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곤충   최 영 숙

“담양 분들의 고운 심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광주에서 출퇴근하며 약 8년을 kt 담양지사에서 근무했는데, 근무하며 담양 분들의 인간미에 푹 빠졌다. 각종 매체의 발달로 시골다움을 잃어버린 곳이 많은데, 유독 담양은 시골 인심과 정감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런 담양이 좋았다. 퇴직 후에는 담양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광주에서 가까운 화순이나, 장성, 나주 등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담양만을 염두에 두었고, 월산면에 땅도 구입했다. 월산에 지인이 있어서도 아니고, 월산면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부동산중개인이 월산에 땅이 나왔다고 해서 앞뒤 재지 않고 덜컥 샀다. 주말농장 차원이라 생각하고 매입한 것이었다. 몇 년 후 남편이 34년의 직장 생활을 접자 평소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남편이 약간 주저했지만, 결국 월산으로 둥지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닐하우스 두 동을 임대하여 상추를 키웠다. 하지만 농사 경험이 없는 데다, 직장 생활에 잔뼈가 굵은 부부에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저녁이면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고, 아이고 하는 신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수입이고 뭐고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너무나 힘들어 다른 작물이 저절로 생각났다.

2012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라디오를 켜고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귀가 번쩍 열렸다. 출연자가 갈색거저리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출연자가 말하는 갈색거저리의 효과와 장점을 들으며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필’이 꽂힌 것이었다. 상추로 힘들어하던 시기라 막연한 기대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상추 재배를 포기하고 바로 곤충 사육을 계획했다.

당시만 해도 곤충 사육자가 많지 않아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농업진흥청에서 교육을 받았다. 농진청 교육은 이론 위주였다. 실제로 키운 분들의 사례를 듣고 싶어 선도 농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농가에서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았고 노하우도 알려주지 않았다.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을 반기지 않은 탓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정보를 수집해 준비를 마치고 농진청에서 갈색거저리를 분양받아 사육에 나섰다. 2013년 4월 무렵이었다.

▲갈색거저리의 상태를 체크하는 중

“이상한 벌레가 보였지만 그게 쌀벌레인 줄도 몰랐습니다. 갈색거저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먹이 주며 고이고이 길렀죠. 그런데 갈수록 유충 알이 줄어든 겁니다. 다른 농가에 물어봐도 별다른 대책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괜찮다고만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수상쩍어 농진청에 물어봤지요. 거기서 쌀벌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기른 것이었지요.”

그녀는 웃지 못 할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도 멘토가 없어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했다. 어설피 알면 경제적 손실이 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년 빈곤의 타파를 위해 열심히 해야지요.”

▲최영숙씨의 곤충농장

제 멘토를 할 수 있을 만큼 노하우를 쌓았다. 갈색거저리에 대해 물어오면 얼마든지 노하우를 전수해 줄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선뜻 권하지를 못한다. 아직 판로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식량이니 기능성 식품이니 하는 말에 혹해서 무작정 뛰어들었지만, 지금처럼 규모를 키우기까지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쳤다. 그런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귀농의 가장 큰 단점은 월수입이 일정치 않다는 것입니다. 노년기를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여유자금이 있거나, 연금이라도 넉넉해야 하는데 여유자금은 없고 국민연금도 한정되어 있어서 노년 빈곤이 우려되었습니다.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여섯 시 반이면 일과를 시작한다. 축사에 들러 환기를 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체크한다. 그리고 밀기울이나 상추 같은 먹이를 공급한다. 결코 힘든 일은 아니다. 여자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강도다. 그 점 때문에 곤충 사육에 나서기도 했다. 아무튼 상추를 기를 때와 비교하면 허드렛일을 하는 듯하다.
남은 시간에 텃밭을 가꾼다. 가족이 먹을 야채를 기르는 것도 큰 재미다. 가족이 먹을 생각에 농약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른 야채를 뜯어다 쌈을 즐긴다. 그리고 그런 야채를 또 다른 가족인 갈색거저리에게 먹이기도 한다.

그녀는 현재 82평의 축사에서 매월 1톤 전후의 갈색거저리를 생산한다. 호남지역에서는 곤충을 사육하는 농가가 드물기는 해도 최대 규모의 농가 중 하나다. 이렇게 생산 규모를 늘릴 수 있었던 건 부부가 부지런히 판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판매를 위해 직접 식품허가를 받아 판매에 나섰다. 지금까지는 단백질, 불포화지방산, 무기질 등의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려고 옹기에 구워 판매하는 전략 위주로 나갔다. 보기에는 약간의 혐오감이 있다 해도 소중한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갈색거저리 상품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갈색거저리 분말을 이용한 생국수를 시험 삼아 제조했다. 분말 가루를 만드는 기계가 진주기술원에 있어 진주까지 오갔다. 그런 분말로 생국수를 만들었다. 담양이 국수거리로 유명한데 단백질이 첨가된 건강 국수를 만들어 가능성을 타진해본 것이었다.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국수를 제조하려면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 중이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를 고려한 식품도 시험 삼아 만들어보았다. 이 또한 담양의 유명 식품에 접목했다. 담양은 국수 말고도 한과로 유명한데, 한과에 갈색거저리를 첨가했다. 한과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양이야 바로 식별할 순 없지만, 맛은 뛰어나다고 했다. 상품으로 개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나 투자가 문제였다. 자식 중 누군가가 사업을 물려받으면 좋겠는데, 나서는 자식이 없다. 투자를 해놓고 당대에서만 그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다.
지금까지 2억 정도를 투자했다. 농지는 이미 구입해놓았으니 포함되지 않고, 축사를 짓고 애벌레를 분양하는 데 쓰인 돈이 대부분이다. 곤충의 장점은 일이 쉽기도 하지만 사육 이후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충에서 애벌레를 직접 생산하니 애벌레 구입비용이 들지 않는다. 사료와 야채, 전기료 등이 지출의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도 갈색거저리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석이란 속담처럼, 갈색거저리가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농가에서는 의미가 없다. 대중화되어야 잘 팔릴 텐데 아직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곤충은 미래의 블루오션이라고들 한다.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미래가 언제나 올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여튼 지금까지 블루오션인 적은 없었다. 시도는 있지만 성과가 미미할 뿐이다.

대기업에서 라면에 첨가하는 시도도 있고, 제약회사에서 약품으로 개발하기도 한다. 실제로 중간 업자를 통해 대기업에 납품하기도 한다. 직접 기업에 납품하면 좋은데, 기업에서 원하는 양을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작목반 같은 단체가 있어 공동 대응하면 좋은데 그런 모임도 걸음마 단계다.

그런 현실을 극복하려면 프로의 기질을 발휘해야 하는데 아직은 천상의 농부다. 텔레비전에서 취재를 나온다 해서 극진히 대우했다. 모 대학에서 연구한다기에 성심성의껏 도와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제공했는데 논문이나, 사업계획서에 이름 한 글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농진청에서 수천만 원을 지원받은 것은 고맙기 그지없었고 큰 힘이 되었다.

“갈색거저리는 나의 힘.”

힘이라 하면 대부분 스테미너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갈색거저리가 정력제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고단백의 결정체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힘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노년기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늙을수록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나에게 갈색거저리가 있잖습니까? 그래서 갈색거저리는 저에게 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힘이 다할 때까지 갈색거지리와 함께 지낼 것이다. 앞으로 지낼 시간을 어림잡아보니 자식들하고 보낸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그래서 갈색거리는 또 하나의 가족과 같다. 그는 가족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귀농인 최영숙 연락처: 010-7300-7712)/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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