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의 꿈, 소쇄원의 그림자> 제77화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심해지자 율곡 이이가 동인의 영수 이발과 서인의 대표 정철을 불러 화해를 종용했으나 정철이 이발의 얼굴에 침을 뱉어 오히려 더 악화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지.”
“결국 호남지역 문벌의 패권싸움이 당파싸움이 되었고 이것을 임금이 부추긴 결과가 되었지 않아요.” 

“그렇다면 정여립사건은 조작된 거 아닙니까? ”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용공조작 사건이지요? ”
“역모사실을 인정하는 편과 조작설이라고 주장하는 편으로 갈라져 있지.”
“역모를 도모했다면 왜 싸워보지도 않고 죽도에서 자살을 했겠어요? ”
“타살설도 있잖아.”
“역모했다는 증거가 없어.”
“서인이 동인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어.”
“선조가 왕권강화를 위한 고도전략이 맞지요?
“호남의 동인과 서인의 각축전이 맞아.”    
“정여립 사건이 빌미가 된 기축옥사로 천명이 넘는 선비가 죽었다니...”
“그 기회에 사회비판 세력을 모두 쓸어버린 것이지.”
“주로 호남 사림이 많이 죽었으니 말하자면 조선판 광주사태였어.”
“기축옥사 이후로 호남을 반역의 땅이라고 하여 등용이 차단되기도 했지.”

학생들은 저들끼리 한마디씩 생각나는 대로 뱉어냈다. 문인주는 그들의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무엇보다 교수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정여립은 당시 대동세상 즉 평등세상을 꿈꾼 개혁적인 사람이야. 신채호 선생은 정여립을 봉건적 양반제도를 타파하려는 혁명가였다고 평하지 않았던가.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통솔력 강하고 머리가 명석한 인물이야. 처음에는 서인인 이율곡과 성혼의 문하에 있다가 동인이 되어, 서인의 영수인 박순과 성혼을 비판하기 시작했어. 그러자 스승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선조의 미움을 사서 관직에서 물러난 거야. 그러나 선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여립을 쫓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거야. 정여립은 과격파로 선조로서는 껄끄러운 존재였어.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주인이 있을 수 있느냐, 누구를 왕으로 한들 무슨 상관이냐’ 는 등 거침없이 말을 했지. 그 때 임금은 세력이 커진 동인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가 내일 가보기로 한 전북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를 만들어 활쏘기 모임을 가졌어. 그러자 황해도 관찰사 한준 등이 정여립이 군사를 일으켜 한양으로 진격하는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고발한 거였어. 선조는 심문책임자로 우의정 정언신을 임명했으나, 지지부진 진전을 보지 못했어. 이 때 양천경과 양천회 등이 중심이 되어 호남유생들의 상소가 올라간 거였지. 이 때 송강은 이발 등 동인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떠나 고향에 내려와 있었지. 양천경 형제의 상소가 들어간 날, 송강은 아들의 초상을 치르고 있던 중에, 서들러 한양으로 올라가 입궐하여 선조와 독대를 했다는 거야. 그리고 다음날 송강이 우의정이 되면서 위관으로서 정여립 사건을 본격적으로 심문하게 된 거지.” 

교수는 비교적 길게 정여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 송강이 좀 수상하지 않아요? 아들 장례를 치르다가, 양천경 형제의 상소 소식을 알고 서둘러 입궐한 것 말입니다. ”
“선조와 서인이 합작으로 놓은 덫에 정여립이 걸려들었고 동인들이 싹쓸이로 당한 거지요.”
“기축옥사로 아까운 사람들 많이 죽었지.”
교수는 두 학생의 말을 받아 한숨까지 길게 내쉬었다.      
“기축옥사로 이발의 세 형제와 팔순 노모와 어린 아들, 조카, 가노들까지 압슬형과 장살로 죽고 말았어.”
“압슬형이라는 거 얼마나 잔인한 거야. 널빤지 위에 날카로운 사기조각을 깔고 그 위에 모릅을 꿇린 후 무거운 동을 올리는 거야. 어쩔 때는 사람이 올라가서 힘껏 밟기도 한데, 최고 여섯 사람까지.”

그 말에 여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몸서리를 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위관인 정철은 이발 삼형제를 죽이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으나 선조가 직접 어명을 내려서 노모와 어린자식 조카들까지 모두 장살시키라고 했다지 않아.”
“다행히 귀덕이라는 여종이 자신의 아들을 이발의 둘째 아들과 바꿔치기를 해서 대가 끊기지는 않았다던데? ”
“그래도 그 후 광산 이 씨들은 밀양 이 씨로 행세하며 살았다고 해.”

대학생들은 문인주를 의식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의 화제는 선조의 붕당정치로 이어졌다. 정통성이 약한 선조는 서인과 동인을 번갈아가며 힘을 실어주었다가 ,다시 힘을 빼는 수법으로 왕권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선조의 그 같은 속내는 중종과도 닮은 점이 많았다. 왕권 기반이 약했던 중종 역시 훈구파와 사림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저, 해설사 아저씨,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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