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광장 기고
담양뉴스 창간기념 기획연재(소설)/소쇄원에서 꿈을 꾸다(91)문순태 작가

<여덟 번째의 꿈, 소쇄원의 그림자> 제91화

자징과 자정 형제는 아버지 생신날보다 사흘 앞당겨 칠석날 모임을 갖기로 하고, 송순, 임억령, 김인후, 양응정, 김윤제, 외에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정철, 조희문, 박광전,조헌, 윤인서, 백광훈 등 자징. 자정과 동문수학하던 친구와 후배들, 그리고 창평 근방의 젊은 선비들을 초청했다. 칠석까지는 이제 스무날 남짓 남았다.

 그날 밤,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다. 양산보는 젊었을 때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잠을 제대로 잘 이루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뒤척이는 버릇이 있었다. 밤늦도록 제월당에 들어앉아 기름심지 불을 켜 놓고 주무숙의 태극도설을 펼쳐들었으나 자꾸만 마음이 산만하게 흩어졌다. 요즈막 심신이 쇠약해졌는지 몸이 무거워지고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월산을 펼쳐들고 뜨락으로 내려가 오랫동안 꽃이 만발한 자미화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흥건하게 젖은 자미화는 햇볕 속에서보다 더 은근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칠석날 새벽, 양산보는 닭이 첫 홰를 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그는  여명의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소쇄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면앙정 형님은 달포 전 귀향했을 때 기촌으로 찾아가서 만났으나, 하서 얼굴을 못 본 지는 어언 2년이나 되었다. 점암촌에 내려가 첫 봄을 맞았을 때, 배롱꽃이 보고 싶어 왔노라면서 한 번 다녀간 후, 장성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들르지 않았다. 2년 전 소쇄원에 왔을 때, 배롱꽃나무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하서는 “언진 형님이 좋아하시는 자미화를 보니, 돌아가신 형수님 생각이 나는구려.” 하고 탄식했다.

그날 양산보는 하서와 함께 뜰에서 딴 복숭아를 안주삼아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하서는 소쇄원에 자주 들러 물고기도 자기를 알아볼 정도라고 농말을 할 정도였는데, 한동안 발걸음이 뜸해진 것은 일찍 세상을 떠난 둘째 딸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 하서는 소쇄원에 올 때마다 농으로 여러 가지 핑계를 말하곤 했었다. 매화꽃이 필 때면 매화꽃이 보고 싶다고 왔고, 여름에는 배롱꽃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소쇄원 대나무 서걱이는 소리, 비 온 뒤에는 소쇄원 개울물 소리, 가을날 보름이면 달빛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보고 싶어 왔노라고 했다.    

양산보가 화순 송천을 못 본 지도 까마득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제백사하고 허위단심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17세에 창암촌으로 돌아온 후로 단 한 번도 먼 길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 병을 고치기 위해 종이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땅만 내려다보고 나주에 다녀온 것이 가장 먼 출행이었다. 얼굴 드러내 놓고 세상 속으로 발걸음 내딛은 것은 기껏해야 면앙정 형님을 만나러 반나절 길인 기촌에 몇차례 다녀왔던 것과, 아버지 시묘살이 할 때 처가 마을인 석저촌 옆 배재까지 갔을 뿐이다. 33년 동안 두 눈 뜨고 하늘 우러르며 증암천 물줄기 밖으로 나가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행여 마음이 흔들리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다. 특히 권세 있는 사람은 되도록 만나지 않았다. 창평 현령 이수가 관아에 놀러오라는 기별을 여러 차례 보내왔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양산보가 끝내 출행하지 않자 이수가 자주 찾아오곤 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