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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담양천년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죽녹원을 지키는 장인들(5)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9.01.0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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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그림 익혀 ‘가훈써주기’ 재능기부로 봉사

▲죽피화를 창안한 김남기 화백
▲면앙정

“아들 때문에 가훈 써주기를 시작했습니다.”

죽녹원 시가문화촌 면앙정에서 ‘가훈써주기’ 봉사에 나서고 있는 종산 김남기 화백을 만나보았다. 김 화백은 공직생활중에 틈틈이 배우고 익혔던 서예와 그림(남종화)이 어느덧 작가로까지 발전하게 되자, 그 재능을 타인들에게 봉사하고자 담양의 관광명소 죽녹원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종산 김남기 화백은 서예를 남달리 즐겼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붓을 들기 전에 그는 옆에서 먹을 갈곤 했다. 그런 탓에 서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되자 무엇보다 서예를 배우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행초서의 대가로 알려진 남재 송전석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웠다. 서예를 배우며 그림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선생의 수제자가 세운 연진미술원과 장강 김인화 선생, 석운 김재일 선생에게 문인화와 한국화를 배웠다.

스승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지만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친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스스로 가열찬 노력을 하게 이끄신 분은 석운 김재일 선생이다. 선생은 그에게 자연이 스승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자연이 스승이니 사람에게 모든 걸 배우려하지 말고, 자연을 답사하고, 겪어보고, 그려보라고 했다. 자연을 답사하려면 그만큼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틈만 나면 자연을 찾아, 글과 그림에 담았다.

그의 노력과 솜씨를 가상히 여긴 남재 선생이 그에게 호를 하사했다. 여천 시청에 근무할 때였다. 종산(鍾山). “한바탕 호탕한 소리를 지르니 음침하던 골짜기에 따뜻한 기운이 돌더라.” 남재 선생이 호에 담긴 의미를 그렇게 부여했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위해 재능을 발휘하라는 당부로 받아들였다. 그는 선생의 뜻을 한시도 잊지 않고 문인화를 배우는데 게으름피지 않았다. 40여년 전에 시작한 그는 이제 어엿한 궤도에 올라섰다.

그는 호에 담긴 당부처럼 재능을 기부했다. 그 중 하나가 가훈 써주기다. 그가 가훈 써주기를 시작한 동기는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 둘이 있는데, 중학생이 되자 애들 방에 가훈을 써주었어요. ‘나는 할 수 있다. 기필코 해내고야 만다.’는 글을 써서 방에 걸어두고 자주 보게 했지요. 자주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갖기를 바란 거죠. 그런데 큰 아들이 입대해 논산 훈련소로 면회를 갔는데 내무반 관물대에다 아들이 써 놓은 그 글을 보았답니다. 어려서부터 봐 온 글인데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때 가훈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고, 가훈을 써주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재능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는 가훈을 써주려고 각종 행사장을 찾았다. 광주에서 열린 축제는 물론 담양에서 열렸던 한국대나무축제장이나 대나무박물관에서도 가훈을 써주곤 했다. 가훈뿐만 아니라 사군자와 매화, 목련, 연꽃, 목단 등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각종 공모전에 응모하여 수상했다. 전국공무원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문인화대전 특선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그는 관전작가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관전작가란 관에서 인정한 작가를 의미한다. 관전작가가 되려면 해당 공모전에서 10회 이상 수상해야 하고,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었야 한다. 그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 기관에서 인정하는 관전작가가 되었고, 5년 후에는 초대작가로서 광주시미술대전과 전라남도미술대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고, 한국미술협회, 한국서예협회, 한국문인화협회, 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문학예술가협회(시인)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네 자리에서 꽃을 피우라.”

