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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담양천년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 귀농으로 새희망을 일구다(17)

커피는 소통이다   임 영 주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귀농하기 전 유수한 언론사의 보도사진기자로 근무했다. 직업이 기자라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만큼 견문이 넓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커피를 접했다. 커피를 접한 순간 한국에서도 커피를 재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직장생활을 했다.

나이 들면 은퇴 후를 고민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 역시 은퇴 후를 고민했다. 고향인 담양으로 갈까, 아니면 낯선 곳에서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까. 그 고민을 꽤나 오래 했다. 고민이 깊어진 건 이유가 있었다. 유년시절에 보고 자랐던 고향이 무분별한 개발로 상당히 변해 있었다. 수백 년 묵은 나무가 댕강 잘려나갔고,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가 헤엄치던 하천은 개발의 흔적이 고스란히 침전되어 있었다. 고향이지만 고향다운 정서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래서 낯선 곳을 생각했다. 차라리 아무도 모른 곳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쨌든 서울을 떠날 생각을 했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조용한 시골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는 아니었다. 사람끼리 부대끼며 사는 맛을 느끼는 것도 의미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고향이 나을 것 같아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고향에 내려가면 마냥 놀 수도 없고 무언가는 해야 할 텐데 무엇이 좋을까. 남들이 오랫동안 해온 관습적인 농사는 하기 싫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인생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잘 안 된다고 하고 어렵다고 하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썩였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커피를 생각했다.

점점 아열대 기후화 돼가는 우리나라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커피로 마음을 굳히고 귀농하기 전 본격적으로 커피 재배를 터득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커피 재배에 관한 교재가 없고, 전문가도 없었다. 어차피 혼자 터득해야 했다. 외국 서적을 읽고, 인터넷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자료를 보고, 자칭 박사라고 하는 분에게 의존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교재를 구하고 자문을 얻었다.

“우리나라도 점점 아열대기후가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아열대 작물이 늘어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열대기후에 대비한 연구가 제주도뿐입니다. 파인애플이나 바나나는 재배한 지 오래되었고, 망고, 파인애플, 패션프루트, 아보카도, 용과 같은 아열대 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니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지요. 그건 그렇고 그런 아열대 식물이 가능하기에 열대식물인 커피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한 거지요.”

“커피는 금수 품목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커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전 6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정보가 빈약하였음에도 커피 재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그렇게 새로운 커피에 땀을 쏟은 건 그만의 안목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약 절반이 농촌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우리 때의 농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일을 거들었지만 지금은 농촌 출신임에도 농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가 태반입니다. 그런 실정인데 그 2세들은 얼마나 낯설겠습니까? 어떤 애들은 쌀나무라고까지 하잖습니까?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농촌 출신들이 부모님이나, 조부모가 사는 농촌을 체험하고자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도시인은 물론 말할 것도 없구요.”

▲커피체험장


그런 생각에 체험을 겸한 농장을 운영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도 고려한 것이었다. 성인이 연간 마시는 커피가 400잔에 가깝고, 해마다 7% 이상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니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체험을 겸한 커피숍을 착안했다. 관습농업을 탈피한 것이었다.
체험을 위해서나 볼거리를 제공하려면 다양한 커피 종류가 필요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커피나무를 들여와 농장에 심었다. 때로는 은밀하게 씨앗을 들여온 경우도 있었다.

“케냐는 커피가 금수품목이거든요. 우리나라의 농협과 비슷한 국가기관에서 커피를 관장합니다. 때문에 기관을 통해서만 씨앗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외국인에게 얼마나 까다롭겠습니까?”
문익점이 원나라의 금수품목인 목화씨를 들여오는 것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어렵게 씨앗을 들여왔다는 말이다.

“햅쌀과 같은 커피.”

커피농장을 하지만 커피 생산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500평의 농장에 사천 그루의 커피나무가 있는데 생두를 판매할 정도로 수확이 되지 않는다. 농장에서 나온 생두를, 방문한 분들에게 커피를 내려 판매한다.
그의 체험농장에서는 색다른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루왁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를 준비해놓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생두를 이용한 커피가 제격이다.

“임금님께 진상하는 묵은 쌀과 갓 생산한 햅쌀을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요? 아무리 진상품이라고 해도 햅쌀만 하겠습니까? 우리 커피는 햅쌀과 같은 커피랍니다.”
낚시 가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를 맛보려고 낚시 간다는 꾼이 많은데, 갓 볶은 커피는 그런 맛이라고나 할까? 생선회도 숙성을 시켜야 맛있다고 하는 분이 있는 것처럼 커피도 기호에 따라 숙성된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리스타가 되어 직접 생두를 로스팅하고, 신선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데다. 커피가 익어가는 과정도 보고, 커피에 대한 상식도 넓힐 수 있으니 농장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커피농장은 부속 산물의 가치가 더 높습니다. 생두가 주라면 커피를 마시고 체험하는 게 부속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수입의 70%를 부속산물이 차지합니다. 6차산업이란 개념을 몰랐지만 이미 6차산업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지요.”

“커피는 소통이다.”

그는 고향의 복원을 꿈꿔왔다. 복제된 고향을 원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가 생각한 복원이란 사물이 아닌 정서적인 것을 일컫는다. 농촌은 이름뿐이지 거의 도시화 되었다. 그 점이 아쉽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는 게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 유년의 끈끈한 가족애, 가족 같은 이웃 관계, 선후배 간의 친밀함 등이 예전처럼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우선 가족애부터 복원하고 싶었다.

▲커피재배 및 육묘하우스
▲빨갛게 익어가는 커피열매

“저는 형제끼리 농장을 합니다. 어렸을 때 같이 일하곤 했잖아요? 그때가 그리웠거든요. 그래서 지금 함께하는데, 같이 하다 보니 예전의 가족애가 다시 살아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커피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커피를 염두에 둔 건 식물하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사람과 달리 말이 없다. 좋다 싫다 말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 베풀면 베푼 대로 돌려주고, 초록의 싱싱함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로운 내음도 전해준다. 커피가 시나브로 익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고, 빠르면 5월 중순부터 꽃이 피는데 은은한 꽃향을 음미하는 것도 커다란 행복이다. 꽃 피는 시기에 농장을 찾는 방문객이 처음 접하는 하얀 커피꽃과 향에 취했을 때는 더없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커피는 소통입니다. 한 잔의 커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술 또한 소통이지요. 만나서 처음에 소통을 하다 점차 화통이 되고 나중에는 쌈통이 되요.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술이 그런 거지요. 커피는 그럴 일이 없이 서로 나눕니다. 술을 사려면 안주도 사야 하니 돈이 많이 들지만 커피는 한 잔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커피는 소통이면서 나눔입니다.”

그는 현재가 즐겁다. 무엇보다 소일거리가 있다는 게 즐겁다. 노년에도 일거리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 서울서 살 때, 그는 전철에서 두 부류의 노인을 보았다. 한 부류는 공짜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젊은이들이 노인석에 타고 있으면 비켜주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노인이지만 절대로 노인석 앞으로 가지도 않고 내릴 때까지 꿋꿋하게 서서 가는 부류였다. 그는 후자의 노인들이 존경스러웠다. 젊은이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늙으면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노인이 될 거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현재를 돌아보니 피해를 끼칠 것 같지 않다. 자식들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게 확실해 보인다.

곧, 그의 커피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커피나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는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농장을 둘러본다. 시나브로 익어가는 생두가 점점 비대해진다. 커피는 익어가면서 비대해지기 때문이다.


(귀농인 임영주 연락처: 010-5214-2408) /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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