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같은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단풍도 아직 물들지 않고 들녘의 벼들도 아직은 본연의 황금빛을 띄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늘의 둥근 보름달은 그래도 한가위만 같아라고 휘영청 그 자태를 뽐냈다.

아들내외가 온다고 금쪽같은 손자들이 온다고 금년은 물가가 유난히 비쌌지만 그래도 과일도 사고 고기도 사서 한상 가득히 차려내는 마음이 기쁘기 한량없다.

또랑또랑한 손자들에게 반가운 마음에 뭐라고 할까. 공부 잘해라, 건강해라,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 뭐 이 정도 수준의 덕담에 멋진 장난감을 안겨주는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고기반찬이 풍성한 추석상을 바라보면서 아득한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추석이 오면 푸짐한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했다. 냄새 따라 기웃거리다가 전 한쪽도 얻어먹고 부침개도 얻어먹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혼이 난적이 있었다. 왜 얻어먹고 다니느냐,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아무리 가난해도 부모님은 배고픔을 참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는 20년 전 우리는 뜻하지 않은 IMF를 겪었다. 이전 정부가 뭘 잘못해서 국가 경제가 이렇게 되었냐고 탓하기 전에 김대중 대통령의 호소에 온 국민들이 금 모으기를 통해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국가 부도사태를 해결해 냈다. 그때 우리는 남에게 그 탓을 돌리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회사가 문을 닫았어도 비록 눈물을 흘렸지만 언젠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 갈 것이라 믿었다. 가난했던 시절을 극복했듯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당당히 일어났다.

추석 시장을 보니 물가가 많이 올랐다. 나라 경제상태가 안 좋다고 하지만 금년에도 여전히 추석 고속도로는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으로 붐볐고 공항 역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 세대들의 분위기는 그때처럼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 같지가 않다.

그동안 우리는 내 자식들에게 최고가 되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그러나 남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강조하지 않았다. 공부 잘한다는 소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용돈을 넉넉히 챙겨주면서 키웠다. 내가 고생했던 시절을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식들을 고생시키며 키우지 않았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살아오면서 막상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런 정신을 가르치지 못했다. 고생 안 하고 큰 아이가, 공부 만 잘한 아이가, 막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에게 뭐라고 조언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에서 17위로 하락하는 경제 상황이 얼마나 더 하락할지 모르지만 서구의 선진국들처럼 어려움에 닥칠수록 국가 지도자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일어서고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강한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얻어먹지 마라,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이런 말을 하면서 매를 들 수는 없지만 다음 세대를 사랑한다면 열심히 일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가족과 함께 모여 즐기는 풍성한 추석이지만 마음 한 구석엔 곧 겨울 찬바람이 불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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