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꿈, 소쇄원의 소쇄처사> 제72화

“고경명이 소쇄원 근처에서 살았었다고요? ”
“친구들과 가까이 있고 싶었던 게지.”
“이들은 남이 아니라면서요. 석천 선생은 양자정의 고모뻘 되는 양 씨 부인한테서 두 딸을 두었는데, 큰 딸은 고경명의 아버지 맹영의 후실이 되었고 둘째딸은 김성원에게 출가했다면서요. 그리고 소쇄옹의 큰 아들 자홍의 장자 천리가 고경명의 숙부 고계명의 딸을 후실로 맞이했다지요?”

“암턴, 고경명과 소쇄원 양씨 가문은 대를 이어 세교를 트고 살았네. 고경명의 셋째 아들 용후는 소쇄옹의 손자 양천운과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훗날 고경명의 손자 고부천은 아예 창평 유천리로 이사를 왔다네. 고용후는 아홉 살 연상인 양천운을 친 형님처럼 예를 갖추어 친교를 맺었다네.”
“양자징의 셋째 아들이며 소쇄원 3대 주인인 그 양천운 말이지요? ”
“병화에 쑥대밭이 된 소쇄원을 다시 일으킨 사람이 양천운이라고 내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던가? ”
“기억하지요.”
“소쇄원가의 비극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화를 입은 것 외에도, 양천운의 큰형 양천경과 둘째 형 양천회가 정여립 사건에 관계되어 목숨을 잃은 것일세. 두 형제는 송강 때문에 죽었다고들 하지.”
“정철 때문에요? ”
“형제는 고경명이 지석동에 은행정을 짓고 머물렀을 때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는데, 아깝게 서른 살 전후에 죽고 말았지.”            
 “정철이 어찌했는데 형제가 목숨을 잃었지요?”
“자세한 것은 자네 스스로 알아봐.”

최 선생은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경 양천회 형제의 죽음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문인주는 얼핏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스가 도심을 빠져나가자 무등산은 윤곽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황사가 더 짙어졌는지 무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계속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등산을 찾아보기 위해 시선을 멀리 던졌다. 그러나 무등산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무등산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젊은 나이에 죽은 소쇄옹 양산보의 손자 양천경과 양천회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그는 소쇄원에 머무는 동안 무엇 때문에 형제가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그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였다.  
 
스무 하룻날 압보촌을 출발한 고경명은 증심사에서 첫 밤을, 그리고 다음날은 규봉암에서 유숙한 다음 스무나흘 날에 화순 적벽에 당도했다. 그들은 적벽에서 신제 최산두와 동복현감이었던 임억령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윤구 유성춘과 같이 호남삼걸이라 칭한 최산두가 기묘사화로 동복으로 유배를 당했을 때, 38세 엄억령이 그곳 현감이었다. 그는 동복에 부임하자마자 신제를 만나고 응취루에 올라 점필재의 운을 따서 시를 지었다. 임억령은 13세 연상인 최산두를 스승처럼 극진하게 예우하여 술자리를 같이하고 시를 지으면서 어울렸다. 고경명은 그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썼다.

<최사인 신제가 중종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이 고을로 정배되었는데 하루는 손님과 동반하여 달천으로부터 물의 원류를 더듬어 이 명승을 찾아내는데 이르렀다. 이에 남방 사람들이 비로소 적벽을 알게 되어 시인묵객의 노는 자취가 잇달게 되었으니 임석천이 명을 짓고 김하서가 시를 지어 드디어 남국의 명승지가 되었다.>

 최산두가 동복에 1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할 때 하서. 기대승. 김윤제. 김성원을 비롯하여 많은 시객들이 잇따라 동복에 가서 위로하고 시를 지었다. 화순적벽이라는 이름은 그 때 임억령이 지었다. 또한 현감인 임억령이 주도하여 화순적벽에서 뱃놀이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석천 선생님은 그 무렵 모친이 병환중이라서 해마다 허가를 받아 고향집에 내려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동복 현감으로 계실 때 어머니가 운명하시자 어머니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다네.”

고경명과 김성원이 말을 주고 받았다.
“석천 선생님은 동복현감을 그만 둔 후에도 지방에 내려오실 때마다 하서 선생님과 같이 신제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하십디다. 그 두 분은 신제 선생 만나러 동복에 가실 때는 꼭 소쇄원에서 주무셨지요.”
양자징이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석천과 하서 두 분이 아버지와 함께 소쇄원에서 술을 마시고 노닐다가 아침 일찍 동복으로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암턴, 두 선옹의 우정은 알아주어야해.”
 김성원은 두 어른을 선옹(仙翁)이라 일컬으며 마지막 성산에 왔을 때 석천의 시에 차운한 하서의 시를 읊었다.

                갈 곳이 있어 문을 나섰던 것인데
                빗나가 화양동에 들어왔구려
                시선이 이 사이에 깃들어 있어
                한 골짜기 한가한 구름이 끼었네
                뜰은 비어 비낀 해 밝게 비추고
                솔은 늙어 찬바람이 이네/ (중략) 
 
이 시에서 하서는 성산을 화양동에 비유하고 석천을 시선(詩仙)이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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