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 꿈동산   추 정 아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시기가 당겨졌어요.”

네자매농장의 추정아씨는 광주에서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했다. 사슴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망울을 보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나이 들어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친정아버지의 암 진단. 그 후 얼마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장례가 끝나고 네 자매는 큰 결정을 해야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농사 규모를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 이미 심어놓은 딸기를 포기할 수 없다며 셋째 동생이 함께 귀농을 결심했고, 언젠가는 귀농할 생각이었다며 남편도 흔쾌히 찬성을 해주었다. 언니도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둘째인 그녀와 셋째가 먼저 귀농해 농사를 거들었다. 언니도 나중에 합류했다. 그래서 세 자매와 어머니가 농사를 계속 이어갔다.
아버지가 했던 일은 남편이 도맡았다. 남편은 손재주가 좋아 크고 작은 일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여자가 하기 힘든 전기 설비나 용접 등은 물론이고 간단한 농기계 수리도 직접 했다.

“백향과는 나에게 효자랍니다.”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백향과

어머니가 딸기를 재배해오고 있었지만 일머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식구들과 농사를 지으려니 손발이 맞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작은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작은아버지 덕에 그나마 농장을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농장이라고 해도 딸기만으로 친정어머니와 세 자매가 생계를 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소득원을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신소득 작물은 남편이 발 벗고 나섰다. 남편이 선택한 품종은 백향과였다. 그런데 백향과에 대한 재배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다양한 경로로 이론을 배웠고, 전국을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백향과를 식재했다. 호남 최초였다.

최초로 도전한 사람에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기 마련이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도 존재한다.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리면 남편은 밤잠을 줄이고, 발이 닳도록 자문을 구하러 다녔다. 그녀는 남편이 안쓰러워 애가 타는 데도 남편에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가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동력을 얻는단 말인가. 해서 그녀는 늘 밝은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곤 했다. 애정 어린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듯 백향과에도 정성을 쏟았다.

“백향과가 기후에 민감해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날씨에 따라 한꺼번에 나오거나 한꺼번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찾는 분은 많은데 공급을 제대로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향과는 우리에게 효자나 다름없습니다. 딸기 비수기에 생산되는데, 비수기 때는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백향과가 힘이 되었습니다. 정성을 쏟은 만큼 베풀더라고요.”

백향과가 그녀에게 효자인 이유가 또 있다. 날마다 작업해야 하는 딸기에 비해 일손이 덜 가는데도 단위 면적당 소득이 딸기보다 높았다. 초창기에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금은 노하우도 생겼다. 매일매일 지극정성을 들이는 부담이 없으니 아직 도시 물이 덜 빠진 자매들에게 어울리는 작물이기도 했다. 자매들이 어머니께 효자가 되어야 하는데 백향과가 자매들에게 효자 노릇을 했다. 자매들이 자리를 잡는데 한몫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배우고 또 배운다.”

네자매 농장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한 곳은 순수하게 농사를 짓고, 한 곳은 체험장을 겸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곳은 부모님 손길이 삼십여 년 닿은 곳이고, 체험장은 자매들이 귀농하여 논을 임대하여 하우스를 설치한 곳이다. 딸기, 백향과, 멜론을 주로 재배하지만 판매만으로는 네 가족을 위한 소득 창출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체험장이었다.

체험장까지 염두에 두고 임대한 논에 딸기를 재배하려 한다니까 만류하신 분이 많았다. 일조량 때문이었다. 일조량도 문제지만 농사도 제대로 모른 자매들이 규모를 확장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깔렸을 것이다. 하지만 체험장을 하려면 접근성과 화장실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 이곳에 체험장을 만든 것이다.

▲딸기체험 '인기'

 체험장을 찾는 분이 갈수록 늘었다. 그렇다고 농사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귀농했다고 지켜보신 분들이 많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딸기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주셨지만, 환경에 맞게 적합한 방법을 터득하려고 기를 썼다.
“남편도 농사를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중요한 기술을 알려준다면 북극에라도 달려갈 사람입니다.”
남편은 터득한 노하우를 농사에 접목했다. 일조량 부족은 토질을 개선하여 해결했다. 덕분에 지금은 어느 농가보다도 수확량이 많다.

“팔아달라고 부탁까지 받아요.”

네자매농장은 비닐하우스 13동을 경작하고 있다. 남편은 새로운 작목을 알게 되면 시범재배를 해보고 본격 재배에 나섰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신소득 작물에 끊임없이 안테나를 세웠다. 토양과 작물에 들인 공도 엄청났다. 그동안 단골도 제법 생겼다.

“상품이 나올 시기가 되면 단골에게 먼저 전화가 옵니다. 상품이 언제 나오는지 미리 물어보지요. 상품이 본격적으로 나올 때는 한 박스를 사려고 광주에서 직접 차를 몰고 오기도 해요. 기름값 많이 든다고 택배로 보내드린다고 해도 직접 와서 사고 싶다는 겁니다. 또 어떤 분은 우리 딸기를, 인생딸기라고 부르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인생이 담긴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고객 말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고객이 있다.

“임신했을 때 여기서 딸기를 사다 먹었데요. 그리고 애를 낳았어요. 아이가 좀 자라자 아이 생각에 딸기를 사다 먹였는데 먹질 않더랍니다. 몇 번 사다 주었는데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애는 딸기를 좋아하지 않은가보다고 딸기를 주지 않았데요. 그런데 우리 농장에 와서 아이가 딸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거예요. 딸기를 못 먹는 게 아니라 맛이 없어서 안 먹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답니다.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고마운 고객이 있는 반면 진상 같은 고객도 있었다. 어떤 분은 다른 농장에서 물건을 사놓고 네자매농장으로 전화를 걸어 클레임을 걸었다. 그런 손님들을 대하다 보니, 네자매농장은 나름의 구별법을 고안하여 택배 시 이용한다. 어쩌다 진상부리는 고객이 있으면 그 방법을 들먹이며 네자매농장에서 구입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네자매농장에 소비자들만 찾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들도 가끔 찾아온다. 특히 백향과가 나올 때면 생산자들의 발길이 잦다. 네자매농장을 찾는 방문객에게 자기들 상품을 팔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기꺼이 그분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귀농의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을 보고 시작했고, 남편에게 노하우를 배웠으니 책임감이 작용한 탓이다.

농장 일하랴, 체험장을 찾은 고객 대하랴, 주민들 대하랴, 딸기 잼 가공하랴 이래저래 바쁘다. 부모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딸을 돌볼 겨를이 없다. 딸은 그 점에 대해 자주 불평한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위로가 되는 점도 있다. 딸에게 사시사철 제철 과일을, 맛있는 과일을, 제대로 된 과일을 먹일 수 있어서 좋다.

그녀가 딸 나이 때도 부모님이 딸기 농사를 했다. 그때는 일부가 썩은 것, 문드러진 것, 상품 가치가 없는 것만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어쩌다, 겨우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놓고 딸에게 먹일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어머니는 그랬던 과거가 한이 맺혔던지 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신다.

▲네자매농원 하우스

지금은 세 자매가 농사를 짓는다. 막내는 농협에 다닌다. 막내도 언젠가는 귀농할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네자매농장으로 지었다. 네 자매가 모이면, 유년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것이다. 자매가 모여 산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다. 그것은 높은 소득이 될 것이다. 소득이 높으면 귀농의 보람도 높아질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이 시간에도 네자매농장은 바쁘기만 하다. 네자매농장은 자매가 모일 꿈동산이다. 추정아 님은 꿈동산에서 아이 돌보듯 작물을 돌본다./ 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귀농인 추정아 연락처: 010-9213-5197)/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