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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2)대나무 공예가 황미경

솜씨있는 죽세공예 기술은 아버지의 영향
신개념 대나무공예로 품격높은 상품화 기여

황미경 대나무공예가는 어려서부터 죽세공예를 접했다. 그래서인지 성장하고 결혼해서 외지에서 생활하다 가족과 함께 몇 년전 고향에 돌아와서도 옛 죽세공예에 열정과 관심을 갖고 새로 대나무공예를 시작, 지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좋은 솜씨와 기술을 전수하며 대나무공예에 심취하고 있다.

▲황미경

  “아버지 제자에게 전수받다.”

주변 환경이나 가정환경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맹자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 묘지와 시장 근처를 못 마땅히 여기고 서당 부근으로 이사한 탓에 맹자 같은 위대한 인물이 탄생했는지 모른다.
담양읍 양각리 출신인 황미경 공예가도 유년시절의 환경이 지금의 그녀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아버지가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것을 숱하게 보았고, 가업이니 일손을 거들며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 만큼 대나무는 그녀에게 친숙한 재료였다. 친숙했지만 지긋지긋했다. 담양에서 등하교하며 광주여상을 다녔는데 책보다 대나무와 씨름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책 대신 대나무를 끼고 보냈던 시간이 많았기에 공부에 대한 미련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50이 넘은 그녀는 올해 조선대 미술 대학원에서 미술심리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그녀가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은 것은 심리 쪽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우울증과 빈 둥지 증후군을 앓은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빈 둥지 증후군은 마치 텅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는 증상이다. 중년의 가정주부가 정체성에 회의를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인데, 정체성에 회의를 품은 그녀는 자주 자아를 발견하려고 했다. 자아를 찾으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늦은 나이에 새로 배워서 하기보다 익숙한 것을 찾았다. 그러다 대나무공예를 떠올렸다. 
 
담양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도 하고 대나무공예도 배울 겸 남편과 아들을 설득해 광주에서 담양으로 귀촌했다. 당시 남편이 KT에 다녔는데 직장에서 명퇴 바람이 불었다. 남편이 명퇴 후를 대비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남편에게도 대나무공예를 권했다. 그녀는 김연수 명인에게, 남편은 서석근 차바구니 명인에게 대나무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100세 시대를 대비하자는 아내 말을 남편이 따른 것이었다. 12년 전이었다.
 
 “김연수 명인은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제 아버지(황용일) 밑에서 공예를 배웠다고 하시더라고요. 명인이 되신 후 제자로 삼으려고 저를 찾았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연히 제 발로 명인을 찾아 간 거지요. 그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녀는 전수자가 되어 김연수 명인에게 5년간 대나무 브로치 공예 지도를 받았다. 전수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한 제도 때문이었다. 그녀는 브로치에 만족하지 않았다. 계승자로 지정이 되면 3년 간 소정의 교육비를 지원받는데, 그녀는 지원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죽제기 명인인 김성수 명인에게 2년 째 교육받고 있다.
  “죽제기는 향교에서만 쓰일 정도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배운 사람도 드물어요. 계승자도 드물지만 장대를 떠서 죽제기를 만든 여성은 제가 유일하다고 해요.”

  “대나무공예는 아버지의 삶이죠”

  교육은 대나무박물관 내에서 받았다. 매주 화요일 10시부터 시작해 5시까지 교육을 받는데 그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았다. 교육 받을 시간에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라는 말도 종종 듣지만 그녀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그녀가 만사 제치고 교육을 받는 건 조바심이 작용한 탓이다.
  “기능을 보유하신 분들이 대부분 연로하신데, 언제 전수가 막힐지 모르잖아요?”
  그녀가 연로하신 분들과 부대끼며 배움에 열정을 쏟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분들의 귀한 기술을 기록하고 후대에까지 전승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현재 교육은 실기 위주라 직접 강의를 듣지 않으면 재현하기 어렵다. 그녀는 이론과 실기를 겸한, 자료만 보고도 재현이 가능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녹취하고, 사진 찍고, 꼼꼼히 기록했다.
  그녀가 대나무공예의 전수에 심혈을 기울인 건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대나무공예를 했어요. 아버지의 삶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리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어요? 아버지를 생각하니 다른 분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교육생 중에는 고학력자도 많아요. 그분들이 나선다면 훨씬 쉽고 빠르게 정리가 되겠지요. 하지만 담양 출신이해야 의미가 있고 담양의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녀는 『죽세공예입문』, 대뜨기편을 출간했다. 공무원이자 사진작가인 동창이 사진을 찍어 주었고, 아들이 워드 작업을 도왔다. 그녀의 기획을 전남문화재단에서 인정하여 지원해 주었다. 그녀의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책을 내고 나니 담양 분보다 외지인에게 더 많은 전화를 받았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고 어떤 분은 도구를 주문하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좋아 그분들에게 친절히 응대했다. 그러면서 큰 보람도 느꼈다.

