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섬 외도   신 현 준

“시골을 동경했습니다.”

그는 광주광역시 봉선동에서 어학원을 운영했다. 그는 어학원에서 원장 겸 영어를 강의했다. 서울 강남처럼 학군이 좋은 지역이라 수강생이 제법 많았다. 학군이 좋은 곳이라 퇴직한 영어 교사들이 봉선동으로 몰렸다. 어지간한 건물에는 꼭 학원이 들어설 정도였다. 학원이 많으면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의 수강생을 갖은 회유로 빼갔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결국 그는 15년 동안 운영해오던 학원을 정리했다. 다시는 봉선동으로 오지 않을 생각에 건물마저 처분했다.

그가 다음으로 터를 잡은 곳은 북구의 모 지역이었다. 나름 학군이 좋을 거란 생각에 어학원을 열었지만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학구열이 봉선동보다 한참 부족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5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다. 기대를 안고 학원을 열었던 원장들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문을 닫곤 했다. 동종 업계 사람들은 그에게 5년을 버틴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느라 그동안 벌었던 돈을 깡그리 날렸다. 다시 봉선동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건물을 팔아버렸기에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그는 담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담양에 터를 잡은 건 오랜 발품의 결과였다. 시골을 동경해오던 그는 향후 정착지를 찾아 십수년 전부터 틈틈이 시골을 누볐다. 가까운 화순이나 장성, 나주와 영광 등 전라남도는 물론 전라북도 순창이나 고창 등을 다니며 터를 물색했다. 그러다 담양에 필이 꽂혔다. 산 좋고 물 좋은 담양이 여느 지역보다 맘에 들었다. 그는 삼인산 자락의 현 지역에 반해 조금씩 땅을 매입했다. 주말농장을 염두에 두고 매입한 것이었다. 그는 현재의 땅을 세 번에 걸쳐 완전히 사들였다. 연로하신 분의 땅이었는데, 오랫동안 묵혀놓아 잡초로 우거져 있었다.
“잡초 투성인 땅을 갈아엎어 야생화를 심었습니다.”

체험학습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어학원을 운영하던 경험 때문에 자연스럽게 체험장을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멘토가 없어 책으로 공부했고, 발아도 책을 참고로 했다. 강인한 잡초 때문에 얼마나 많이 호미질을 했는지 모른다. 호미질은 약과였다. 대나무가 야생화 밭으로 침범하면 대책이 없었다. 제초제를 뿌려 봐도 통하지 않았다. 필름을 깔면 될 거라기에 필름도 깔았다. 그래도 대나무가 올라왔다. 정말 질긴 생명력이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했다. 그는 죽순이 나오기 전에 뿌리를 파헤치려고 겨울임에도 삽질을 했다. 사람들이 오십 센티미터만 파도 될 거라기에 그 깊이로 팠지만, 뿌리는 더 깊이 뻗어 있었다. 뿌리를 완전히 없애려면 족히 70센티미터는 파야 했다. 손이 부르트는 등 장난이 아니었다. 고통을 참아가며 파다 보니 땅을 파는 요령이 생겼다. 땅도 결이 있는데, 결을 따라 파면 그나마 쉬웠다.

야생화를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잡초를 잡는데 삼 년이 걸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생화가 호환하면 일일이 다듬어야 모양이 잡혔다.
“풀을 뽑거나 모양 잡는 게 별로 표가 나지 않잖아요? 내가 힘들다 하면 사람들이 가끔 그래요? 겨우 이깟 일로 뭐가 그리 힘드냐고.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잔손이 정말 많이 가거든요.”

야생화를 돌보는 일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그래서 그는 뙤약볕을 마다 않고 야생화를 돌본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 일하다 보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바로 가지 못한다. 굳은 허리 때문에 의자나 소파에서 한참을 있다 화장실에 가곤 했다. 그래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외도에 온 것 같다.”

