜻하게 단장한 집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은 한우 사육이 아니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돌로 집 앞의 축대를 쌓았고, 축사 주변에 콘크리트를 깔았다. 집안도 깔끔하게 도배했다. 비만 오면 질퍽하던 축사가 달라졌다. 집중 호우에도 장화를 신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경이 달라졌다. 집안 분위기도 도회적으로 바뀌었다. 집 뒤의 산을 배경으로 한 외관만 보고 평가한다면 별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축사 환경을 개선한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한우 사육에 들어갔다. 가까운 곳에서 한우를 사육하신 외삼촌이 수시로 들러 멘토를 해주셨지만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분과, 축협에서 소개해주신 분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다들 이웃처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멘토들의 자세하고 적극적인 자문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중견 소 한 마리가 아파 성장하지 않는데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마음이 아팠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새끼가 폐사했을 때는 정말로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돈이 날아갔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죽음 자체가 안타까웠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가슴 깊이 내재되었는지도 몰랐다.

폐사가 있었지만 쌍둥이가 태어난 적도 있었다. 혹시나 잘못될까 봐 두 달 넘게 지극정성으로 분유를 먹였다. 송아지에게 분유를 먹일 때, 모성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싫지 않은 경험이었다. 송아지에게 젖을 잘 물리지 않는 어미도 있는데, 그가 어미를 대신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전기난로를 쬐고 있는 송아지와 곁을 떠나지 않은 어미소

지금은 소 한 마리를 유심히 관찰 중이다. 정확히는 모녀를 관찰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새끼가 태어나면 새끼를 위한 ‘송아지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젖을 먹을 때나, 어미 소가 그리울 때, 넓은 곳을 휘젓고 싶을 때는 송아지가 나오려 했다. 그런데 송아지가 나오려 하면 어미 소가 머리로 받곤 하는 것이었다. 아직 채 2년도 되지 않은 그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외삼촌에게 물으니, 왜 그런지 지켜보면서 스스로 알아보라고 껄껄 웃고 마셨다. 외삼촌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궁금하기에 원인을 찾을 때까지는 세심하게 살필 것이다. 원인을 찾았노라고 외삼촌에게 자랑삼아 말할 것이다.

“하루가 되게 널널해요.”

그는 여섯 시에 기상한다. 여섯 시 기상은 익숙하다. 군대에서도 그랬고, 서울에서도 여섯 시에 눈을 뜨곤 했으니,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여섯 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눈을 뜨는 시간은 같다. 하지만 이후는 판이하다.

서울에서는 출근하려고 자기를 돌보는 시간에 담양에서는 축사로 나가 소들을 살핀다. 밤새 탈은 없었는지, 축사에 이상은 없는지, 자기를 돌보는 것보다 더 디테일하게 소를 관찰한다. 서울에서는 아침을 먹고 출근했지만, 담양에서는 소에게 아침을 먹이고 나서 아침을 먹는다.
오후 세 시 반이면 다시 축사로 향한다. 소들을 살피고, 축사를 살피고, 저녁을 먹인다. 그리고 나면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다.

“하루 일과는 되게 널널해요. 그런데 동물이다 보니 매일매일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요. 때문에 근거리는 몰라도 장거리 외출이나 외박은 힘들지요.”

▲축사 내부

그는 현재 혼자서 축사를 관리한다. 아버지께서 손길을 보태주긴 하지만 축사 일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는 아직 총각이다. 삼십 대 중반이니 결혼해야 할 나이다. 결혼 적령기가 갈수록 늦어진다고 해도 적령기가 지났을 수도 있다. 여자 친구를 사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사귈 시간도 있다. 일과가 끝나면 시간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혼보다 더 급한 목표가 있다.
“이왕 귀농했으니 최대한 빨리 궤도에 올라서야지요.”

“당장은 TMR 조제가 목표.”

인근 축산농가는 수도작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볏짚을 사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사료 구입비가 적게 든다. 하지만 그는 논 한 평 없어 사료를 전량 사들여야 했다. 때문에 타 축산농가보다 경쟁력에서 떨어진다. 투자금을 생각하면 아득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는 축사 구입비로 3억 넘게 투자했다. 거기에 한우 입식비는 빠졌다. 그 비용은 부모님의 도움과 그가 모아놓은 돈에 귀농창업자금을 대출받아 마련했다. 저금리라고는 해도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다. 빚을 지고 사는 삶이 누군들 편하랴 만은 특히나 그는 가슴에 커다란 납덩이를 하나 얹고 있는 듯 하루하루의 삶이 무겁다.

“비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빚이잖아요?”

빚은 가슴을 짓누르고 후벼 파는 무기며, 현재의 나태함을 채근하는 채찍이다. 또한 빚은 제2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에게 빚은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같은 액수라도 무게감이 다르기 마련이다. ‘흙수저’ 출신인 그에게 3억이 넘는 빚은 만만치 않은 무게다. 무게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료용 볏짚

“방법은 사료를 스스로 제조하는 것이라고 보았어요. 사료를 제조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최소 백두는 길러야 제조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부지런히 두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사료 제조가 가능한 TMR 조제기를 들여놓는다는 당장의 목표를 위해서지요.”
내년이면 축산업에 뛰어든 지 3년이 된다. 그가 내년까지 세운 목표는 비육우 100두, 번식우 50~60두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여전히 투자 중이다. 생활도 기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목표를 위해 결혼도 뒷전으로 하고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일차 목표다. 그러면 최소한의 궤도에 진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후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나 욕심이 있기 마련이니 또 다른 목표를 세우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당장의 목표인 150두와 TMR 조제로 사육 원가를 낮추는 게 급선무다. 그 목표가 달성되면 결혼할 거냐고 물으니, 허허 웃고 만다. 김득재 님이 웃는 모습에서 어미가 송아지를 못 나오게 하는 문제로 자문을 구했을 때 외삼촌이 껄껄 웃는 모습이 겹쳤다. 그의 앞날을 응원이라도 하듯 한낮의 맑은 햇살이 그의 얼굴에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귀농인 김득재 연락처 : 010-9017-5332)/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강성오 농업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