  그녀는 또 다른 책을 출간하려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각 읍·면마다 발품을 팔고 다니며 질문하고, 녹취하면서 취재했다. 그녀가 관심을 두는 건 대바구니다. 원바구니, 사각바구니, 갱기바구니, 개량바구니, 육각바구니, 나일롱바구니 등을 만드는 방법은 물론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유래를 덧붙일 생각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책자를 참고하지만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없는 이름도 있었다. 그녀는 기존 자료를 토대로, 또 자료를 응용하여 대바구니 이름을 짓기도 했다. 이를 위해 구전되어온 내용까지도 하나하나 찾고 있다. 얼추 8년째 해오고 있다.

▲온가족이 대나무 공예가

  “더불어 살고 싶어요”

  대나무공예를 접하고 나서 그녀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우울증과 빈 집 증후군에서 해방되었다. 육체적 질병도 잦아 직접 치료해보려고 남부대에서 대체의학을 배우기도 했다. 아무튼 병원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질병이 대나무공예에 심취하다보니 말끔히 사라진 것이었다. 대나무공예를 완성하고 나면 자신감이 샘솟고, 자존감도 높아졌으며, 만족도도 지대했다. 그런 것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쳐 치료가 되었는지 모른다.
  질병이 사라진 것뿐이 아니다. 끈끈한 가족애가 생겼다.
  “저에게 대나무공예는 기억 속의 결정체를 재현하는 것이죠. 제 기억의 재현을 위해 식구들이 매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70년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종종 듭니다. 순간 이동을 해서 과거의 가족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명퇴를 대비하자고 했던 남편 임정환은 아직도 근무 중이지만 주말마다 그녀를 돕는다. 주말이면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텐데 남편은 누구보다 훌륭한 조력자다. 그녀가 만들 작품 재료를 남편과 함께 준비하곤 한다. 아들 또한 대나무공예를 전승받고 있다. 가족이 일심동체로 대나무공예에 매달리고 있고, 그녀를 응원하니 그녀는 날개를 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진가도 인정받았다. 그녀는 제37회 전국대나무공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제17회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숲향기’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아들 임어진 씨도 ‘대나무텀블러’로 장려상을 수상했으니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 오랜 경력의 작가들도 받기 어려운 상을 모자가 받은 것이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관광명품 마크도 모자가 함께 받았다. 이는 10년 간 사용 가능하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대나무공예에 자수를 응용한 ‘매란국죽바구니’를 출품하여 장려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공예대전은 치열한 지방 예선을 거쳐야 한다. 그녀 작품이 지방예선에서는 입선에 그쳤는데, 이례적으로 본선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출품한 작품의 가치를 본선 심사위원들이 재평가한 것이었다.

  전국 대나무공예대전에서 수차 입상한 그녀는 전통 공예품의 재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전통을 응용한 제품 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대나무공예를 응용한 제품을 코엑스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청사초롱등’ 이다. 대나무공예에 시대를 반영하여 전등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전등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관심이 뜨거웠다. 대나무를 이용한 인테리어가 얼마나 발전할지 내심 기대가 크다. 2017년 코엑스의 서울리빙디자인 “만찬”에 대나무공예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 남편도 주말이면 대나무공예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녀와 그녀 남편에게 ‘소망등’의 주문이 쏟아졌다.

  대나무 제품은 여름철에 많이 팔린다. 여름에 팔기 위해 겨울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겨울에 좋은 목재를 마련하여야 하기에 겨울이면 좋은 원재료를 찾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나무를 일일이 살피고 선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심하게 대나무를 살핀 눈으로 그녀가 깊이 관심을 기울인 곳이 또 있다. 바로 ‘담빛협동조합’이다.
  담빛협동조합은 담빛길에 입주한 작가들이 결성한 단체다. 담빛길은 국수거리 아래에 있는데,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담양군에서 인테리어비를 지원했다. 담빛길에는 대나무공예, 금속공예, 비누공예, 천연염색, 한국화가 등의 작가들이 입주했다. 하지만 공간이 있다고 마음 편히 작품을 생산할 수는 없다.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수입이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녀가 주도적으로 나섰다. 입주 작가들이 윈윈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협동조합을 결성하자고 주도한 것이었다.
 

▲대나무공예 체험강사 활동


사실 그녀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 해동문화학교, 담양동초등학교, 무정초등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담양중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인 ‘대나무야놀자’의 강사이기도 하고, 주문도 상당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입주 작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건 그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통공예는 책임감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중국산이 물밀 듯 들어오고 화학제품이 범람하는 시대인데 수입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전통공예를 포기하면 담빛길도 죽고 저도 갈수록 쇠락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어요. 더불어 살고 싶었어요.”
 
그녀는 더불어 살고자 입주 작가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광상품 개발을 할 때도 머리를 맞대자고 다독였다. 나아가 풀뿌리 지원 사업에 응모하여 디딤 단계를 거쳐 돋움 단계를 넘어섰다. 이에 자신을 얻어 더 많은 조합원을 모집하려고 한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활약으로 담빛길이 명실공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입주 작가들이 성공했다는 입소문이 나면, 그만큼 젊은이들이 관심을 기울일 테고,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우리의 소중한 전통 문화의 명맥이 끊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점이다.
 
돌고 돌아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그녀. 그녀는 죽세공 센터를 운영할 꿈을 갖고 있다. 남편이 퇴직 후에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이다. 그곳에서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교육을 시킬 것이다./강성오 문화전문기자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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