야생화를 체험하려는 고객은 주로 유치원생이었다. 날씨가 서늘한 봄이나 가을이면 유치원에서 단체로 견학 와서 체험하곤 했다. 순수한 아이들이라 꽃을 보고 좋아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이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해맑은 표정으로 꽃에 시선을 박았다. 짙은 원색의 꽃을 좋아하는 아이, 파스텔톤을 좋아하는 아이, 앙증맞은 인형에 시선을 붙박아 둔 아이, 꽃에 앉은 나비에게 더 호기심을 보인 아이.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에 인솔하신 선생님들과 원장님이 흐뭇해하셨다.

유치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체험장을 찾았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분과 블로그에서 알고 방문하신 분, 땅을 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방문하신 분도 있었다.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은 저절로 힐링이 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나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분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어떤 분은 거제도 앞의 섬 외도에 온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지체 높은 마나님이나 값비싼 옷을 입고 방문하신 어르신들은 가끔 가슴 아픈 말씀도 하셨다. 규모가 너무 작다거나, 옷에 먼지가 묻는다는 등의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맥이 풀렸다. 죄송한 마음에 얼른 차를 대접해도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달랐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친구들을 데려오고, 이웃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 분들은 체험이나 차를 마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눈요기로 끝내지 않고 체험장에서 재배한 허브나 캐모마일을 사가곤 했다. 무농약으로 재배하여 햇볕에 말린 제품을 알아보신 것이었다. 체험용으로 재배한 것이라 수확량이 많지 않은데, 늘 부족한 실정인데 그것 때문에 일부러 재방문한 사람들이 사지 못했을 때는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가끔 부동산중개업자가 체험장을 찾기도 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권장했다.
“카페 차리세요.”

이 좋은 공간에다 카페를 차리면 대박 날 거라고 권유하곤 했다. 그도 카페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앞을 보면 무등산이 뒤를 보면 야생화 밭이 보이는 곳에 건물을 지을까, 꽃밭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에 건물을 지을까. 이런저런 구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게 들어갈 자금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야외 카페를 권유받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자금 사정을 들은 방문객이 다른 제안도 했다. 굳이 돈을 들여 건물을 세우지 말고, 야생화 밭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방갈로나 정자나 좋겠지만 돈이 들어가니, 간이 정자를 지으면 될 거라고 했다. 그 정도는 손수 지을 수 있을 거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인문계 출신이다. 기계는 말할 것도 전기도 문외한이었다. 귀농 초기에는 자잘한 고장에도 기술자를 부르곤 했다. A/S를 마친 기사는 너무 어이없어 했다. 좀 심하다 싶어 다시는 이런 일로 부르지 말라고 따끔하게 말하는 분도 있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손수 할 수밖에 없었다. 전구를 갈고, 배선을 하고, 하수관을 묻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일은 할 수 있다. 반 농민이 된 것이다. 지금은 휴식공간 개념의 간단한 정자 정도는 자재와 연장이 있다면 손수 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생각처럼 그렇게 쉬워 보이진 않았다. 무등산과 병풍산 삼인산 추월산 등으로 둘러싸여 태풍 피해가 적은 담양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태풍이 휘몰아치면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비치파라솔을 두고 하면 되잖습니까?”
투자를 최소화하고,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만큼 탐나는 자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고 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알아보세요.”

레지던스란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숙식을 제공한 대가를 문화재단에서 지원한다고 했다. 공간이 좋아 입주를 희망한 작가들이 많겠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머물 공간이 없다. 좋은 제도를 알아도 활용할 수 없었다.
아무튼 다양한 충고에 고민 중이다. 통이 넓은 건물을 짓고도 싶고, 체험장까지 겸한 그럴듯한 건물을 짓고도 싶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고민인 것이다. 여유 자금만 있다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을 것이다. 연유 자금이 있다고 해도 남들과 같은 방식을 답습하지는 않겠지만, 자금이 없으니 그런 방법도 그림의 떡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는 팔아버린 봉선동 건물이 눈에 아른거리고 후회도 되었다. 스트레스 요인이라 건물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떠올려질 때가 있었다. 어학원을 경영해서 자력으로 샀던 건물이었다.

