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석 주 원

▲석주원씨

“장인께서 귀농을 권유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3명의 자녀와 창원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종합 건물 관리인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월세를 내는 날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갖은 이유를 들먹이며 월세를 미루거나 면제받으려는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약속대로, 계약대로 내기만 하면 될 텐데, 계약서에 빤히 나와 있는데도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내지 않으려 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납부를 종용하고 또 다른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의 일상을 반복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석 서방, 창원에서 그렇게 계속 살 거여?”
수화기에서 장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뜬금없이 무슨 말씀인교?”
그는 장인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인의 다음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이쪽으로 이사 오소.”
장인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이사라니예?”
“남자가 그렇게 살면 발전이 없어! 언제 돈 벌어서 보란 듯 살 거여?”

개인 사업이 아니었으니 장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지만 무언가 대책을 세워놓고 이사를 하건 말건 할 게 아닌가. 그의 답답함을 장인이 눈치챘는지, 아니면 장인의 다음 수순인지 장인이 본론을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표고버섯을 한 번 해보소.”
“표고버섯이예? 돈도 없지만, 기술이 하나도 없는데예?”
그는 펄쩍 뛰었다. 그가 장인에게 털어놓은 말은 창원을 떠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정말로 표고버섯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니 장인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기술이야 배우면 되는 거 아니겄어? 내가 한 동은 지어줄 테니 잘 생각해보소.”
장인은 표고버섯 재배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듯했다. 남들이 하는데 왜 못하냐는 핀잔도 조금은 담겨 있었다. 장인이 그렇게 쉽게 판단한 것은 장인의 이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인은 새마을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회장을 역임하며 해외는 물론 전국의 많은 농가를 방문했다. 그러다가 표고버섯의 장래가 밝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위에게 권할 정도였으니 장인의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장인의 전화를 받고 그는 고민에 빠졌다. 연줄 하나 없는 타지로 옮기는 것도 문제고, 생판 모르는 일에 도전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아내는 친정 가까이 간다고 좋아했지만, 그는 낯선 환경과 직업에 도전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어머니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했다.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농부 출신이기에 농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반대했고, 자식들이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손사래를 쳐가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이사에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뻔한 월급쟁이 보다는 농사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전국에 웰빙 바람이 불었고, 3차산업 이후에 관한 뉴스를 언론사마다 쏟아내곤 했다. 일련의 흐름을 보니 표고버섯의 전망이 밝아 보였다. 그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어머니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낀 어머니가 드디어 허락했다.

“수북 형들께 거의 날마다 불려 다녔습니다.”

본격적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전, 그는 기술을 터득하려고 전국을 돌았다. 표고버섯 1세대 중 기술 좋기로 유명한 사람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그분들에게 하나라도 배울 욕심에 정성을 들였지만 기술을 터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갑게는 맞아 주었지만 막상 기술 전수를 요청하면 엉뚱한 이야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그를 돌려보내곤 했다.
“여수 돌산 쪽에서 농장을 하신 김상용 사장님은 달랐습니다. 제가 어떤 것을 묻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가 표고버섯을 재배한 경력이 있었다면 김 사장의 말을 그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재배 경험이 없으니 김 사장 말이 귓가를 맴돌다 나가버리곤 했다. 어쨌든 김 사장에게 배울 걸 배우고 나서 그는 또 다른 대가를 찾아 나섰다.
“함안에서 영농조합 법인은 운영하는 귀농인을 찾아갔습니다. 그 분도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표고버섯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습니다.”

