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놀자   윤 영 종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인생은 예기치 않게 흐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계획대로, 물 흐르듯 살 수 있다면 운명이란 단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담양으로 오게 된 것은 결코 운명이라 할 수 없다. 그는 어디에 있건 고향을 잊지 않았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하물며 동물인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살았던 굴 쪽으로 돌린다는데, 사람인들 오죽하겠는가. 서울에서 기공사 일을 접고 광주로 내려와 세차장을 한 것도 고향과 가깝기 때문이고, 용봉동에서 20년 넘게 세차장을 운영하면서도 늘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늘그막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인생을 설계했다.

그런 그가 당초 계획보다 일찍 귀농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세차장의 하락세다. 셀프세차장과 자동세차가 난립하다보니 세차장을 찾는 고객이 갈수록 줄었다. 붙들고 있어봐야 뻔했다. 그래서 서둘러 세차장을 정리했다. 그 다음은 아버지 때문이다. 세차장을 정리하고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저녁에 술 한 잔 하는데 형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형 말대로 다음날 병원에 급히 모시고 갔는데 췌장암 말기였다. 의사는 삼 개월을 예상했다. 남은 시간이라도 아버지와 살고 싶었다. 그는 서둘러 고향으로 들어갔다. 예상보다 빠른 귀농이었지만 어차피 귀농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귀농 전부터 나무에 투자했다. 돈이 모이는 족족 나무를 심었다. 가로수와 조경수로 흔히 쓰이는 느티나무, 이팝나무, 대왕참나무를 천 그루 넘게 심었다. 부모님 땅이었다. 주말이면 수시로 농장을 찾아 나무를 보살폈다.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 미리부터 투자해놓은 것이지요.”

그가 귀농하리란 걸 익히 알기에 아내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함께 귀농하지도 않았다. 농사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아직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애들 때문이었다. 아내는 광주에 살면서 애들을 돌보기로 했다.

아, 로니아, 아로니아, 아니로아, 아니로다.

아내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 그는 혼자서 할 만한 작물을 찾았다. 아내가 옆에서 거들어준다면 소득을 염두에 두고 작물을 선정할 텐데, 혼자서 해야 하니 무엇보다 혼자 재배 가능한 작목만을 찾아야 했다. 그런 그가 처음 선택한 작목이 아로니아였다. 식목만 하면 혼자서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초기에는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식목할 때와 수확할 때를 제외하면 혼자서도 능히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버거웠다. 수확 때문이었다. 아로니아를 재배한 농가가 늘어가자, 수확 철에 일손 구하기가 어려웠다.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이라 한 해 한 해 늙어가는 노동력일지라도 감지덕지인데, 거의 동시에 수확을 하다 보니 일손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싸더라도 밭뙈기로 넘겨야겠어요.”

그는 정말로 그랬으면 싶다. 헐값에라도 말이다. 하지만 임자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임자가 나타나지 않기보다는 그의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홍보가 덜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서울에서 기공사로 일할 때, 퇴근만 하면 집으로 달려가 책을 붙들었다. 보통 두 시까지 책을 읽다 잠에 들곤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권을 읽기도 했다. 그런 습성이 몸에 배어 지금도 저녁이면 집에 들어가 책부터 잡는다. 그러니 사람 만나는 일이 드물고, 밭뙈기로 사겠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때문에 그는 아로니아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수확을 걱정해야 하는 그는 아로니아를 아니로다로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아로니아를 등한시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만든 영농조합법인에 주주로 가입하여 가공에 신경 쓰고 있다. 그가 참여한 조합법인은 ‘흙을 사랑하는 농부들’이다. 법인에서, 그가 생산한 아로니아 가공품인, 분말과 즙은 우수한 품질과 맛 때문에 많은 이에게 호평 받는다.

“캣닢은 나의 장난감.”

▲무성한 캣닢

혼자서 할 수 있는 작물은 그에게 언제나 관심 대상이다. 그는 또 다른 작목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동생에게 받았다. 동생은 애완용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을 한다. 동생은 고양이가 먹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는 습성을 파악하여, 고양이 장난감을 만들어 납품한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캣닢’이다. 동생은 중국산 캣닢으로 고양이 장난감도 만들고, 건초를 납품하기도 한다. 캣닢에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향이 난다. 캣닢에는 신경을 진정시키는 성분이 있다는데 유독 고양이가 좋아한다.
“자기가 전량 소비할 거라며 동생이 캣닢을 권유했습니다.”
낯선 작목은 판로 개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판로가 확보되었으니 안심하고 재배할 만했다. 하지만 낯선 농산물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멘토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나름대로 연구하여 캣닢 재배에 뛰어들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법, 노하우가 없으니 노력하고 시험재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캣닢이 자꾸 죽었다. 캣닢이 죽은 자리에 땜빵하듯 캣닢을 심곤했다. 왜 그럴까. 노력 끝에 답을 찾았다. 뿌리가 물에 약했다. 물 빠짐이 좋지 않으면 뿌리가 금방 썩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캣닢 줄기

캣닢은 다년생 풀이다. 중국에서는 열매를 한약재로 쓴다. 통풍에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캣닢을 건초로만 생산한다. 1년에 두세 번 베어 말려 동생에게 보낸다. 중국산보다 색과 향이 뛰어나다며 동생이 좋아라 한다. 동생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캣닢 재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캣닢 밭에서 세 시간 넘게 일하다 보면 냄새에 취해 환각증세가 일기도 한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같고, 멍한 것도 같고, 구름 위에 떠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어르신들이 개는 바둑이로, 고양이는 나비라고 부르곤 했어요. 나비야 이리 오니라. 나비야 이리 오니라. 그래서 저는 고양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나비로 부를 때가 있어요. 나비는 물건을 이리저리 굴리며 놀잖아요? 고양이에게 캣닢은 인기 좋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지요. 캣닢은 저에게도 장난감 같아요.”

