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둥, 나의 주춧돌    조 연 행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귀농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로열패밀리나 신의 직장에 근무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일한만큼 급여를 받는다. 또한 근무연수가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급여도 높다. 지위에 따라 책임은 정비례한다. 또한 책임은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급여를 많이 받으면 받은 만큼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는 말이다. 조연행씨는 중소기업에 근무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기획실에 근무하면서 설계, 관리, 면허, 세무, 회계, 노무, 총무,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관장했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도 없었다. 퇴근 후에는 접대까지 해야 하니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육체적 피로는 그래도 나았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호의가 비수가 되어 뒤통수를 겨누었다.

“급여에 차압이 들어올 수 있으니 일부는 현금으로 달라, 사대보험은 들지 않을 테니 그 돈을 급여로 달라, 각서를 쓸 테니 퇴직금을 급여에 포함해서 달라는 등 사원들의 부탁을 받으면 자세히 물어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아야 결정을 할 거 아닙니까? 사정이 딱하면 들어주곤 했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나중에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습니다. 대표는 강경 자세로 나오지, 저는 어떻게든 대표에게 피해를 가지 않게 해야지, 해결은 쉽지 않지,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귀농을 결심했다. 식물은 스트레스는 주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의중을 말하자 아내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을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냈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도 쉬었다. 따박따박 월급 받는 일이 없어지고, 세 아이의 학교 교육도 까마득한데 귀농이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내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아내 또한 남편의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귀농하기로 마음을 굳힌 그는 귀농지와 작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그보다 더 할까 싶은 마음에 초보자지만 농사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작물이나 할 수는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라 신중을 기했다.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정보를 탐색했다.

그러다 담양 ‘두리농원’까지 알게 되었다. 두리농원에서는 유기농으로 쌈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농원 사진과 설명이 그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 농원을 이용한 분들의 후기도 호평 일색이었다. 유기농 농법에 마음이 끌린 그는 두리농원을 직접 방문하여 대표와 상담했고, 퇴직하고 농원에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유기농법에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자 퇴직금을 털고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두리농원에서 관리 중인 비닐하우스 1,500평을 구입했다. 유기농 쌈채소의 전망이 밝다는 확신이 들어 거금을 투자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담양에 정착하게 되었다. 쌈채소를 재배하던 하우스라 매입 후 바로 수확했다.

“노동력 확보를 간과한 게 실수라면 실수였습니다.”

채소 수확은 인근 할머니들이 도맡았다. 쌈채소의 수확은 힘을 요하는 일이 아니고 고도의 숙련이 더 중요하다. 할머니들의 숙련된 손놀림은 젊은 사람보다 훨씬 능률이 높았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선호했다.
“할머니들이 너무 늙고, 돌아가시고 나니 일손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투입해봐야 일당이나 겨우 할 정도였어요.”
노동력 때문에 제대로 수확할 수 없었으니 돈이 될 턱이 없었다. 유기농 쌈채소의 낙관적인 전망 때문에 노동력 확보를 간과한 결과가 고스란히 그의 등에 지어졌다. 버거운 무게였다. 주말이면 자녀들까지 달라붙어 아내와 죽을 둥 살 둥 수확해도 웃자란 채소가 넘쳐났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쌈채소의 소비도 줄었다. 하우스 안에서 웃자란 채소는 나날이 늘었다. 쌈채소는 수확해서 장기간 보관해 놓을 수 없다. 저온 창고도 없었다. 그는 웃자란 쌈채소를 수확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어떤 분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고 일부러 대량으로 구매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소개도 하고 이용하라고 부탁까지 했어요. 맛을 보신 분들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같은 곳에 평가를 올리고 연락처를 남겼나 봐요. 언젠가부터 전혀 모른 분이 주문하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늘었습니다. 그러다 여러 업체에서 연락이 왔고, 지금까지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상품을 맛본 소비자들의 입소문으로 거래처는 급속도로 늘었다. 어떤 업체에서는 그가 생산한 것이라면 어떤 작물이라도 납품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만큼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인연을 맺은 소비자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 정성을 다했다. 상품을 포장하기 전에 혹시라도 품질이 좋지 않은 상품이 섞인 건 아닌지, 이물질이 섞인 건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거래하는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하지만 그는 쌈채소를 접어야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숙련된 노동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현실이 첫째고, 팔지 못해 따서 버리는 일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 둘째 이유였다.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두 번째 이유가 더 컸다. 정성들여 키운 작물을 버리는 심정은 수족이 잘린 것처럼 아팠다. 병충해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떨까 하고 노심초사하며 가꾸었던 노력이 무참히 짓밟힌 것 같았다. 버려진 상추 한 잎에 심장이 할퀴고, 청경채 한 잎에 기도가 막히고, 케일 한 잎에 뼈가 으스러지고, 근대 한 잎에 얼굴이 딸기우유처럼 빨개지고, 치콘 한 잎에 눈앞이 캄캄하고, 다채 한 잎에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고, 뉴그린 한 잎에 호흡이 가빴다. 주인을 잘못 만난 채소가 애꿎게 짓밟힌 듯해 죄책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는 다음 작물을 깊이 고민했다.

“여러 날 쌓인 돈이 유기농 때문에 한 번에 나가기도.”

