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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꾸다(9)문순태 작가

<첫 번째 꿈, 조광조의 죽음>제9화

조광조는 붓을 놓더니 손으로 양산보를 가리키며 가까이 불렀다. 양산보가 지싯지싯 다가가자 조광조는 자신이 쓴 절명시를 네 겹으로 접어 양산보에게 내밀었다.

“금부도사께 갖다드려라.”
조광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울림이 좋았다. 양산보는 절명시를 받아 금부도사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금부도사는 종이를 펼쳐 얼핏 살펴보더니 땅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양산보가 재빨리 주어서 여러 겹으로 접어 허리춤에 넣으며 스승의 눈치를 살폈다. 스승은 잠시 눈을 들어 다시 처연한 눈빛으로 연주산을 바라보았다.

“ 내가 죽거든 관을 엷게 만들어라. 관을 두껍게 만들면 먼 길 가기 어렵다. ”
조광조가 양산보 등 옆에 있던 제자들에게 당부 말을 하자 붉어진 제자들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렀다. 양산보는 통곡을 참으려고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쥐어 막았다.
“내가 이 집에서 신세를 진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이렇게 집을 더럽히게 되었으니 누를 끼치는구려.”
조광조는 마지막으로 집 주인 노파에게 말하고 나서 궁궐을 향해 네 번 절한 다음 독약 사발을 단숨에 들이켰다. 조광조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어금니를 앙당 문 채 잠시 상반신을 부르르 떨었을 뿐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괴로운 듯 몸부림치고 피를 토하면서도 몸을 뉘이지 않았다.

“이보시오, 도사.... 약이.... 남았으면... 더... 주시오.”
꼿꼿하게 앉은 채 거푸 피를 토하던 조광조가 부릅뜬 눈으로 금부도사를 쳐다보며 띄엄띄엄 소리를 질렀다. 금부도사가 약사발을 건네주자 조광조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잔뜩 목이 마른 들짐승이 물을 들이키듯 벌컥벌컥 마시더니 이내 비그르르 앞으로 쓰러졌다. 그는 견딜 수 없는 통증과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고쳐 잡으며 머리를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고 두 눈을 뜬 채 숨을 거두었다. 옆에 서 있던 학포가 두 어깨를 들먹이며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서야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중종 5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에 사지 벼슬에 오른 지 꼭 4년 만에 , 임금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조광조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지인과 제자들이 함께 오열했다. 양산보는 집 모퉁이 감나무 밑으로 가서 피가 나도록 주먹으로 감나무를 마구 치며 통곡했다. 그에게 정암 스승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그가 갈망하던 동경의 세계가 아니었다. 양산보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와 절망감으로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신도 스승을 따라 죽고만 싶었다. 바람이 다시 거칠어지더니 눈발이 살포시 조광조의 시신을 덮었다. 
 
문인주는 꿈속에서 지인과 제자들이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을 보았다. 임시로 안장하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이앙 쌍봉사 앞까지 운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광조가 사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광조의 아우인 조승조와 제자 성수침, 홍봉세, 이충건 등 친구와 제자들이 급히 내려왔다. 능주에서 쌍봉사 앞 중조산까지는 빈 몸으로 반나절 길이 못되었다. 그러나 이날 운구 길은 한나절이 더 걸렸다. 눈길 속에 세찬 바람을 맞아가며 운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평소 그를 존경하여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과 제자들은 고역을 마다하지 않고 관을 실은 소달구지 뒤를 따랐다. 발이 눈 속에 빠지고 손이 꽁꽁 얼었으나 아무도 이것을 개의치 않았다. 운구행렬 속에는 양산보는 물론 학포와 그의 어린 두 아들도 보였다. 양산보가 학포 당숙에게 어린 두 아우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두 아이들도 정암의 죽음을 잊지 말아야지. 정암의 죽음 길에 동행하는 것도 장차 아이들이 세상을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이야.”
학포는 그러면서 두 아이를 돌아보았다. 인근에서 온 많은 유생들도 침통한 얼굴로 뒤따랐다. 마을을 지날 때는 주민들이 동구까지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애도하였다. 
  
양산보는 배소를 나서면서부터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흐느꼈다. 눈발 속에 스승의 모습이 눈에 밟혀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한없이 자애로우면서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대쪽 같은 성품이면서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 해박하면서도 끝이 없는 배움의 열성,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 눈빛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비통함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문인주는 얼핏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본 장면들이 너무도 선명했다. 조광조가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면서도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머리를 북쪽으로 두르며 쓰러지는 장면이며,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양산보의 오열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제자들이 눈보라 속을 뚫고 스승의 시신을 운구하는 소달구지 뒤를 따르는 모습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문인주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다. 제월당 앞마당에 달빛이 화사하게 깔렸다. 고운 달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7월 보름날이니 자신의 생일이 아닌가.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달빛에 흥건히 젖은 윈림을 휘둘러보았다. 바람이 숨을 죽이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가득 넘쳤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는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혼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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