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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담양천년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죽녹원을 지키는 장인들(4)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8.12.0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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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 시가문화촌 광풍각 김대석 부채 명인
10년째 부채 체험봉사로 담양홍보대사 역할 ‘톡톡’

▲김대석 부채장
▲죽녹원 광풍각

“부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죽녹원 시가문화촌 광풍각에서 관광객들의 부채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 이해와 담양부채의 멋과 풍류를 오롯이 느끼도록 봉사하면서 담양홍보를 위해 10년째 재능기부에 나서고 있는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부채 명인(제48-1호 접선장)을 만나보았다.

김대석 부채 명인은 1948년 담양읍 만성리에서 태어났다.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7대째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김 명인의 집안은 대대로 부채를 만들었기에 명인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부채 제작에 뛰어들었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는 뒷전이고 부채 제작을 도우는 일에 매진했다. 집에서 인부 10여명을 데리고 부채를 제작했으니 생계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누나와 동생들은 부채보다 공부를 선택해 모두 대학에 들어갔지만 김 명인만 부채를 이어받은 셈이었다.
가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뛰어들었고, 부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70이 넘었지만 아직도 부채 만드는 일이 즐겁기 그지없다.
 
요즘은 중국산 부채가 난무한다.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유지선, 춤출 때 사용하는 무용선,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무당선도 중국산이 활개를 친다. 하지만 진짜 큰굿을 할 때는 김 명인의 부채가 사용된다. 남사당패들이 쓰는 줄타기용 부채도 명인이 공급한다. 최근에는 외국의 귀빈에게 그의 부채가 자주 선물로 제공되기도 한다. 전주 합죽선은 가격이 나가지만 그의 부채는 저렴한 편이다. 합죽선이 선비들이 주로 사용한 부채라면 그가 제작한 부채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부채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부채가 선물로 호평 받는 이유는 잘 펴지고 잘 개지기 때문이다. 합죽선은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그 점이 단점이다.
중국산이 난무하다 해도 소량 주문은 중국에 의뢰할 수 없으니 그에게 주문이 밀린다. 흔히 말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셈이다. 우리 문화재가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런 시대니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큰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팔잖아요? 그런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 그러니 이해하고 사는 거죠.”

김대석 명인은 일반인들에게도 부채를 자주 만들어주곤 했다. 신문에 기사가 나면 기사를 오려 부채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의 부채를 받은 사람들은 정말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흡족해하곤 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부채이고, 자기 얼굴과 기사가 부채에 담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 누군지 몰라도 신문사에서 주소를 알아내 택배로 보내주곤 했다.
“지금은 대통령 사진을 모으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14컷 정도 모았는데, 한 50컷 정도 되면 그걸 부채에 담아 청와대에다 전시하라고 기증하고 싶어요.”

▲김대석 명인의 부채작

軍 장성들이 예우하는 김대석 명인

김대석 명인은 부채 홍보에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3년 전부터 신경을 쓰는 곳은 군부대다. 얼마전에도 논산훈련소 연무갤러리에서 부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장에 사단장과 참모장이 들렀다. 그분들은 처음으로 우리 문화, 우리 부채를 알았다고 했다. 전시회 때문에 사단장과 연대장들에게 지극한 예우를 받았다.
미군 사령부가 용산에서 평택으로 옮길 때 대부분 물건은 가져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채는 유일하게 평택 사령부로 옮겨졌다. 특별한 사연이 담긴 부채였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아름다운 노래 항상 간직하며, 매화는 한 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함부로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즈러져도 본 모습을 잃지 않으며, 버드나무 가지는 백 번을 꺾어도 새 가지가 나온다는 신흠의 시인데 그 글귀를 부채에 새겨달라고 모 장군이 보내왔었다. 박인수 훈장에게 부탁해 글을 썼다. 군인 정신과 민족성을 잃지 말라는 장군의 취지가 미군 사령부에도 통한 것이었다.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다.”

그는 8년 전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한 결과는 다양한 상으로도 보상 받았다. 담양군민의 상 본상, 자랑스러운 전남도민의 상, 문화유산보호 대통령 표창,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등 2년에 한 번 꼴로 수상했다. 누님과 형들이 대학을 나왔지만 그처럼 수상 경력이 화려한 가족은 없다.
대한민국공예대전 심사위원, 전라남도공예전 심사위원, 담양군공예전 심사위원, 황실공예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심사를 사양한다.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교수인데다 50∼60대가 대부분인데, 그만 70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나이 차이도 많고, 후진들이 심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금년부터 접었습니다.”
김 명인은 지금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아들이 한 명 있는데 24세의 대학생이다. 현재 기술을 전수 받으려고 연마하고 있다. 제자 장석원도 전수 장학생이다. 그러니까 전수자는 가족 1명 외부인 1명이다. 대개 가족이 전수받는 풍토지만 그는 외부인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 둘 중 누구라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과 서로 경쟁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김대석 명인은 6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해 하루 10시간 이상은 일한다.
하지만 주문이 밀리면 그보다 많이 일에 매달린다. 집에 작업장과 전시장이 있다. 부채 특성 상 전시장과 판매장이 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재 창고는 커야한다. 자재는 한꺼번에 구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재는 소량 판매를 않는다. 종이도 한 롤을 사야만이 구입이 가능하다. 한 롤이면 3년은 족히 사용할 수 있다. 대나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자재창고가 커야한다. 그의 큰 창고에는 부채 재로들로 가득하다.

“체험관 이나 전수관을 짓는 게 남은 꿈이지요”

김대석 명인의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전라남도에서 얼마전부터 동영상을 제작중이다. 6일간이나 촬영을 했는데 요약해서 24분짜리 영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심의위원이신데 부채가 이렇게까지 복잡한 줄 몰랐답니다. 분야별로 나눠 3분 정도의 문화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심의위원들 말처럼 그렇게 되길 바란다. 젊은이들이 배워서 문화재가 되어 자기 이름으로 판매한다면 충분히 보람을 느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전통 분야는 판매가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관공서에서 선물 배포용으로 구입한다면 젊은이들이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부채체험


전수관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조립식건물을 100여평 지어 판매장은 물론 체험관으로도 활용하고 넓은 곳에서 전수하는 게 김 명인의 남은 꿈이다. 부지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 현재 집이 800평 정도 되고 주차장도 넓어 건물을 들이고 싶은데 아직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만만찮은 자금 때문이다.

담양부채,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출간할 계획

지금까지 써 놓은 원고가 있지만 대충 썼기 때문에 보다 자세히 써서 기록으로도 남기고 판매도 하고 싶다. 체계적으로 다듬고 보완하여 책을 보면 누구나 부채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김 명인의 마지막 바람이다.
하지만 그에게 부채를 만드는 재주 만큼의 글재주는 없다. 여건이 되면, 전문가에게 의뢰해 맡길 요량이다. 부채는 순수 우리말이다. 그러니 중국산이 아닌 우리 부채가 도처에 넘쳐나길 바라며 오늘도 김대석 명인은 우리 고유의 전통부채, 그리고 담양의 부채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강성오 문화전문기자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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