유기농 제품은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이익을 제공하지만 농부에게는 엄청난 노력을 요구한다. 농약을 칠 수 없으니 병이 들면 한 작기는 꽝이나 다름없다. 병들지 않고 싱싱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지력이 중요하다. 또한 병충해에 대한 내성과 처치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는 황토를 이용하여 병충해를 퇴치하고, 발효 사료를 만들어 지력을 증진하고 작물의 내성을 키운다. 초기에는 부엽토나 한약재 찌꺼기를 퇴비로 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한약 찌꺼기는 물론 발효시켜 제조한 다양한 영양제를 첨가해주고 있으니 훨씬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러느라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가끔 통장을 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다양한 거래처에서 입금된 액수 때문이지요. 그런데요? 그렇게 여러 날 쌓인 돈이 한꺼번에 나가곤 합니다. 대부분 유기농법 때문입니다.”

▲부추 시설하우스 재배

“부추가 주춧돌이라면 토마토는 기둥입니다.”

지력 증진을 위해 투자를 많이 했으니 유기농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쌈채소를 대신할 소득 작물을 찾다 부추로 결정했다. 지력, 노동력, 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지인이 부추를 재배하는 것도 한몫했다. 여타 작물을 검토했지만 마땅한 멘토를 만나기가 여의치 않았다. 아직 새내기나 다름없는 그에게 멘토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더군다나 유기농업으로 경작하려 했으니 재배하고 싶은 작물의 멘토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점도 부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좋은 멘토를 만나 부추를 어렵지 않게 재배했다. 사실 어떤 작물이든 재배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판로가 문제다. 농산물시장에 내면 간단하겠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공판장에 내지 않았다. 때문에 농산물 시세를 잘 모른다.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공판장 가격이 많이 내렸으니 싸게 줄 수 없냐고. 그럴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경매가가 비싸다고 더 주신 분은 없거든요.”
그는 한 번 정한 가격은 시세와 관계없이 철저히 고수한다. 적정한 가격과 질 좋은 품질 때문에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가 심어졌다. 그가 생산한 부추 역시 주문이 빗발쳤다. 어떤 업체는 수확기가 끝나 휴지기에 접어들려고 해도 한 번만 더 보내달라고 사정까지 했다.

부추는 보통 11월에 수확을 시작에 4월 말이면 거지반 농사가 끝난다. 노동력과 투자 대비 부가가치도 상당하다. 부추는 시간 여유가 많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방울토마토까지 재배했다. 그가 두 작물을 재배한 건 일종의 보험이다. 대부분 농작물이 그렇듯 한 번 망치면 상당한 피해는 당연하고, 의욕마저 꺾이기 십상이다. 그는 유기농업으로 재배하니 어떤 병충해에, 어떤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불안 때문에 한 작물의 실패에도 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두 가지 작물을 경작한 것이었다.

▲방울토마토 선별 포장작업

“귀농 후 3년간은 돈을 못 벌고 거의 투자만 했습니다. 그러다 부추와 토마토로 재미를 좀 보았습니다. 그래서 부추는 제게 주춧돌과 같고, 토마토는 기둥이나 마찬가지랍니다.”
그의 농장 이름은 ‘조윤농장’이다. 아내의 성과 그의 성을 따라 이름 지었다. 이름에는 사람 성씨만 있으나 농장에는 개, 고양이, 닭도 있다. 그가 농장에다 동물을 기른 이유가 독특하다. 이런 동물을 기르는 목적은 무엇일까. 인생의 동반자? 아니다. 농장을 지켜주라고? 그것도 아니다. 좋아해서? 땡이다. 잡아먹으려고? 그 역시 정답이 아니다.
“농사가 끝나면 농장에 안 올 수 있잖아요? 그런 일을 방지하려고 동물을 키웁니다. 동물들 굶기면 안 되잖습니까? 밥을 주기 위해서라도 매일 나와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밥만 주고 가겠습니까? 당연히 농장을 돌아보게 되지요.”
그는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마감한다. 일찍 해가 뜨면 열두 시간을 넘게 일한다. 하루의 절반을 노동으로 보내니 몸이 축날 법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귀농을 후회하지 않는다.

“귀농해서 당뇨, 혈압, 스트레스가 사라졌어요. 그거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혼자 몸이라면 족하겠지만 세 자녀의 대학까지 마치려면 현재에 만족할 수 없다. 그는 또 다른 작물을 고민 중이다. 그가 선택할 다음 작물의 선정 기준은 무엇보다 단위면적 당 소득이다. 현재 1,500평 규모의 하우스를 경작 중인데, 하우스를 더 늘릴 생각보다 고소득 작물을 찾고 있다. 판로를 먼저 고민하는 농부보다 소득을 먼저 고려하는 농부가 된 조연행. 그의 말이라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거래처. 그가 생산한 제품이라면 끼워 팔기를 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단골들. 인생2모작의 주춧돌이자 기둥들이다.

흔히 주춧돌이나 기둥은 가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멀리, 저 멀리 서울이나 수도권에 존재한다. 거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연락했다. 인터넷 강국임을 피부로 느꼈다. 그렇다고 농장을 찾는 발길이 뜸한 건 아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네비게이션이 아니면 도무지 찾아올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트레스 때문에 귀농한 그는 요즘 새로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다름 아닌 사례 발표 때문이다. 선도농가랍시고 가끔 사례발표를 요청받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고, 말 주변도 그렇고, 농장 규모도 별로인데 발표를 요청하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귀한 시간 들여 강의 들으러 오셨을 분들에게 질 낮은 강의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올라간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직장 다닐 때 받았던 것과는 켜와 결이 다르다. 그때는 칙칙하고, 너저분하고, 화를 돋우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싱그럽고, 경험을 정리하고, 발전적인 것이다. 아무튼 번지르르한 성공사례가 아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 그는 무엇을 말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과거의 경험을 뒤적거리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귀농인 조연행 연락처 : 010-2609-9678)/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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