“제 좌우명은 네 자리에서 꽃을 피우라입니다. 내 자리가 아닙니다. 어떤 직장이든, 어떤 직업이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경지에 도달하라는 의미입니다. 꽃을 피우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것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해보려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화선지에 그리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부채나 창문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물감만 사용한 게 아니었다. 진흙, 아크릴, 야광 등도 사용했다. 수묵을 기본으로 하되 전통 문인화에 만족하지 않고 유를 창조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발하다거나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화단에서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일으키는 비전 있는 작가로 그를 평하곤 했다.

“문인화는 동반자입니다.”

종산 선생이 가훈 써주기 봉사에 나선지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와 공로패를 여러 번 받았지만 수상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가훈을 받아든 사람들이 건넨 표정이었다.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고마움을 전할 때면 더없이 큰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들을 위해 그는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똑 같은 가훈을 써주고, 똑 같은 서화를 그려줄 순 없잖아요? 매번 다르게 써야 하고, 가슴을 울리지 않는 글귀를 써 줄 수도 없으니 지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논어, 맹자, 사서삼경 등을 읽고 좋은 글을 가슴에 담습니다.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써주곤 합니다. 직장 다니면서 주경야독으로 익힌 서예, 그림 작업이 몸에 배었습니다.”

밤을 책과 함께 지낸 시간만큼 그의 내면도 살이 붙었다. 수백 년 전의 책을 주로 읽지만 그의 정서 함양에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좌우명처럼 그는 그런 가르침 속에서 또 다른 것을 창조했다. 시인이나 문호들의 문장을 오랫동안 써 주다 보니 저절로 체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스스로도 시를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서예가이자, 화가이며, 시인인 셈이다.
“하지만 저는 문인화가로 불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문인화는 저의 동반자나 마찬가지거든요. 40여 년을 함께 했으니 아내와 지낸 시간보다 많지 않겠습니까?”
그는 문인화가로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교훈을 선사해왔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죽피화를 홍보할 생각입니다.”

▲문인화 체험

그는 4월부터 10월까지 주말이면 죽녹원 내의 면앙정에서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죽녹원 후문 쪽에 담양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정자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중 하나인 면앙정에 둥지를 틈과 동시에 시가문화를 재현해놓은 7개의 정자를 그려 자료화 했다. 또한 면앙정에서 방문객을 상대로 시, 소화 등 인문학 체험을 실시한다.  그런 그가 요즘은 죽피화에 푹 빠져있다. 죽피화란 죽순 껍질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죽순이 대나무로 성장하기까지 길어야 달포쯤 걸린다. 죽순을 감싸고 있는 죽피는 죽순의 성장이 끝나면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 과거에는 그렇게 떨어진 죽피로 바구니, 석작, 광주리, 방석 등을 만드는데 활용했지만 현재는 쓰임이 극히 미미하다. 냄비 받침대를 만들거나 호기심 많고 장난기 많은 아이들에게 부채로 쓰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가 죽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생들 때문이었다.

지난 6월이었다. 대숲 바닥에 나뒹구는 죽피를 주워 부채로 쓰다가 버린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땅에 나뒹구는 죽피를 보고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피를 주워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죽피가 물감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죽피에 그림을 그릴 방법을 고안했다. 죽피를 다리고, 압착하고, 혼합재료를 써서 색칠을 할 수 있게 테스트했다. 3개월의 노력 끝에 드디어 죽피에 색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그런 과정을 9월에 특허청에 특허출원하여 10월에 특허 승인이 났다. 3개월의 연구가 빛을 본 것이었다.

“도전 정신을 인정받았으니 사비를 들여서라도 죽피화를 홍보하고 보급하도록 다각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포부는 평생 붓을 놓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특히 어린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게 재능을 기부할 것이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빠져 사는 학생들의 메마른 정서에 감성을 불어넣고 문학과 그림의 향기를 제공할 것이다. 몇 글자 되지 않은 가훈이라도 인성 교육에 도움이 될 테니 보다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써서 학생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그가 밤새 탐독한 글의 일부와 자연의 일부가 죽피화에 멋스럽게 재현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그는 이제도 오늘도 재능을 갈고 닦는다.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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