▲죽향표고버섯 표지판

그는 이론서도 탐독했다. 국내에서 발간한 표고버섯에 관한 이론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책을 파고 살면서 그가 시간을 들여 찾아다닌 곳은 농업기술센터였다. 센터에서 표고버섯에 대한 지식을 보강하여 직접 재배에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귀농지는 담양 금성면이었다. 표고버섯 재배에 적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지는 장인이 마련해 주셨다. 그는 첫해에 1동을 지었다.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량으로 재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시험 삼아 재배해 본 것이었다.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2년째에 3동을 더 지었다. 3동에서 얻은 수확으로 그럭저럭 생계는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생계유지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젊은 나이에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 농장에 틀어박혀 지낼 수만은 없었다. 창원이라면 만날 사람도 많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담양에서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런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싫었다. 그는 광주의 한 조기축구에 가입했다. 교류를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제 말을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같은 나라인데 제 말을 마치 외국어처럼 어려워들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전라도 말이 외국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귀농 초기에는 언어 차이로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표준말을 쓰려고 했지만 급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곤 했다. 그때는 표준말로 천천히 되풀이해야 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교류를 위해 가입한 조기축구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 중 수북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형도 계셨다. 그 형은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비닐하우스를 지을 때 업체를 알선해주고, 일손을 거들고, 세참을 수시로 제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생,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가?”
“없는데요?”
“그람 우리 농장으로 오소.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세.”
그는 그렇게 점점 현지인과 가까워졌다. 수북 형 덕분에 형의 지인들을 알게 되었고, 그 지인들 덕분에 또 다른 사람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의를 다해 사람을 상대했고, 점점 현지인과 동화되었다. 그렇게 사람을 알게 되자 거의 밤마다 불려 다녔다. 다들 따뜻하게 그를 대해주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있습니다.”

▲1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8동이 된 표고버섯사

표고버섯에 대한 경험도 축적되고, 사람도 많이 사귀었으니 귀농과 표고버섯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 농장을 확장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 기술센터를 방문했다. 귀농창업자금 3억을 대출받아 표고버섯 재배사를 8동으로 늘렸다. 8동을 관리하려고 외국인도 고용했다. 4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1명 고용하여 본격적으로 재배에 들어갔다. 귀농 4년 차에 접어들 때였다.

야심차게 농장을 늘렸지만 예상했던 소득이 아닌 현상유지에도 급급했다. 배지 때문이었다.
“종균은 균이라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배지가 좋은지 나쁜지 눈으로는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는 중국산 배지를 주로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국산 배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었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장 대부분이 중국산 배지를 썼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두 동에서 발아가 되지 않았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입했는데 발아가 되지 않으니 환장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배지가 문제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랬다. 배지가 문제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더니, 관리 문제, 환경 문제, 물류 문제로 돌린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니 보상받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다른 농장주들과 연합하여 배지 생산을 계획했다.
“4년이 넘고 보니 어느 정도 배지를 식별하는 안목이 생기긴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중국산을 쓰다보면 같은 피해를 당해도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배지 전문가를 중국에서 모셔왔습니다. 중국은 표고버섯 재배 역사가 수백 년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수십 년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기술적으로 중국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중국은 하루에 거의 하나씩 종균을 생산합니다. 그런 기술을 우리가 도입하려고 한 것이지요.”

중국에서 기술자를 불러들였음에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중국과 한국의 미세한 환경 차이가 시행착오를 불러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좋은 배지가 생산되었다. 비록 많은 양이 생산되지 않아 조합원들이 나눠 쓰기에도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농장에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질 좋은 배지 공급이 목표.”

표고버섯과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좋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에서 살다보니 저절로 건강해졌다. 그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표고버섯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표고버섯으로 제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표고버섯은 저의 터닝 포인트이며,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표고버섯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는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표고를 위해 직접 판로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공판장에 주로 냈지만, 그의 상품성을 알아본 중매인이 거래처를 연결해 주었다. 덕분에 농협하나로마트나 GS마트 같은 중대형 마트에 납품할 수 있었다. 그가 열성을 다한 결과일 터였다.

▲수시로 버섯사를 살피는 석주원씨

그의 열성은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인정했다. 기술센터에서 그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될 수 있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발 벗고 도와주었다. 그런 탓에 2억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베풀기도 해야지요.”
그가 다른 분에게 베풀려고 하는 것은 질 좋은 종균이다. 아직 중국산에 의지하는 농가가 많은데 불량 배지로 인한 피해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 그러니 질 좋은 배지를 대량으로 생산해 중국산보다 싸게 공급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법인을 구성 중이다. 배지 공장을 설립할 구상도 하고 있다. 그 날을 앞당기려고 휴지기인 여름인데도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귀농인 석주원 연락처 : 010-7142-2622)/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