“야생화 옆에서 그림 그리는 아내를 꿈꾸다.”

광주에서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선배와는 자주 어울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선배를 만나 스트레스를 풀었다. 속말을 하고 싶을 때면 선배를 찾았다. 남다른 관계의 선배였다. 그 선배도 담양으로 귀농했다. 선배는 비닐하우스를 임대하여 딸기를 재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만치 않은 소득을 올렸다. 부부의 인건비는 충분히 건진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아내가 우리도 딸기를 재배하자고 하더군요.”

아내가 진심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딸기를 재배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고된 일인지 아내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입에 대한 압박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그의 귀농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얼마만큼 시골을 동경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농 몇 년이 지나자 소득 창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를 열심히 보조했다. 뜻밖에도 아내가 글씨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귀농하고서야 발견했다. 아내가 필요한 곳에 그림을 그려 넣고 팻말에 글씨를 직접 썼다. 그림 공부나 POP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제법 그럴싸했다. 아내는 그렇게 귀농에 익숙해졌다.

딸도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그가 귀농하면서 딸이 고민이었다. 교육이야 그가 지도하면 될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딸이 시골을 가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린 딸을 홀로 광주에 남겨둘 순 없었다. 딸을 설득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딸이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담양에 가면 강아지를 사주겠다는 했다. 그 말에 딸은 바로 좋다고 했다.

딸에게 한동안 강아지를 사주지 않았다. 강아지가 생긴 건 최근이었다. 이웃집 개가 강아지를 낳았다. 그분은 마당에 대바구를 뒤집어 그 안에 강아지를 넣어 돌로 눌러놓았다. 이를 안 딸이 강아지를 틈나는 대로 보러 다녔다. 어찌나 자주 다니던지, 주인에게 부탁해 강아지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 요즈막 딸은 강아지 보는 낙에 빠져있다.

딸이 불만을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이 무거웠다. 장차 딸에게 상당한 교육비가 들어갈 텐데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날로 걱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미안했다. 아내가 농담 삼아 딸기를 재배하자고 했을 때, 한길로 가야 성공한다고 가볍게 무시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아내에게 했던 말처럼 한 우물만을 팔 생각이다. 이 보 전진을 위해 지금은 일 보 후퇴했다.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열심히 했던 블로그 활동을 잠시 접었다. 블로그로 홍보하면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방문객이 증가한다는 것은 익히 경험했다. 그럼에도 블로그를 중단한 것은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방문한 분들이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단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방문객을 맞을 수 있는 기반은 조성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쉽지 않은 일이고, 큰돈으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야생화 체험장을 예쁘게 가꾸어 방문객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밭을 일군다. 또 그 시간이 마음 편하기도 하다. 가정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아내의 소질 계발을 위해서다. 체험장이 안정되어 아내가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무등산을 그리고, 삼인산을 그리고 마당에 우뚝 선 자두나무를 그렸으면 좋겠다. 양지꽃, 벌개미취, 무스카리, 타임, 구름국화 같은 야생화를 화폭에 담았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는 아내 옆으로 딸이 강아지를 데려와 잔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꿈꾼다. 그는 그 날을 앞당기려고 오늘도 밭을 일군다. 그가 일하는 소리에 야생화들이 활짝 웃는다. 미소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는 산이 있다. 삼인산. 사람인자 세 개개 겹친 형국 때문에 붙여진 이름 삼인산은 몽성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 기도를 하려고 전국의 명산을 떠돌다 무등산까지 와서 꿈을 꾸었다. 꿈에 삼각뿔 모양의 산이 나타났다. 삼인산이 꿈에 본 모양과 비슷했다. 그래서 몽성산이라 불렸단다. 이성계가 삼인산에서 제를 올리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는 전설이 깃든 산이다. 그만큼 기운이 좋고 세다는 말이다. 그런 삼인산이 미소 지으며 그를 품는다.
(귀농인 신현준 연락처 : 010-3627-9056)/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