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꿈, 소쇄원의 소쇄처사> 제71화

문인주와 최 선생은 소쇄원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광주 고속터미널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무등산까지 가는 1187번이 멈춰섰다. 차량번호 1187은 무등산 높이다. 그는 소쇄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줄곧 무등산 쪽으로 시선을 멀리 던지고 있었다. 고층건물이 시야를 가렸다. 터미널 앞에서 무등산은 하늘을 가린 황사 때문에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 보였다. 터미널 앞에서는 무등산이 엷은 회색빛으로나마 빌딩 숲 위로 보이는데, 왜 포충사에서는 윤곽조차도 보이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겼다. 문인주는 정류장 앞 은행나무 가로수 밑에 서서 눈이 시리도록 하늘과 무등산의 경계를 어림하느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고경명 일행이 증심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산에 오르는 모습만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산을 가슴에 품고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
문인주가 뚜벅 물었다.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과도 같은 거여. 사람이나 산이나 같거든.”
“산하고 친해지려면 산엘 자주 가면 되겠군요.” 
“내 말 뜻을 모르는구만.”
그 말에 문인주는 괜히 풀이 죽어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계속 남쪽 하늘 끝에 시선을 매달고 서 있었다.
“증심사에 들렸다 갈까요? ”
문인주가 무등산에서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증심사는 왜?.”
최 선생은 괜히 헛걸음을 하게 된 것이 못내 짜증스러웠는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취백루 한번 보고 싶어요. 지금도 취백루가 있겠지요? ”
“있다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복원했지.”
“최송암이 바위에 새겼다는 시도 찾아보고 싶네요.”
“그건 찾지 못할 것일세. 그 때 제봉 선생도 볼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암튼 고경명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무등산을 오르고 싶어요.” 
“오늘은 그만 돌아가세.”
“날씨 좋은 날에 꼭 가기로 해요.”

반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버스가 오자 문인주는 최 선생을 따라 차에 올라 앞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아침 느지막이 임훈 목사가 당도했고 신형,이억인,김성원,정용,박천정,이정,안극지 등이 뒤따라 왔다. 나는 취백루에서 임 선생을 맞이했다. 누대 앞에 해묵은 측백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모양이 한가로워 보기에 좋았다. 이것이 비록 고려조부터 있었던 것 같지는 않으나 취백루라는 이름에는 손색이 없다. 술을 두서너 순배 한 후 임 선생이 밥을 재촉하여 떠나기를 서두르는데, 마부를 물리고 종들도 숫자를 줄인 후, 선생은 야복차림으로 갈아입고 대로 엮은 가마에 올라 증심사 주지 조선 스님의 안내로 증각사로 향했다.>   

일행은 증심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마부를 돌려보내고 종들 몇 명만을 데리고 산행을 시작했다. 문인주가 얼추 어림해도 일행이 스무 명 남짓 되었다. 전날 저녁에 증심사에 온 이만인과 김회, 판관 이언룡, 찰방 이원정도 동행했다. 문인주는 고경명과 함께 산에 오른 일행들 중에 그가 아는 인물로는 환벽당을 지은 김성원 한 사람 뿐임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궁금했다.

“일행 중에서 광주 목사와 광주목 판관, 찰방, 그리고 조선 스님, 서하당 김성원 외에는 어떤 사람들인지 혹시 알고 계셔요? ”
문인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유서석록’을 최 선생 눈앞으로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최 선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문인주의 옆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안경집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문인주가 일행들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고경명 선생의 친구이거나 후학들이겠지. 박천정은 고경명 선생과는 여남은 살 아래로 기축옥사 때 양산보 선생의 손자 양천회 등 호남유생들과 같이 정여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는 일에 동참했고, 임진란 때는 고경명 선생을 따라, 군량을 담당하는 부전양장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고 있네. 또 이들 중에서 이정은 가까운 친구이고, 이억인은 고경명 선생의 후배로 훗날 진사가 되었고 안극지는 병과에 급제했던가? 이들은 거의 고경명 선생 친구들이거나 그를 따르는 젊은 선비들이었을 게야. 서하당 김성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
최 선생은 돋보기를 벗어 안경집에 넣고 나서 눈을 지그시 감더니 팔짱을 끼었다.

“고경명 김성원 그리고 소쇄원 양자정 셋이 가장 친했다지요.”
“세 사람 다 석촌 임억령의 제자들이지. 석촌이 서하당에 살고 있을 때, 세 친구들이 잘 어울렸어. 아니지, 셋은 석천이 세상을 뜬 후에도 의기투합해서 함께 어울렸다드만. 고경명은 한동안 소쇄원 앞에 터를 잡아 은행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살았다는 기록도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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