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을 주제로 하는 가상 드라마는 대체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론을 갖는다. 만약 악(惡)이 선(善)을 이긴다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그냥두지 않을 뿐 아니라 또 사회교육 측면에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판사의 톡톡 튀는 판결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우리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뭔가 통쾌하고 명쾌하게 때려주는 느낌을 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떤 판사는 법(法)을 삼 수(水)변에 갈 거(去), 그저 흐르는 물처럼 가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재판을 하고 톡톡 튀는 재판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반면 드라마에서 톡톡 튀는 스타 판사는 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法)은 이 세상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한다.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법이 무섭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사회의 밑에 있는 사람이고 법이 우습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법은 공정한 판결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200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법치주의자 한비자(韓非子)가 쓴 책 세난(說難)에 여도지죄(餘桃之罪 먹고 남은 복숭아의 죄)가 나온다. 당시는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서 나름 잘났다는 제후들이 왕을 모신다는 핑계를 대고 서로 물어뜯고 모략과 모함,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였다. 요즘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며 들러대는 것과 비슷하였다. 이 시대에 위나라의 왕 위령공(衛靈公)의 총애를 받고 있던 미자하(彌子瑕)라는 어리고 잘생긴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밤에 미자하는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듣고 왕명(王命)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월형(발뒤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아야 할 죄를 왕은 효성이 지극하다며 넘어갔다. 또 다른 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과수원에서 노닐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주었다. 왕은 이때도 나를 사랑해서 맛있는 것을 안 먹고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미자하의 모습도 여린 빛을 잃어가고 왕의 총애도 엷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미자하가 왕에게 죄를 짓는 일이 벌어졌다. 미자하나 신하들은 예전처럼 그렇게 넘어가려니 했지마는 이번에는 왕의 판단이 달라졌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또 한 번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어느 순간 미자하에 대한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면서 이전에는 죄로 보지 않았던 일들까지 모두 죄가 되었다.

세월이 가면 애정과 증오도 바뀐다는 것을 세상 살아보면 다 안다. 한번 애정이 식으면 이전에 곱게 보았던 사람도 사사건건 미워 보인다. 법치주의자 한비자는 위의 고사를 들면서 신하의 지혜도 임금의 총애를 받을 때나 합당한 것이지 임금이 미워하면 좋은 지혜나 간언도 죄가 된다고 하였다.

요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도 애증이 있나보다. 어떤 사람은 도주의 우려가 명확히 없고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없는데도 구속이 되고 어떤 사람은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데도 구속 영장을 기각한다. 똑 같은 국가 돈을 사용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죄가 되고 어떤 사람은 죄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에서까지 톡톡 튀는 판사가 법의 정의를 통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나 보다. 역사에 여도지죄(餘桃之罪)의 사례가 기록되지 않으려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공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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