▲캣닢 분말

요즈막 그는 캣닢과 자주 어울린다. 캣닢을 증식하려고 삽목도 해보고, 휘묻이도 해보았다. 삽목은 대량 증식이 가능하지만 죽을 확률이 높았다. 또 하나의 가족처럼 돌보아야 하는 단점이 따른다. 그렇다고 노력 대비 정비례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반면 휘묻이는 번식량은 적으나 살 가능성이 높았다. 노지재배와 하우스 재배도 비교해 보았다. 노지에서의 관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비가 많이 오면 뿌리가 썩어서 죽고, 너무 오지 않으면 말라서 죽었다. 하우스는 물 관리가 관건이었다. 적당히 물을 공급하면 무럭무럭 자랐다. 그는 캣닢 옆에서 위안을 얻는다.

“여러 나무를 시험 재배 중입니다.”

여러 번 들먹였지만, 그는 혼자서 할 수 없다면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손 댈 수 없다. 어머니가 계시지만 연로하신 어머니께 일손을 거들라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은 아무리 초라해도 그 어떤 고급 식당에서 먹어본 진수성찬보다 낫다. 등 따시고 배부른 저녁은 전적으로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고, 힘이 된다. 어머니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작목을 찾았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개다래를 추천했다. 시범사업자로 선정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개다래를 심었다. 아로니아나 캣닢은 모두 자부담이었다. 개다래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다래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다래의 종족번 식 본능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꽃잎처럼 보이는 개다래

개다래는 수정을 위해 독특한 변신을 한다. 수정은 벌이 담당한다. 벌은 꽃을 찾고 꽃에 앉는다. 그런데 개다래꽃은 이파리 아래서 피기 때문에 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벌의 눈에 잘 띄어야 수정이 원활할 것이다. 개다래가 방법을 찾았다. 이파리를 하얗게 변색한 것이었다. 하얀 이파리를 꽃으로 보이게 하여 벌을 유인하기 위함일 것이다. 뇌 없는 식물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 개다래를 더 심고 싶은데 여분의 땅이 없다.

그는 또 다른 나무를 시험재배 중이다. 개암나무, 호포나무, 체리나무. 세 종류의 나무를 심어놓고 수시로 관찰한다. 나무의 특성과 재배 기술을 터득하고, 소득을 예상하여 수지타산이 나온다면 집중 재배할 계획이다.

“죽기 전까지 만 권은 읽어야지요.”

귀농 후 그의 일과는 불규칙적이다. 그의 농사는 매일매일 수확해야 하는 과채류가 아니고, 날마다 관리해야 하는 품종도 아니다.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넉넉하다. 귀농 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은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연속이었다.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간 쓸개 다 꺼내놓고 맞이해야 했다.

귀농하기 전 그의 취미는 등산과 독서였다. 주말이면 수시로 산에 올랐고, 집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책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육체적 활동은 등산 못지않았다. 농사로 지친 육신에 산을 오르며 부담을 얹어주기 싫었다. 그럴 기회가 있다 해도 차라리 광주 집에 가서 토끼 같은 아이들과 코알라 같은 아내와 부대끼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무튼 등산은 멀리한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독서는 다르다.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도 책을 가까이 한다.
“죽기 전까지 만 권은 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독서를 편식하지 않는다. 만화, 동화, 시, 수필 소설, 자기계발서, 교양서, 철학서, 전문서적, 인문학 서적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 하지만 단 한 분야, 무협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단 몇 페이지라도 읽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한 줄을 읽든, 한 페이지를 읽든, 읽다가 잠이 들더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져 행복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오천 권정도 읽었다.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읽은 게 아니고, 그냥 읽을 뿐이다. 좋아서 읽을 뿐이다. 뇌리에 저장하려고도 않는다. 읽고 나면 그뿐. 또 다른 책을 찾는다. 머리에 저장하지 않았으니 출력할 일도 없다. 출력해야 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앞으로 오천 권은 더 읽고 싶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건 운명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었다. 이제 그의 선택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 아로나아, 캣닢, 개다래를 이을 작물을 관찰하고 재배법을 숙지한다. 다음 작목이 개암나무가 될지 아니면 호포나무가 될지, 체리가 될지 현재로는 장담할 수 없다. 전혀 뜻밖의 작물을 재배할지도 모른다. 정말 예상치 못한 작물을 재배한다면 그건 운명일지도 모른다. (귀농인 윤영종 연락처 : 010-7638-5676)/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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