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영정*의 바람

배를 내미는 오후
길게 뻗은 나뭇가지 그늘
베개 삼아
깜빡
졸고 있는 호수

바람의 날개깃이
입술을 건드리자
은빛
잔 물결
눈 인사한다

하늘을 이고
끄덕끄덕
식영정의 늙은 소나무는 
바람이 새기는 세월의 손놀림을 빙긋이
바라보고

물깃 바람은
소나무에 힘 주어 도장을 찍은 후
휘휘
식영정 마루에 올라 앉아
무거워진 다리 쭈욱,

제 그림자 잠재우며
드러눕는다.

           
*식영정(息影亭)은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다.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이 정자의 이름은 『장자』에서 따왔다. 또 이 정자는 한국문학사에서 송강 정철 등의 가사문학 및 한시의 산실이 된 장소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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